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치 얼마 안 했지만, 정치는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으면(하려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찾아가서 선의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결국은 정치를 주도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역할을 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당 디지털위원회 위원 임명식에서 한 말이다. 한 대표는 앞서 첫 순서로 인사말을 한 이후, 임명식이 종료되기 직전에 "한 말씀만 더 드리겠다"고 재차 마이크를 잡고는 이같이 말했다. 모두발언에서 빠트린 내용이지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는 얘기다.
한 대표의 '정치는 아무 것도 안 하려면 안 할 수 있는 것' 발언은 최근 그와 용산·친윤계 간의 대립 구도와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한 대표는 지난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회동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에게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 극복을 위한 3대 요구안을 건의했으나, 윤 대통령은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한 대표는 그러자 23일에는 당 확대당직자 회의에서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실질적으로 진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친윤계 추경호 원내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에게 "대표 말씀 잘 들으셨나"라며 "이 부분은 국회 운영 관련 사안이고 원내 사안"이라고 즉각 받아쳤다.
추 원내대표는 "우선 의원들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론 의총을 통해서 결정할 부분", "의총 의장은 원내대표"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재판 선고와 특별감찰관 의사결정이 맞물려야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선고 전에 자연스럽게 모이면 모이는 것이고, 시간이 더 걸리면 더 걸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가 이 대표 1심 선고를 언급하며 "그때 국민의힘은 김건희 여사 관련 국민들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 한다"고 한 데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즉 3대 요구안도, 특별감찰관 추천도 '안 하겠다'는 게 한 대표 측이 인식하는 용산 대통령실과 당내 친윤계의 태도인 셈인데, 이런 와중에 한 대표가 "정치는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지만 열심히 찾아가 선의를 갖고 일하는 사람이 결국 정치를 주도한다"고 말한 것은 주목을 끈다.
한 대표는 '특별감찰관 추천은 원내 사안'이라는 추 원내대표의 전날 발언에 대해, 이날 오전 최고위 공개발언에서 "원내든 원외든 당 전체의 업무를 총괄하는 임무를 당대표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또 이날 오후 국회 본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 회의장을 찾아 의원들을 격려했다. '원내 사안'인 국정감사도 당 대표 직무에 포함돼 있다는 시위성 행보 아니냐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국감장 찾은 韓에 야당에서 "제대로 싸우라" 응원…피해 주민 '눈물 호소' 중 격려방문 이뤄지기도
한편 한 대표의 '국정감사장 순방' 현장에서는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오후 3시경 '찐윤' 이철규 의원이 위원장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장을 찾았을 때 이 위원장이 '인사 말씀 하시라'고 권유하자 마이크를 잡고 "고생 많으시다"며 "오랜 국감 기간 노고가 많으셨고 보좌진 여러분께도 감사하다. 건강 잘 챙기시라"고 짤막하게 인사했다.
3시 10분경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장을 찾았을 때는 한 대표가 국감장에 들어와 악수를 청하자 질의 중이던 진보당 전종덕 의원이 난감한 듯 웃으며 "(질의)시간 멈춰주실래요? 이거 어떡해야 하죠, 갑자기 오셔가지고"라고 위원장석을 쳐다봤고 위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어기구 농해수위원장이 즉각 "(시간) 스톱!"을 외치며 한 대표를 소개했고, 한 대표가 위원들 자리를 돌며 악수를 하고 인사하며 퇴장하려 하자 야당 위원들 쪽에서 "제대로 싸우세요!"라고 그를 응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3시 20분경 국방위 회의장을 찾았을 때는 하필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피해를 받고 있는 강화군 주민들이 회의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피해 상황을 호소하던 중이었다.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 주민이 "제가 무릎꿇고 싹싹 빌겠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한다"고 울부짖고 의원들이 그를 달래려 하는 시점에서 하필 성일종 국방위원장은 "한동훈 대표께서 지금 격려방문을 하셨다. 인사하고 나가신 후에 참고인들 고통을 도울 방법을 찾겠다"고 안내했다.
이어 성 위원장이 "(참고인은) 침착하시고, 대표님 인사하고 나간 다음에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 대표님, 야당부터 인사를 하시죠"라고 진행하려 하자, 야당 의원들이 "참고인 얘기를 먼저 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항의했고, 성 위원장은 "이재명 대표님 오셔도 다 할 거다. 전에 원내대표님 오셨을 때도 이렇게 했다"고 의원들을 달랬다.
한 대표가 위원석을 돌며 인사하고 퇴장하려 하자 야당 간사와 의원들이 "오신 김에 참고인 분들 좀 만나고 악수해 드리고 가시라", "우리보다 저 분들이 더 중요하다"고 한 대표에게 권유했고, 한 대표는 "강화 가서 뵈었던 분들이다"라며 흔쾌히 참고인석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주민들은 한 대표에게 "잘하겠다고 말씀해주셔도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엄마 입장에서 애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정말 너무 힘들다. 너무 간절하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 대표는 이들의 말을 고개 숙여 듣고는 인사하고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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