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칼럼]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토끼③

[정혜원 칼럼]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토끼③

문화매거진 2024-10-25 10:58: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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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칼럼]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토끼②에 이어 
 

▲ 마을 예술 축제 ‘패치워크 크리에이티브’의 시작. 배다리 철교 밑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 사진: 정혜원 제공
▲ 마을 예술 축제 ‘패치워크 크리에이티브’의 시작. 배다리 철교 밑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 사진: 정혜원 제공


[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겁이 많은 탓에 마을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콘셉트의 ‘기웃거리는 토끼’는 아이러니하게도 차질 없이 모두와 만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배다리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 허락을 구해야 했다. 

작품은 나라는 사람을 주변과 연결시키는 좋은 매개체다.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작품 뒤편에 숨어 은근하고 조심스럽게 세상에 다가간다. 하지만 작품을 앞세웠다고 해서 조용한 성격이 갑자기 활발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므로 작품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난감하다. 그럴 때는 이번처럼 기획 주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다. 안일한 생각으로 혼자 감당하지도 못할 작업을 벌인 것 같아 후회가 막심했지만,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기로 했다. 도움을 받기로 했으면 믿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되뇌며 마음을 다독였다. 

설치 날, 패치워크로부터 섭외 상점 리스트를 넘겨받아 그간의 내 고민은 가까스로 끝났다. 고민이 사라지자 비로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얌전히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만 리스트가 언제 나오냐고 채근한 것이 기억나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경로당에 설치된 토끼. 분명 허락을 받았는데도 설치 도중 경로당 어르신들께 지금 뭐하는 거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 사진: 정혜원 제공
▲ 경로당에 설치된 토끼. 분명 허락을 받았는데도 설치 도중 경로당 어르신들께 지금 뭐하는 거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 사진: 정혜원 제공


섭외된 곳은 카페, 헌책방, 경로당, 문구점 등 예닐곱 군데였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허락을 해 준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가게의 얼굴과도 같은 전면 유리창을 내어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거리 전시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허락한 곳도 있는가 하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고 말한 곳도 있는 듯했다. 그런 곳에서는 나중에 유리창에 붙은 토끼를 확인하고 괜히 허락했다고 후회할지도 몰랐다. 왠지 양심에 찔렸다.

준비한 토끼는 30마리. 기획 단계에서 그냥 적당히 둘러댄 숫자가 그대로 채택되었다. 홍보된 작품 소개 문구에도 30마리라고 못 박혀 있었기 때문에 꼭 30마리를 다 붙이고 싶었지만 섭외된 상점은 예닐곱 곳.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그림은 15곳에 두 마리씩 붙이는 거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리해서 한 곳에 3마리씩 욱여넣는다고 해도 10마리는 남을 것 같았다. 그러면 무려 3분의 1이나 숫자를 부풀려서 홍보한 셈이 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마음을 비웠다. 거리에 붙은 토끼가 정확히 30마리가 맞는지 아무도 헤아리지 않을 터였다. 토끼가 몇 마리 붙어 있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 설치의 시작점이 된 마을 어귀의 카페.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도록 토끼의 위치와 방향에 각별히 신경 썼다 / 사진: 정혜원 제공
▲ 설치의 시작점이 된 마을 어귀의 카페.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도록 토끼의 위치와 방향에 각별히 신경 썼다 / 사진: 정혜원 제공


섭외된 장소에 찾아가서 토끼를 붙였다. 세정제로 유리창의 먼지를 씻어 내리고 손바닥만 한 밀대로 시트지를 요령껏 펴 바른 뒤 남은 세정제를 닦아내면 끝이었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한 달 동안 튼튼하게 붙어 있어야 하고 또 상점 주인의 눈에 거슬리면 안 되므로 기포 없이 깔끔하게 붙이려고 노력했다. 특히 카페 유리창에 붙일 때는 말끔한 인테리어에 흠이 되지 않도록 토끼의 위치와 방향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런가 하면 건물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토끼를 붙일 때는 긴장해서 손이 떨렸다. 사전에 합의가 덜 된 건물이었다. 건물주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내 등 뒤를 한참 서성였다. 나는 나중에 깨끗이 철거하겠다고 거듭 약속드리며 꿋꿋이 토끼를 붙였다. 정말이지 한 마리라도 더 붙이고 싶었다.

한낮의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혼자 작업 도구와 토끼 시트지 다발을 끌어안고 낑낑대며 거리를 돌았다. 날은 덥고 몸은 고됐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작업은 순조로웠다. 도중에 몇몇 상점으로부터 자기 가게 유리창에도 토끼를 붙여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토끼는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 떠났고 한쪽에 빈 시트지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아무래도 30마리를 전부 붙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20마리는 훌쩍 넘겼으니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뿌듯했다. 

▲ 설치의 종착점인 패치워크 건물. 1층 카페에서 토끼 세 마리가 기웃거리고 있다 / 사진: 정혜원 제공
▲ 설치의 종착점인 패치워크 건물. 1층 카페에서 토끼 세 마리가 기웃거리고 있다 / 사진: 정혜원 제공


마침내 4개월 동안 준비한 전시의 막이 올랐다.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다른 걱정이 벌써부터 스멀스멀 마음속에 피어오른다. 전시가 끝난 뒤 각 상점들의 유리창에서 토끼들을 말끔히 떼어 내기 위해서 청소 도구를 끌어안고 다시금 분주히 배다리 거리를 오갈 생각을 하니 뒷골이 당긴다. 특히 건물주의 건물에 붙은 토끼는 약속대로 절대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하지만 순서대로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무사히 마무리되어 있을 것을 안다. 아무쪼록 이번 걱정도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나를 다음 작업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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