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를 반서방 국가 연합으로 보는 러시아...하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브릭스'를 반서방 국가 연합으로 보는 러시아...하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BBC News 코리아 2024-10-24 18:35:16 신고

3줄요약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 회담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Getty Images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이번 ‘브릭스’ 정상 회의는 2022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이후 러시아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에서 개막한 브릭스(BRICS)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다.

기존 회원국의 지도자들은 물론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의 대표단도 참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도 참석했는데,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반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과 유럽에 자신들을 고립시킬 수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한 다른 국가들에는 이러한 러시아 크렘린궁의 목표와는 무관하게 각자 자신만의 의제가 있다.

BBC 기자들이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주요 국가들이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정리했다.

러시아: 푸틴의 상징적 승리

그리고르 아타네시안(BBC 러시아어 서비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은 서방 세계 및 러시아 자국민들에게 러시아가 전 세계에서 고립된 왕따 국가가 아님을 보여줄 기회다.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제3세계 국가) 30여 개국의 외교관 및 정부 장관들도 이에 동의하는 듯한 모습이다. 여기에는 중국, 인도, 이란, 튀르키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물론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도 포함된다.

이들 중에는 러시아처럼 서방의 제재 대상에 오른 국가도 있지만, 튀르키예처럼 미국의 주요 파트너국이자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나라도 있다.

이들 국가의 정상들이 러시아를 기꺼이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경우 푸틴 대통령과 포옹하기까지 했다)은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미국 및 대부분의 유럽국가와는 달리 국제 질서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 아닌 또 다른 지역 분쟁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그러나 브릭스 정상회의가 크렘린궁에 상징적으로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라도, 어떤 실질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새 기축통화 개발 및 미국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에 도전하는 탈달러화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당장 이번 정상회담 공식 웹사이트는 방문객들에게 러시아에서는 마스터 및 비자 카드가 작동하지 않으니, 현금을 지참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게다가 “오직 미국 달러, 유로화만이 러시아 내 대부분의 은행에서 루블화로 자유롭게 환전할 수 있다”는 설명문도 눈에 띈다.

중국: 세계 질서 변화를 위한 엔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 회담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Reuters
중국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국가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고자 한다

첸 얀(BBC 중국어 서비스)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러시아인들은 양국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 보인다고 한들 중국이 특히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러시아 편에 서지 않길 원한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계속된 요청에 중국은 결국 러시아로의 민간 및 군사 용도로 모두 사용 가능한, 이른바 ‘이중용도’ 물품 수출을 제한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서방에 관해서는 종종 함께 발맞춰 나가는 행보를 보이곤 한다. ‘브릭스’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렇다면 중국이 정말로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 세계는 약소국의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는 규칙 기반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이 시스템은 종종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은 급격한 성장과 함께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세계 질서를 추구하려는 욕망을 품어왔다.

그렇다면 중국이 원하는 세계 질서는 어떤 형태일까. 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에게 더 편리한 질서를 원한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중국은 다른 국가들을 중국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권 등에 대해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다른 주권 정부에게 서로 덜 개입하는 국제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중국은 ‘인권 우선주의’가 아닌 ‘주권 우선주의’를 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중국은 이에 대해 동의하는 비슷한 생각을 지닌 국가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이 지닌 강력한 경제력, 인권에 대해 비교적 우려하지 않는 모습은 미국식 국제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 많은 국가들이 선호하는 바이다.

그리고 브릭스 그룹은 이러한 국가들과의 친목 도모의 장이 됐고, 새로운 회원국들도 추가되면서 이러한 의도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인도: 리더 및 평화 중재자가 되기를 원해

푸틴 대통령과 포옹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Reuters
모디 인도 총리는 자신은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도울 준비가 됐다고 말한다

라그벤드라 라오(BBC 힌디어 서비스)

인도 입장에서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는 특히 더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브릭스 내 다른 두 강대국이 모두 참여하기 때문이다.

모디 인도 총리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시 주석과 양자 회담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번 회담은 인도가 실효지배선 순찰에 대해 중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한 지 며칠 만에 이뤄진다. 2100마일(약 3370km)에 달하는 히말라야의 국경 지역으로, 제대로 정의되지 않아 분쟁이 잦으며, 실제로 2020년부터 인도와 중국 양국 관계가 껄끄러웠던 원인이었다.

인도는 이번 양국 정상 회담을 통해 지난 4년간 중국과의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국경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길 바라고 있다.

한편 인도는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평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굳힐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카잔에 도착한 모디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인도는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가 최근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모두와 이번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점, 도울 수 있다는 모디 총리의 발언을 통해 인도가 이번 위기 해결에 있어 더 큰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고 싶어 함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인도는 브릭스 국가들 간의 전략적, 경제적 협력을 추구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들의 리더로 자리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도는 러시아, 서방 세계 그 어느 쪽과도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면서도 양쪽 모두와 대화함으로써 자신들은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튀르키예: 브릭스 ‘및’ EU 가입 추구…보완이지 대체 아냐

엠레 테멜(BBC 튀르키예어 서비스)

지난달(9월) 브릭스 가입을 신청한 튀르키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필두로 한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유럽연합(EU) 가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브릭스 가입을 노리고 있는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이번 정상회의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브릭스 행사 중 따로 양자 회담 자리를 마련해 튀르키예의 브릭스 가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브릭스 가입을 위한 초기 단계로, ‘파트너국’이라는 신생 지위가 튀르키예에 주어질 수도 있다.

이 자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튀르키예는 경제 관계 다각화를 위해 아시아의 신흥 경제국들과 긴밀하게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식으로 브릭스와 협력할 의지를 거듭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튀르키예는 브릭스와의 협력은 EU와의 관세동맹 협정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다양한 국제기구에 참여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란: 듣기 좋은 음악과도 같은 일

케이반 호세이니(BBC 페르시아어 서비스)

이란의 귀에는 브릭스에 관한 모든 게 듣기 좋은 음악과도 같다.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두 비서방 핵보유국을 중심으로 한 이 지정학적 블록은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비전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메네이는 브릭스가 등장하기 수년 전부터 달러화 지배력을 통한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란의 현 이슬람 정권은 수립된 이후 거의 줄곧 미국 및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로부터 여러 심각한 제재, 자산 동결 조치 및 다양한 형태의 경제 압박을 받아왔다.

글로벌 금융 세계에서 미국 달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에 미국은 이란 주변에 금융 장벽을 설치할 수 있었고, 이란은 모든 형태의 거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릭스도 지금까지는 서방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현재의 세계 시장과 자유무역 체제를 재편하는 데 실패했으나, 이란 최고 지도자가 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는 이란 현 정권의 반서방 이데올로기가 승리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브라질: 영향력 확대

줄리아 브라운(BBC 브라질 서비스)

브라질은 브릭스 창립국 중 하나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라틴 아메리카 회원국이다. 올해 브릭스에 가입할 계획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결국 참여를 거부한 상태다.

브릭스 창립 이후 UN 안전보장이사회 재편 등 브라질과 관련 있는 일부 이슈가 다뤄진 바 있다. 그러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현 대통령의 3번째 임기가 시작된 이래로 국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브라질 정부의 계획에는 다른 이슈들도 추가됐다.

룰라 대통령은 언제나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가 되고자 했으며, 룰라 행정부는 이를 위해 브릭스 및 브릭스 5개국이 운영하는 국제 개발 금융 기관인 ‘신개발은행(NDB)’에 크게 기대는 모습이다.

리더를 꿈꾸는 브라질은 미국 달러에 대한 글로벌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 변화 담론을 주도하고, 여러 국제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에 브라질은 조금 더 실용적인 목표를 품고 참여하는 모습이다.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일 기본 요건을 정의하자는 안건이다.

브라질 정부는 모든 신규 회원국이 더 균형 있는 지리적 대표성을 누리고, 브릭스의 원조 회원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브라질이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의 준회원국 지명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시점에서 더욱더 중요한 부분이다. 이 두 남미 국가는 룰라 대통령이 들어서기 전 브라질과 동맹국이었으나, 최근 그 관계가 냉랭해졌다.

2024 브릭스 정상회의
Reuters
30개국 이상의 지도자들이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아프리카: 새로운 글로벌 VIP 클럽에 가입할 기회

브루노 가르세즈(BBC 아프리카의 소셜미디어 에디터)

브릭스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라는 3개국이다. 2010년에 브릭스에 가입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올해 새롭게 회원국이 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이다.

2010년 남아공이 브릭스에 가입했을 때 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큰 이슈로 다뤄졌다.

당시 다른 네 회원국들에 비해 경제 규모, 인구, 면적이 훨씬 작은 남아공의 가입은 상징적인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12월 24일 공식적으로 가입했는데, 이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겨낸 남아공이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여겨졌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인프라 및 광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었으며, 인종차별 및 비극적인 식민지 유산에 맞선 독특한 역사를 지녔다.

그 대가로 남아공은 은행업에서 광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거대 중국 투자 자본이 들어오길 기대했다(그리고 실제로 받았다). 또한 국제 무대에서 새로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나이지리아의 가입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 문제는 브릭스 블록이 앞으로 더 확장하며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해 브릭스는 아프리카 2개국을 추가로 더 환영했다. 그 주인공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였다.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자국의 브릭스 가입에 대해 “포용적이고 번영하는 세계 질서”에 참여할 기회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브릭스와 그 회원국의 높아진 위상에 대한 칭찬인 동시에 아프리카 국가를 포용하지 않거나, 예전만큼 번영하지 못하는 서구권의 주요 블록을 지적하는 발언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 두 아프리카 국가의 가입으로 브릭스는 새로운 가족 불화를 겪게 됐다. 에티오피아와 이집트는 나일강의 에티오피아 댐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내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동맹체를 구축한 사태다.

이렇듯 잠재적인 내부 분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브릭스로의 가입은 아프리카 및 여러 국가들에게 소중한 기회로 여겨진다.

신흥 경제국,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 입장에서 브릭스 가입은 무역과 경제 관계를 촉진하고, 더 저렴한 한도 대출을 얻어낼 기회이며, 서방 세계 중심의 질서가 도전 받고 있는 이 시기에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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