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해 사살했다. 그는 현장에서 러시아군에 체포된 뒤 일제에 넘겨져 3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까지 장악했다.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자 이토는 그를 퇴위시키고 아들 순종을 강제로 즉위시킨 뒤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안중근 의사는 교육 계몽 활동을 중단하고 연해주로 향해 무장 독립운동을 준비한다. 1909년 2월, 안 의사와 12명의 애국 청년들은 단지회를 조직하고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결의한다. 그들은 왼손 약지를 잘라 피로 '대한독립' 네 글자를 써낸 뒤 독립을 향한 의지를 다지며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쳤다.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태운 열차가 도착하자 군중들은 일장기를 흔들며 이들을 맞이했다. 일본인으로 위장한 안 의사는 군중 속에서 이토를 향해 세 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총성이 울려 퍼진 하얼빈역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총을 맞은 이토는 기차 안으로 옮겨졌으나 30분 만에 사망했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다.
체포된 안 의사는 11월13일 뤼순 감옥으로 이송돼 일본 검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다. 일본 검사가 왜 이토를 죽였는지 묻자 그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빼앗은 원흉이자 동양 평화를 위협한 자이기에 대한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처단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결국 마지막 재판에서 안 의사는 일본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 의사의 유언에도 일본은 시신 반환 요청을 거부하고 뤼순 감옥 인근에 그를 매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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