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신이 보낸 사람'이라 믿는 미국 우파 기독교인들

'트럼프는 신이 보낸 사람'이라 믿는 미국 우파 기독교인들

BBC News 코리아 2024-10-25 19:12:34 신고

3줄요약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도하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사람들
Getty Images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집무실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트럼프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주 남부에 자리한 ‘그레이스 개혁 침례 교회’, 일요일 예배를 몇 분 앞두고 아주 깔끔한 차림의 더스티 디버스(36) 목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다.

이곳은 주로 많은 자녀를 둔 백인 가족 단위의 신자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로, 디버스 목사는 교인 100여명 과 인사를 나눈다.

한편 이곳 교회 입구에는 죽은 듯한 아기가 그려진 소책자 몇 권이 비치돼 있다.

낙태를 현시대의 ‘홀로코스트’에 비유한 이 책자에는 “여러분이 이 문단을 읽는 동안 방금 미국에서는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 3명이 부당하게 살해당했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낙태는 경제, 이민과 함께 다음 달 5일로 예정된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이슈 중 하나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을 선출한 준비에 나선 가운데 이 소책자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우파 개신교 유권자들에게 정치와 종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잘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죽음으로 끌려가는 이들을 구할 수 있나’는 문구와 태아 사진이 적힌 소책자
BBC
‘어떻게 하면 죽음으로 끌려가는 이들을 구할 수 있나’ … ‘그레이스 개혁 침례 교회’ 입구에 비치된 낙태 반대 소책자

무더운 여름날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덧 잦아들던 오전 10시 45분, 예배가 시작됐다. 거의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하얀 벽으로 이뤄진 이 소박하고 엄숙한 교회에서 디버스 목사는 기타를 치며 교인들과 함께 찬양을 불렀다.

오클라호마 엘긴 출신으로 여섯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한 디버스 목사는 종교학 및 부동산학 석사 학위 소유자로, 매주 일요일에는 교회 연단에서 설교를 하지만, 월요일에는 오클라호마 주 의회에서 법안을 발의한다.

이곳 오클라호마에서는 정치인이 지역 교회에서 직책을 맡거나,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정치계 및 종교계의 지도자가 겹치는 이러한 현상은 엘긴이 속한 미국의 소위 ‘바이블(‘성경’이라는 뜻) 벨트’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바이블 벨트'는 개신교도 및 공화당 지지자가 주를 이루는 미국 남부의 광범위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최소 9개의 주에 걸쳐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를 제외한 모든 바이블 벨트 주에서 승리한 바 있다.

이곳 바이블 벨트는 보수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현상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벨트의 중심에는 주의회 의원의 80% 이상이 공화당원일 정도로 종교적인 분위기가 짙은 오클라호마주가 자리한다.

현재 오클라호마 정치계의 핵심은 ‘하나님’과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자유주의 좌파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

더스티 디버스 목사
BBC
더스티 디버스 목사는 미국의 권력 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버스 목사는 내 종교적 신념이 무엇인지 알고자 우선 “내 예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긴 대화 끝에 디버스 목사는 우선 자신의 단기적인 정치적 목표는 낙태와 포르노 근절 및 소득세와 재산세 철폐라고 했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훨씬 더 야심 차다. 디버스 목사는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고위층까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백악관이 하나님의 왕국이 되길 바라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답했다.

디버스 목사는 “우리는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는 바이블 벨트 지역의 다른 목사들처럼 트럼프 후보가 자신을 온전히 대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공화당을 좌파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디버스와 함께 일하고 있는 아론 호프만(37)은 오클라호마의 새로운 침례 교회의 목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로, 다섯 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호프만은 교회와 국가 간 경계를 허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호프만은 눈물을 흘리며 “정치와 기독교 신앙을 분리할 수는 없다”면서 “(미국인들은 현재 예수님을 잊어버렸다”고 호소했다.

종교적 결정

오클라호마의 전직 교사인 수지 스티븐슨
BBC
수지 스티븐슨은 오클라호마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나 그만뒀다

그렇다면 이 문화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올해만 해도 바이블 벨트에 속한 최소 3개의 주에서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정치적 결정이 내려졌다.

우선 루이지애나주의 모든 학교 교실에서는 벽에 십계명을 걸어야 하며, 앨라배마주에서는 이곳 대법원이 냉동 배아도 ‘아기’라고 판단하면서 일부 체외 시술 클리닉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만 했다.

아울러 오클라호마에서는 공화당 소속 라이언 월터스 주 교육부 장관이 지난 6월 주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성경 교육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발표했는데, 이 소식은 미국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논란을 일으켰다.

오클라호마는 미국에서도 교사 수가 가장 부족한 주 중 하나인 가운데, 이 같은 지침에 여러 교사들은 종교적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개신교 신자이자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수지 스티븐슨(44)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티븐슨은 올해 5월 오클라호마주 교사 노조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 부른 월터스 주 장관을 비판했다. 주 장관직은 선출직이다.

월터스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에 수많은 학부모들도 불만을 표했다. ‘오클라호마 농촌 학교 연합’의 설립자인 에리카 라이트도 이 중 하나다.

“저들은 성경을 강요하는 대신 학교 내 빈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독교인이자 공화당원인 라이트는 오클라호마의 학교 예산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농촌 지역의 일부 학생들은 집에서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취재진은 주도인 오클라호마 시티 남부 노블 지역을 지나가며 트레일러 주택에 사는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라이트는 “저들은 성경을 살 돈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오클라호마의 빈곤율은 15%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이보다 더 높다.

이러한 문화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사무엘 페리 교수는 이러한 지침 뒤에는 더 큰 의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페리 교수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여러 책을 펴낸 바 있다.

페리 교수는 극단적인 지도층이 이러한 의제를 주도하며, 이는 기독교 민족주의와 그 결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민족주의란 미국 시민들의 삶과 보수적인 앵글로-개신교 민족문화를 융합해야 한다고 보는 사상이다.

페리 교수는 “기독교 민족주의가 팽창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신이 보낸 사람’

잭슨 라메이어
Jackson Lahmeyer
잭슨 라메이어 목사는 “트럼프는 이 나라 통치하고자 신이 보내신 인물”이라고 말했다

바이블 벨트에서는 목사들이 최빈곤 지역에 작은 교회를 세우며 신도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목사 중 다수가 공화당의 비교적 보수적인 부분을 지지한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이들 목사 집단이 진전을 이룰 최고의 수단으로 트럼프 후보가 자리 잡고 있다.

오클라호마의 잭슨 라메이어 목사는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다. ‘트럼프를 위한 목사들’의 창단자이기도 한 그에게 “트럼프는 신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자 보내신 인물”이다.

라메이어 목사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고자 “복음주의 신도들의 표를 모으고자” 활동하고 있다.

라메이어 목사는 지난 7월 중순 선거 집회 중 발생한 암살 시도에서 트럼프 후보가 살아남은 것은 “신성한 기적”이라고 본다.

상원직에 출마한 적도 있는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 나라는 내전에서 겨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했다.

개신교 목사이자 정치 활동가이기도 한 그는 다만 자신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로 분류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언론이 우리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고자 붙인 꼬리표”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폴 블레어 목사
BBC
폴 블레어 목사는 기독교는 언제나 정부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한다

오클라호마 시티 교외 에드먼드에서 ‘페어뷰 침례 교회’를 이끌고 있는 폴 블레어 목사도 자신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제가 기독교인이냐고요? 네. 제가 민족주의자냐고요? 네.”

교회에서 만난 블레어 목사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붙이고 싶은 꼬리표대로 기독교 민족주의자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독교 민족주의자’라는 말은 이제 욕이 됐다”는 것이다.

오클라호마 상원 의원 후보로도 나선 적 있는 블레어 목사는 책상에 앉아 취재진에게 자신이 1980년대 후반 ‘시카고 베어스’팀의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의 사진을 보여줬다.

현재 블레어 목사는 ‘자유 목회자 훈련 캠프’의 담당자이다. 그곳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은 정치에서 자신의 종교적 의제를 홍보하는 방법을 배운다. 블레어 목사에 따르면 목사들은 해당 훈련 캠프에서 기독교의 대정부 영향력이나 시민의 자유 수호 같은 주제를 공부한다고 한다.

“목사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을 바탕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훈련”이라는 블레어 목사는 자신을 ‘애국 목회자’로 칭하는 미국 전역의 지역 개신교 지도자 중 하나다.

이러한 집단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블레어 목사는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던 건국 당시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항상 정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블레어 목사의 주장이다.

아울러 그는 2020 대선의 합법적인 승자는 트럼프이며, 2021년 1월 국회 의사당 습격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수감된 이들은 ‘정치범’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현재, 블레어 목사는 오는 11월 5일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한번 미국의 대통령이 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오클라호마에서 얻은 득표율은 65%로, 미국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치 중 하나다.

정치 권력을 통한 자신들의 신념을 전파를 “신성한 사명”으로 삼는 바이블 벨트 내 보수 개신교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된 희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트럼프와 그의 러닝메이트인 JD 밴스는 이러한 정치적 싸움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트럼프와 낙태

2020년 1월 마이애미 소재 ‘킹 지저스 인터내셔널 미니스트리’에서 열린 트럼프 행사
Getty Images
트럼프의 임명으로 현재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낙태 반대 시위대는 이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무엇보다도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연방 대법관 3명을 임명한 덕에 미국의 최고 사법기관인 연방 대법원에서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돼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지난 2022년 연방 대법원은 거의 반세기 동안 낙태권을 보장했던 판례를 뒤집고, 낙태 허용을 각 주의 결정에 맡겼다.

그리고 오클라호마, 아칸소 같은 바이블 벨트에 속한 주에서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할 수 있는 등 법적으로 낙태를 매우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진이 특정 환자가 이러한 예외 사례에 속하는지 법적으로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낙태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됐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바이블 벨트 지역에서 가장 힘이 센 이들이다)들은 낙태 전면 금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트럼프를 종교적 신념이 깊지 않은 뉴욕의 탕아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기간 유명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백악관 문을 개방한 바 있으며, 지금도 복음주의 목사들과 함께 대규모 행사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백악관의 복음주의자들?

2020년 11월 조지아 주 의사당 앞에서 ‘트럼프를 보내줘 신에게 감사하다’는 문구가 적힌 성경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사람
Getty Images
지난 2020년, 수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일부는 손에 성경을 들고 있었다)은 거리로 나와 트럼프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트럼프는 ‘신앙과 기회 이니셔티브’라는 새로운 정부 조직을 설립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신앙은 정부보다도 강력하며,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고 발언했다.

이후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하자 소위 ‘애국자 목사’ 또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목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도둑맞았다며 거리로 나섰다. 수많은 이들이 오클라호마 출신 사업가 클레이 클락이 공동 설립한 극우 단체인 ‘리어웨이크 아메리카 투어’ 운동에 동참했다.

오늘날까지도 이 운동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복음주의자, 총기 옹호자, 반이민·반성소수자·반공산주의 활동가 및 트럼프의 발언에 동조하는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은 좌파에 맞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하나님의 군인들이라고 말한다. ‘프로젝트 25’에서도 이들이 말하는 내용의 일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프로젝트 25’란 트럼프 보좌관 출신들이 제안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계획으로, 연방 정부와 미국인들 삶의 핵심적인 부분을 개혁하자는 내용이다.

트럼프는 프로젝트 25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공화당 소속 트럼프 후보가 다시 백악관으로 복귀할 경우 이니셔티브의 배후에 있는 영향력 있는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단체들이 이 프로젝트의 실현을 대통령에게 강요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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