핵 폐기물의 유독성은 수천 년간 지속된다. 그나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바깥은 초여름의 쌀쌀한 날씨였다. 하지만 프랑스 북동부 상파뉴에 구불구불 이어진 언덕 밑 450m 지하는 따뜻했다.
불을 밝게 켜 놓은 이 지하 시설 내부의 공기는 건조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먼지가 느껴졌다. 무거운 비상용 호흡기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규칙은 만에 하나 이 깊은 지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기시켰다.
나는 내부를 돌다가, 바위를 투박하게 깎은 십자형 통로로 접어들었다. 감춰진 전자 장비들이 윙윙대는 소리와 인적 없는 텅 빈 공간에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까지 어떻게 돌아가야 하지?’
모퉁이를 돌자, 다행히 거대한 방이 나타났다. ‘내가 파라오의 무덤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방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든 시설이 아니었다. 강력한 방사능 물질인 준중위 핵 폐기물과 고준위 핵 폐기물을 저장하고자 현대인들이 바위를 깎아 만든 곳이었다.
계획에만 수십 년, 건설하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설. 수 세기 동안 운영할 수 있어야 하고, 10만 년 동안 지속성을 유지해야 하는 시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물질을 보관하는 구조물은 대체 어떻게 설계 및 건설, 운영할 수 있을까?
내가 방문한 시설은 파리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4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2.4km 길이 터널이었다. 수많은 과학 실험의 성과와 건설 기술, 기술 혁신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었다. 프랑스 국립방사성폐기물청은 규제 당국으로부터 ‘지질학적 처리 시설’(이하 GDF) 건설 허가를 받고자 이 시설을 만들어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
GDF는 거대한 지하 구조물이다. 어쩌면 인류가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도 만들 지하 구조물 중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이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 약 20개국이 GDF 건설을 계획 중이거나 개발 및 착공을 앞둔 상황이다.
세계 최초로 지하 깊은 곳에 GDF를 만든 국가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GDF에 저장하는 시험의 1단계를 진행중이다. 스웨덴도 비슷한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스톡홀름 북쪽으로 2시간 떨어진 포스마르크에 GDF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프랑스는 비슷한 시설 ‘시에고’의 착공을 앞두고 있고, 영국은 저장 시설 부지를 물색중이다.
GDF의 용도는 방사능 수치가 높고 수명이 긴 원자력 산업의 폐기물을 보관하는 것이다. 현재 영국 셀라필드와 프랑스의 라 아그 같은 지상 시설에 저장중인 원자로 부품과 원자로 노심의 흑연, 사용 후 연료, 원자로의 사용 후 연료 재처리에서 나오는 액체 부산물 등을 보관할 계획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건설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이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컴퓨터 화면으로 살펴 본 프랑스의 GDF는 흡사 거대한 규모의 다층 핵 대피소 같았다. 이 시설을 설계하고 짓고 운영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처럼, 이 기념비적 구조물을 짓기 위해 일한 많은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작업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내게 시설을 안내해 준 과학자 자크 딜레이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 시설의 인허가는 20~30년 이상 걸린다”며 “시설이 만들어지면 약 100년 동안 운영하고, 이후 완전히 봉인된다”고 말했다. 봉인의 다음 단계는 수백 년 동안 시설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영국 핵 폐기물 서비스(NWS)에서 일하는 에이미 쉘튼은 “GDF 부지 선정의 핵심은 적합한 부지 및 시설을 기꺼이 유치하려는 지역사회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지질학입니다.”
쉘튼과 같은 엔지니어들은 여러 유럽 국가에서 지질 데이터를 검토해 500m~1km 아래에 있는 암석이 10만 년 이상 핵 폐기물을 가두기에 적합한지를 확인한 뒤 후보지를 정한다. 보통은 화강암과 점토와 같은 암석이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안전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적합한 후보지를 찾아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후보지가 인근에 담수를 공급하는 주요 대수층에 너무 가깝거나, 1만 년 후에는 빙하로 인해 위험해질 수 있는 계곡 옆에 있다고 판명되는 경우가 그렇다.
다른 국가에 비해 부지 물색이 좀 더 수월한 국가들도 있다. 스웨덴의 핵 폐기물 관리 기관인 SKB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안나 포렐리우스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암반은 지진 활동 측면에서 매우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9억 년이 넘게 지속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파열 지대가 만들어 지지도 않습니다.”
인문 지리가 문제가 될 때도 있다. 딜레이는 “(프랑스에서) 시설 유치를 자원한 지역 중 상당수는 파리 교외에서 너무 가까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해로우나 윔블던에 핵 폐기물 처리 시설을 짓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지역사회가 GDF 유치를 자원하는 것은 투자 및 보수가 좋은 일자리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과정에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동의 절차가 순탄하게 흘러가는지 여부는 해당 지역이나 국가가 가진 원자력 산업에 대한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경험을 기준으로 볼 때 영국은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았다. 핀란드는 조금 달랐다. 핀란드의 핵 폐기물 처리 회사인 포시바 오이의 파시 투오히마는 “우리는 70년대 후반부터 원자력으로 전력을 생산해 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했던 가족과 이웃이 있다보니, 폐기물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기반을 제대로 다지지 못하면 GDF 반대 시위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포렐리우스는 “스웨덴에서 GDF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SKB는 지역 주민들의 계획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의 중요성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각처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알문지에서는 SKB의 (시험) 굴착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부지 선정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독일이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했던 것처럼 폐광에 핵 폐기물을 저장하는 것이 더 쉽고 저렴한 방법처럼 보일 수도 있다. NWS의 수석 과학자인 닐 하야트는 “‘폐광 같은 시설들이 있는데 왜 이 시설들을 재사용하지 않느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질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우리가 가진 목적이나 장기적 관점, 또는 원자력 측면의 안전을 고려하고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광산은 분명 고준위 핵 폐기물 저장에 필요한 정밀도로 건설되지 않았다. 포렐리우스는 “저장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경사로를 짓는 것만 해도 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존의 광산 채굴 작업과 비교해보면 매우 긴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게다가 광산에 아직 개발할 만한 자원이 있는 곳에 GDF가 건설되면, 향후 “핵 무덤”이 교란될 가능성이 생긴다. 콘월의 주석 광산은 1998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26년 후 전기 자동차 수요가 올라가자, 영국 광산회사 ‘코니시 리튬’이 이 지역에서 리튬 추출을 계획하고 있다.
때문에 핵 폐기물을 위한 전용 시설을 새로 건설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투오히마는 “핀란드에서는 기상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지하 시설을 짓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면 전체 부지를 처음부터 다시 계획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하는 것과 달리 GDF를 설계할 때는 참고할 만할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설계의 모든 것이 지질학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딜레이는 “GDF의 설계는 주로 암석의 두께에 따라 결정된다”며 “(프랑스가 계획한 GDF의 경우) 원래 계획했던 2, 3, 4단계가 아닌 1단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폐기물의 성질과 부피, 열 발생량도 고려해야 한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열 발생량이 적기 때문에 커다란 보관소 안에다 저장 용기를 비교적 가깝게 쌓을 수 있다. 반면 고준위 핵 폐기물은 훨씬 더 많은 열을 발생시키므로, 소량씩 멀리 떨어뜨려 보관해야 한다.
GDF에서 방사능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조치도 필요하다. 컨테이너 디자인부터 컨테이너를 둘러싼 암석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리적 장벽이 이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러한 장벽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 폐기물을 지하로 내려보내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폐기물을 지하 약 500m(1650피트)의 최종 보관 장소까지 운반하는 매력적인 방법처럼 보이지만, 엘리베이터에 용기가 끼이거나 엘리베이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약 12%의 경사도를 가진 경사로가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한다. 폐기물을 을 나르는 썰매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두 가지를 모두 구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GDF 건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한 가지 해결책은 여러 국가들이 공동 설계하는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 방법을 택했고, 이를 ‘KBS3’라고 불렀다. 하야트는 “그들은 바위를 파는 곳이 어디든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는 (영국에서) 여전히 저장소의 대상이 될 지질을 찾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기술 변화의 속도와 건설 프로젝트 기간이 이루는 방정식도 골칫거리다. 딜레이는 “이 시설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가 20년~200년 후에 이 기술을 사용해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시점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프랑스 엔지니어들은 핵 폐기물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4km 길이 경사로에 케이블카를 만들었다. 또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자율주행 로봇을 통해 “지진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제자리에서 밀려난 보관 용기를 사람의 개입 없이 옮기는 데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엔지니어들은 고준위 핵 폐기물을 담을 길고 좁고 밀폐된 터널을 따라 들어가 “부식된 수조에서 저장용기를 회수”하는 로봇도 개발했다고 말했다. 막힌 곳을 뚫고 원통형 폐기물 용기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는 로봇이다.
다른 국가중에는 스웨덴의 계획이 조금 더 나아갔다. 포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2080년대쯤이면 이 저장소는 6000개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 구리통을 보관할 수 있는 60km 길이의 터널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핵 폐기물을 쌓는 일은 원격으로 매우 정밀하게 조종할 수 있는 맞춤형 기계로 진행될 것입니다.”
포렐리우스는 “‘마그네’는 우리가 제작한 프로토타입 기계 장치의 한 예”라고 했다. “이 기계는 암반 아래 500m아래에 뚫어놓은 구멍에 구리 저장 용기를 배치하는 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야트는 “GDF의 시간 규모를 가진 시설을 오늘날의 기술로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수리, 업그레이드, 교체 및 복원력이 있는 시설을 설계해야 합니다.”
GDF를 계획할 때는 회수 가능성이라는 또 따른 복잡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운영 단계에서 GDF에 보관된 폐기물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적 요건이 있다. 영국에서는 이 원칙이 일반적인 지침에 가깝다.
하지만 시설 전체가 영원히 봉인될 때까지 내부의 개별 보관소가 봉인되면 될 수록 회수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여러 난제를 다소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투오히마는 “우리는 사용후핵연료를 영원히 묻어 두려 하지만, 훗날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단 우리가 봉인하면 봉인이 되는 것이지만 100년 후의 세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딜레이는 “봉인이 되고나면, 이후에 이를 어떻게 할지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핵 폐기물 저장 시설 프로젝트는 최종 완료까지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는 프로젝트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기저기서 모셔가지 못해 안달인 이 전문가들이 당장 완공될 가능성도 거의 없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렐리우스는 “우리 대부분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의식”이라고 말했다. “우리 중 누구도 저장시설 프로젝트가 최종 완료되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 핵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줍니다. 그것을 잘 해내겠다는 것이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동기입니다.”
- 영국 고급 백화점서 '후쿠시마산 복숭아' 판매 개시
- 핵의 불길이 지구를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공포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과연 안전할까?
-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핵무장을 했을까?
-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하면 어떻게 될까?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얼마나 안전할까?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