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타협 없이 모든 걸 내던지며 싸우는 캐릭터. 강약조절이 아닌, 강강강강이다. 계속해서 몰아쳐야 했다.
대사도 기존 작품들과는 달랐다. 문학적이고, 비유가 가득했다. 자칫 잘못 연기했다가는, 때 아닌 연기력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 도전했다.
대본과 자신을 일체화시켰다. 한 마디로, 대아일체(臺我一體)의 경지. 카메라 앞에선 (김희애와 서로) 죽일 듯이 연기했다. 촬영 후에도 작가와 소통해 후시 녹음도 진행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돌풍’의 핵, 박동호를 완성했다.
‘디스패치’가 최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설경구를 만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극본 박경수, 연출 김용완)의 박동호로 살았던 시간을 들었다.
◆ 왜, ‘돌풍’이어야 했나
사실 설경구는 스크린에서 익숙한 배우다. 드라마를 택한 건, ‘큰언니'(1994년)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그런 그를 김희애가 이끌었고, 박경수 작가의 대본이 움직였다.
“지난 2022년, 김희애 씨와 영화 ‘보통의 가족’을 촬영할 때였어요. 김희애 씨가 ‘돌풍’ 이야길 해줬습니다. 제작사 통해 대본을 받아봤는데, 재밌더군요. 그 힘에 매료됐죠.”
설경구는 “제가 대본을 보는 기준은, 단순하게도 재미”라며 “(대본을) 한 번에 읽으면 재밌는 이야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풍’이 바로 그런 드라마였다는 것.
“글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전에 없던 드라마였어요. 계속 ‘말도 안돼!’ 를 외치게 되는데, 읽히더라고요. 덮을 수가 없었죠. 계속해서 보게 됐고,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두려움과 선입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드라마 현장은 20년 만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칫하면 망신당할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했다”고 웃었다.
◆ ‘돌풍’을, 준비해야 했다
박경수 작가의 대본은,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흔히 쓰는 말이 아닌 문어체였다. 성경 비유가 나오고, 모든 대사가 비장했다. 그는 “이런 대사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거, 하던 대로 했다가는 대형사고 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동호의 대사는 평소에 쓰는 말들이 아니거든요. 내 말처럼 뱉으려면 그저 외우기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죠.”
설경구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안겨준 배우가 있었다. 바로 강상운 부회장 역을 열연한 김영민. 그는 대본리딩 당시, 이미 강상운 역과 일체화된 상태였다.
“김영민 씨는 대본 리딩인데, 책을 안 보더라고요. 그냥 실제 연기를 해서 너무 놀랐어요. 그 때부터 5부 분량의 대본을 아예 입에 붙여뒀죠. 매일 봤고, 읽었고, 외웠어요. 안 그러면 내 말처럼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설경구는 “드라마는 작가의 대본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때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대본에 충실하려 했다”며 “제게 주어진 대사를 어떻게든 소화하려 애썼다”고 밝혔다.
◆ ‘돌풍’을 넘어선 연기
안 그래도 잘하는 배우가, 독기를 품고 연습했다. 그러니 결과물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마음의 준비를 모두 하고 연기했다”며 “(촬영은) 전투였고, 전 완전무장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연기 맞대결을 펼친 김희애(정수진 역) 역시, 좋은 자극이 됐다. “김희애 님은 김희애 님이다. 정말 대단하다”며 “스태프들이 세팅할 때도, 어수선한데 혼자 연기를 하더라”고 감탄했다.
박동호로서, 거기에 밀리지 않아야 했다. 그는 “김희애와 (작품으로) 죽일 듯이 싸웠다”며 “매번 싸울 때마다 압도당하고, 압도했다. 서로 그렇게 혈투를 펼쳤다”고 떠올렸다.
촬영을 모두 마친 후에는, 박 작가를 찾았다. “드라마가 익숙지 않아, 배우와 작가가 사전 소통한다는 걸 아예 몰랐었다”며 “촬영 끝나고서야 소통했고, 작업하며 서로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사전에 소통하지 못했다는 게 제일 후회됩니다. 그래도 작가님과 이야기해 후시 녹음으로 보충하려 애쓴 부분이 있어요. 대사의 디테일과 음 높이 등을 하나 하나 다시 녹음하곤 했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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