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칼럼]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토끼②

[정혜원 칼럼]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토끼②

문화매거진 2024-10-25 10:53: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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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칼럼]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토끼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나는 꽤 충동적인 편이다. 특히 창작에 관해서는 금방 솔깃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든다. 장르를 가리지도 않는다. 동료 작가나 기획자에게 협업 제안을 받거나 그럴듯한 작업 계획이 번뜩이면 고민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실행에 옮긴다. 이것은 나의 큰 원동력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화의 근원이기도 하다. 막상 작업이 시작되면 미처 고려하지 못한 고민거리와 맞닥뜨리고 늘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하기로 한 이상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며 스스로가 벌인 일을 어떻게든 수습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의 내 작품 활동을 돌아보면 줄곧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번 배다리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솔깃해서 덥석 덤벼들었지만 그 후로는 시시각각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계속 우왕좌왕한 느낌이다. 

당장 첫 회의를 마치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다음 달에 있을 두 번째 회의까지 어떤 작품을 만들지 얼추 윤곽을 잡아야 할 텐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배다리는 그리 큰 동네가 아니다. 하지만 설치 작업을 벌이기에는 너무 광범위해서 자칫 잘못하면 작품이 묻힐 것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에 시각적인 공해를 일으켜 주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배다리라는 동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돋보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 rat's go. 래트들이 지상으로 소풍을 가기 위해 한데 모여 있다 / 사진: 정혜원 제공
▲ rat's go. 래트들이 지상으로 소풍을 가기 위해 한데 모여 있다 / 사진: 정혜원 제공


작년 여름 배다리에 위치한 갤러리 공간운솔에서 래트를 소재로 한 작품 ‘rat's go’를 전시한 적이 있다. 평소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쥐 죽은 듯 지하에서 숨죽여 생활하던 래트들이 모처럼 지상으로 소풍을 가기 위해 한데 모인다는 콘셉트의 작품이었다. 전시가 끝난 뒤 나는 정말 래트들을 이끌고 배다리 거리로 소풍을 나섰다. 지상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광합성을 즐기는 래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때 그 래트들을 다시 한 번 소환하기로 했다. 그들이 보다 공적인 장소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길 바랐다.

▲ 작년에 이어 다시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던 래트.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에서 토끼에게 밀렸다 / 사진: 정혜원 제공
▲ 작년에 이어 다시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던 래트.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에서 토끼에게 밀렸다 / 사진: 정혜원 제공


하지만 래트가 나설 기회는 없었다. 쥐의 일종인 래트는 일부 주민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토끼로 교체하기로 했다. 쥐의 한계를 느낀 순간이었다. 이미지는 중요하다. 작고 소외된 동물의 대표 격으로 쥐를 내세우긴 했지만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공공 예술에서 너무 내 고집을 밀어붙이고 싶진 않았다. 가급적 주민에게 무해하고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토끼는 무난하면서도 중립적인 동물이다. 

그리하여 ‘기웃거리는 토끼’가 탄생했다. 토끼들은 그야말로 찍소리도 내지 않은 채 온순한 얼굴로 큰길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아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혹시 반감을 사진 않을까, 미움을 받진 않을까 싶어 길모퉁이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정황을 살피는 토끼들. 그들은 내 모습을 쏙 빼닮았다. 

사실 래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내 작품의 주연은 오랫동안 토끼였다. 그래서 래트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디자인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백 가지에 달하는 디자인 중에서 설치하기 적당해 보이는 네 가지를 골랐다. 시트지에 인쇄해서 큰길에 면한 상점들의 유리창에 쭉 붙이기로 했다. 거리 어귀부터 늘어선 토끼가 관람객과 함께 발걸음하며 모두를 마을 안쪽으로 인도하길 바랐다. 그곳에 이 전시를 기획한 패치워크 사무실이 있었다. 

문제는 섭외였다. 욕심 같아서는 거리를 토끼로 가득 채우고 싶었지만 뭔지 모를 작업을 위해 선뜻 유리창을 내어 줄 상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부분에서는 평소 배다리에서 입지를 다져 온 패치워크가 흔쾌히 나서 주었다. 친분이 있는 상점을 중심으로 허락을 구해 주었다. 패치워크에서 ‘괜찮다, 맡겨 달라’고 했는데도 나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섭외가 잘되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 내가 나서서 해결할 자신이 결코 없는데도 붙임성 좋게 나서서 해결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과연 작가의 작업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작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설치할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것까지가 작가의 할 일이 아닐까 싶어 내내 갈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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