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솔
4인의 PD로 구성된 예능제작스튜디오 ‘커들리 스튜디오’ PD이자 공동대표. 웹예능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콘텐츠 〈디바마을 퀸가비〉의 팬들에게는 ‘PD Like’ 혹은 ‘슬픔이 PD’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 스타 퀸가비를 위한 530명의 매니저와 쉬지 않는 ‘잡도리’는 허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0년대 MTV 리얼리티 쇼의 감성을 2024년 서울로 고스란히 소환한 〈디바마을 퀸가비〉의 ‘PD Like’, 여진솔 PD의 일을 즐기는 마음만큼은 진짜다
2021년 커들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전, 딩고 스튜디오와 MBC 산하 웹예능 채널인 M드로메다에서 경력을 쌓았다. 어쩌다 웹예능 제작의 길을 택하게 됐나
처음에는 광고회사에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과 음악, 디자인과 기획의 교집합이 광고라고 여겼지만 실제로 일해보니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때 회사사업부 홍보 영상을 제작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합쳐진 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고르고 편집을 직접 하는 것도 즐거웠고, 내가 하는 일이 영상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물로 손에 잡히는 기분도 좋았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칭찬도 힘이 됐고. 고민에 휩싸였던 당시의 나에게 부장님이 해주셨던 말은 지금도 힘이 된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이야”.
딩고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딩고 트래블’에서 일했다. ‘송도에 가서 꼭 해야 될 7가지, 일본 편의점에 가서 사야 할 10가지’ 같은 짧은 콘텐츠 영상이 페이스북 등에서 인기였거든. 그러다 유튜브 콘텐츠로 샘 김과 정승환의 해외 버스킹 셀프 투어 영상을 만들게 됐고. 그게 처음 만든 예능이었다. 이후에는 〈이은지의 해장님〉〈말년을 건강하게〉 등 M드로메다의 예능 시리즈 편집을 프리랜서로 맡았다. 지금 돌아보면 일주일에 한 편씩 혼자서 편집하며 스파르타 식으로 일을 배웠다 (웃음).
물리적으로 힘에 부칠 텐데 그렇게 몰입해서 일했던 이유는
화면을 방향성 있게 정리하고, 자막을 얹어 상황을 ‘딱’ 재미있게 만들어냈을 때 쾌감이 컸다. 〈말년을 건강하게〉 편집을 맡았던 당시의 나는 ‘침착맨(이말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대로 편집했는데 그게 오히려 침착맨 팬이 아닌 사람들이 봐도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었다.
당시 한국 웹예능 시장은 어떤 시점이었나
〈와썹맨〉과 〈워크맨〉을 1세대라고 가정한다면 2세대가 시작될 즈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디바마을 퀸가비〉(이하 〈퀸가비〉) 같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예능 제작에도 일찌감치 도전했다. ‘한사랑산악회’와 ‘매드몬스터’에 이어 최근의 ‘쥐롤라’까지. ‘부캐’로 유명한 개그맨 이창호 씨가 주인공인 8부작 〈니毛를 찾아서〉 예능도 톱 배우 ‘이빈(이창호)’이 탈모로 인기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설정이이다
이창호 씨를 출연자로 하고, 두피관리기기 업체의 제작 후원을 받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포맷이 정해진 상태에서 투입됐다. 그때 지금
<디바마을 퀸가비>
를 함께하고 있는 김미진 작가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드라마 타이즈 요소가 있으면서 웃겨야 되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던지기도 하는데 우리가 합심해서 가져간 아이디어에 출연자 의견이 더해지면서 더 재미있게 변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빈’이라는 ‘킹 받는’ 이름도 창호 님의 아이디어였다
디바마을>
〈퀸가비〉에 이별의 슬픔을 치료하기 위해 출연했던 ‘빵상 아주머니’가 〈니毛를 찾아서〉에도 출연하더라. 아주머니와 무슨 관계인가
탈모는 누군가에게는 민감한 주제인 만큼 빵상 아주머니를 섭외하는 것 자체가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탈모 치료를 하고 계신 분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 채널을 보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연락을 드렸던 건데 결과물이 정말 재미있게 나왔다. 이후 할리우드 스타들이 ‘기 테라피’를 한다는 것에 착안해 〈퀸가비〉 때도 다시 연락을 드렸다. 사실 모든 섭외를 다 수락하는 분이 아닌데 우리와 기운이 맞는 것 같긴 하다.
댄서 가비가 파파라치를 피해 한국으로 온 할리우드의 ‘네포 베이비’ 설정으로 등장하는 〈퀸가비〉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편집이나 연출 면에서 2000년대 초창기 Mnet, 온스타일 감성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퀸가비’라는 컨셉트를 가비 씨가 해보고 싶어했다. 첫 미팅을 마치고 우리끼리 했던 생각은 카다시안 패밀리 일원이 나오는 MTV 시리즈물이나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미국 리얼리티 쇼였는데 댓글 창의 ‘온스타일’ ‘올리브TV’ 언급을 보면서 알았다. 아 이게 우리 ‘추구미’와 ‘도달 가능미’의 차인가 보다(웃음)!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특성상 야외 촬영도 많고 몰입을 위해 의상과 배경 등 설정 디테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출연자의 연기력이 요구되는데 가비 씨는 연기에 물이 올랐더라
버튼이 있는 것 같다. 그 버튼이 눌리면 정말 미친 사람처럼 잘한다! ‘튼튼 모텔’의 후계자 ‘패리스 은지 튼튼’으로 출연했던 전문 희극인 이은지 씨와 연기를 하는데도 위화감이 전혀 없을 정도라 놀랍다. 또 퀸가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에너지 소비가 클 텐데 매번 ‘풀파워’로 연기를 쏟아내주시는 것도 연출하는 PD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실제로 가비 씨 자체가 미국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을 많이 보며 자랐기 때문에 본인이 내는 아이디어도 많다.
가비 씨의 실제 친구인 킹키, 권또또 같은 인물은 〈퀸가비〉가 발굴한 예능 인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에 PD로서도 희열을 느낄 것 같은데
‘상위 1% 조찬 모임’에서 첫 출연했던 킹키 씨를 우리는 ‘디바마을 유재석’이라고 부른다. 흐름을 인지하고, 묻힐 뻔한 멘트도 살리는 능력이 있어서 편집하다가 너무 고마워서 화면에 뽀뽀하고 싶을 정도다. 권또또 씨는 ‘결정사에 간 퀸가비’ 편이 처음이었는데 ‘결미새(결혼에 미친 사람)’라는 설정이 살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때 구체적으로 재미있는 대사와 설정을 만들어준 것도 킹키 님이다. 무엇보다 첫 출연에 당시 ‘열쇠 재벌’이라는 설정에 맞게 수트에 한 땀 한 땀 직접 열쇠를 달고 온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정말 감동받았다. 권또또님도 정말 독특한 캐릭터다. 눈빛이 정말 남다르다(웃음).
크로마키 배경과 같은 초록색이라 어쩔 수 없이 재킷을 벗어야 했던 그 수트 말인가(웃음)
“킹키님…. 저 근데 재킷 벗어주셔야 할 것 같은데…”라는 내 요청을 또 너무 재미있는 표정으로 반응해 준 덕분에 명장면이 탄생했다.
우리가 생각한 건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미국 리얼리티 쇼였는데 댓글창의 ‘온스타일’ ‘올리브 TV’ 언급을 보게 깨달았다. 아 이게 우리 ‘추구미’와 ‘도달가능미’의 차이인가 보다(웃음).
실제로 〈퀸가비〉 내에 PD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댓글 창에서 언급량도 많고 “PD Like!”라며 호통치는 퀸가비 또한 당신을 은근히 인정하던데
기획 단계에서는 이렇게까지 내 역할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제1화 대본이 나오자마자 작가님이 “PD님 대사가 많아졌네”라고 하더라. 첫 화는 귀국한 퀸가비가 공항에서 매니저 차로 집까지 이동하는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에 ‘아 대화할 사람이 마땅치 않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납득했는데 이게 계속…(웃음).
퀸가비 말 대로 정말 이 관심을 즐기고 있나
아니다! 물론 재미도 있지만 나름 부담도 있다. PD로서 상황 전체를 보고 연출해야 하는데 대사에 신경 쓰다가 내용적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 걸 놓칠 수도 있고, 둘 다 잘 해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공동 연출을 하고 있는 유화연PD와 김미진 작가가 꼼꼼히 같이 챙겨주기에 구멍은 없다
〈퀸가비〉에서 사람들이 큰 재미와 차별성을 느끼는 요소 중 하나는 자막이다. 특히 똑같은 음악과 효과음을 상황에 따라 ‘깜짝 놀라는 음악’‘심각한 음악’ 하는 식으로 뻔뻔하게 표기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넷플릭스 감성을 추구하다 보니 시작된 아이디어였다. OTT에서 음성자막/지원 설정을 해두고 보면 상황 자막이 등장하지 않나. 자막 디자인과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그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실제로 ‘경쾌한 음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만으로도 그 장면이 좀 경쾌하게 느껴지지 않나? 또 퀸가비가 워낙 영어와 한글을 섞어 사용하다 보니 번역 표기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데 〈고려거란전쟁〉이 우리의 영감이 됐다. 배우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몽골어로’ ‘한국어로’ 같은 표기가 뜨는데 이게 재미있더라. 퀸가비가 “셧업!”처럼 짧은 영어를 쓸 때도 ‘영어로’라고 굳이 상황 자막을 띄우는 디테일을 알아차리고 웃어주는 분도 많았다.
출연자 개별 인터뷰 장면에 등장하는 배경 이미지 수준도 상당하다
초반에는 전문 이미지 사이트에서 찾아 넣다가 지금은 AI 툴을 사용해 제작하고 있다. 사실 커들리 스튜디오에는 두 명의 장인이 있다. AI 장인인 김고은 조연출이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계속 돌려서 원하는 이미지를 반드시 얻어내면, 이렇게 열심히 만든 배경을 박승현 장인이 크로마키 촬영본 ‘누끼’를 기가 막히게 따서 얹어주는 식이다. 매니저 530명이 복귀한 제15화에서는 매니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주루룩 서 있는 장면이 배경으로 들어갔는데 이 얼토당토 않는 장면에 나도 헛웃음이 났다.
든든한 팀원들이 있지만 현장을 책임지는 PD로서 진땀 나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제10화 ‘주객 전도 템플스테이’편이 사실 인생의 고비였다.
정말? ‘조찬모임’과 함께 제일 많이 본 회차다
촬영 장소인 절에서는 협조를 잘 해주셨지만 공간 성격상 뭘 시끌벅적하게 할 수 없는 거다. 제약이 있다 보니 촬영 인원도 많이 들어갈 수 없고.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김미진 작가가 농담처럼 “절에 왔으니 〈나는 솔로〉 패러디인 〈나는 저절로〉를 해보면 어떻냐”고 했는데 그걸 꼭 해야 분량이 나올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때 출연진 네 명(가비, 권또또, 승헌쓰, 킨키) 모두 〈나는 솔로〉의 유명 패러디 장면만 겨우 아는 수준이라 모든 장면이 거의 100% 즉흥이었다. 진짜 출연진들끼리의 합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났던,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또 어떤 고충이 있나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매회 기획회의를 하고 게스트가 있을 경우 그 캐릭터 설정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개인적으로 시즌2와 초반이었던 ‘100만 기념 풍선 파티’ 편에서 마음에 남았던 댓글이 있다. ‘시즌 1처럼 대충 찍는 게 재미있는데 너무 힘준 듯’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대충한 적 없다. 항상 힘들었다(웃음)!
최근 ‘잘되는’ 웹예능은 PPL이 당연하게 등장한다. 〈퀸가비〉도 화장품, 식품 등 PPL이 꾸준히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PD로서 고민은 없나
광고학 전공이라서 그런지 예전부터 다른 PD보다 광고에 대해 열려 있는 편이었던 것 같다. 광고 없이는 콘텐츠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작진뿐 아니라 구독자들도 예전보다 많이 이해해 준다. 다만 사람들이 조건반사적으로 넘겨 버리는 광고 삽입은 하고 싶지 않다. 이왕 하는 것 〈퀸가비〉 에피소드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광고주도 만족하고,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스윽’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
‘매니절!’ ‘잡도리하다’ 같은 유행어를 탄생시킨 기분은
정말 의도치 않았다. ‘잡도리’의 경우는 매니저에게 화를 내는 퀸가비에게 내가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었다. 그걸 “한국에서는 그렇게 잡도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가비 씨가 ‘빵’ 터진 거다. 그런데 이게 네포 베이비인 컨셉트랑 잘 맞아서 계속 활용하게 됐다. ‘매니저’는 브라이언씨가 출연했던 2화에서 탄생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퀸가비의 매니저 수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도 430명이라고 하다가 507명의 매니저라고 하다가 마음대로 한다.
여진솔 PD 개인의 콘텐츠 취향은 어떤가
본 걸 또 보는 걸 좋아한다. 시트콤 〈모던 패밀리〉는 무려 시즌 11까지 나왔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열 번 넘게 정주행했다. 심신안정제 처럼 틈만 나면 찾는다.
미국 감성과 잘 맞나보다(웃음)! 앞으로 PD로서 만들고 싶은 이야기의 방향성이나 원칙이 있다면
‘껴안고 싶은’ ’모두가 좋아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커들리(Cuddly)’라는 스튜디오 이름처럼 모두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밥 먹거나 퇴근길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느슨한 콘텐츠, 보기에 편안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더라.
그렇다면 ‘이게 바로 퀸의 마인드!’가 기본 탑재된 ‘퀸가비’처럼 여진솔 PD의 기본 마인드는
‘무디게 살자’. 인생은 고달프고 날 세워야 할 일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항상 생기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는 무디게 살고 싶다. 물론 일할 때는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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