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조롱 사이의 외줄타기

풍자와 조롱 사이의 외줄타기

바자 2024-10-24 18:26:58 신고

3줄요약
지난 주 SNL 코리아의 방송이 또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뉴진스 멤버 팜하니의 국정감사 출석과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을 소재로 삼은 것.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고 웃길 수는 없는 것일까. 바람직한 코미디의 조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SNL 코리아는 벌써 6번째 시즌을 이어온 쿠팡 플레이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다. ‘파격적 웃음, 과감한 풍자로 대한민국 트렌드를 이끄는 코미디 쇼.’라는 슬로건 아래 ‘여의도 텔레토비’나 ‘주기자가 간다’ 등의 코너로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 덕분이다. 과거 몸개그나 외모 지적에 그쳤던 한국식 코미디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제가 된 사건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하거나 특정 인물을 ‘모사’하는 일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풍자와 조롱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지켜보면서 자주 웃음 대신 불안이 밀려왔다.
사진/ 쿠팡플레이 화면 캡처
사진/ 쿠팡플레이 화면 캡처
아니나 다를까. 김의성 배우가 출연한 지난주 방송은 뉴진스의 멤버 팜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을 소재로 삼은 ‘국정감사’, 한강 작가를 모사하고 요즘 세대의 텍스트힙 열풍을 풍자하는 듯한 콘텐츠를 내보냈다. 크루 배우들은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의 어눌한 말투를 따라 하고,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 발표 장면을 게슴츠레 눈을 뜨며 느린 속도의 말을 하는 모습으로 재현한 것. 뒤이어 ‘(한강)작가는 여성인데 ‘우먼’이 아니라 ‘맨’ 부커상을 탔다니 대단하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어디에서 웃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풍자가 아닌 조롱에 가깝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급기야 일부 하니의 팬들은 분노하며 외신에 보도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쿠팡플레이와 SNL 코리아 제작진은 묵묵부답이다.

코미디에는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을 읽어내는 고도의 센스,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시청자는 웃음의 소재로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선택한 이유와 이들이 선보이는 의도된 언행에서 미묘한 맥락을 읽어낸다. 그 맥락을 표현한 재치나 기지가 이해와 공감을 적절한 타이밍에 만났을 때 비로소 웃음을 터트린다. 남을 웃기는 일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개그를 보고 조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풍자의 대상이 잘못 설정되었거나 보는 이에게 웃어야 하는 정당성을 설득하지 못한 증거다. 다시 말해 제작진은 웃기는 일에 완전히 실패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실패라고 치부하기에는 어째 좀 아쉽다. 방송은 지나가더라도 찝찝함과 불쾌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풍자의 사전적 뜻은 ‘우회적으로 비유해 폐부를 찌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구 혹은 무엇을, 왜 찔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항상 뒤따른다. 풍자의 형식을 취하는 코미디가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과 문제 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제작진은 풍자를 통해 어디를 찌르고 싶었던 것일까. 더 나아가 코미디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거나, 특정 인물의 반성을 유도하는 일까지도 할 수 있다. 이때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않도록 선을 지키려는 창작자의 고민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풍자는 조롱으로 전락하거나 모호함으로 남게 된다. 하니가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아이돌 또는 미모의 20대 여성으로 납작하게 묘사될 때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을 둘러싼 다층적 논의는 힘을 잃고 만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 하니는 국내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노동자로 겪은 어려움을 증언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한 것이다. 한강 작가가 느리게 말하는 독특한 캐릭터로, 책을 읽는 행위가 ‘과시용 독서’로 치부되면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와 작품에 담긴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스워진다. 성추행 사건에도 문단으로 돌아와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남자 시인, 출석한 이유를 잊고 뒷자리에 앉은 하니에게 카메라를 들이대 셀카를 찍는 국회의원이나 국회 출석조차 하지 않은 소속사 대표의 빈자리가 코미디에 더 가깝지는 않은지를 묻고 싶다.

물론 코미디는 도덕적 가치나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는 일이 장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적어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개그와 없는 개그에 대한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더 나은 코미디를 위한 담론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유머와 풍자 가득한 코미디는 ‘우스운’ 장르가 아니다. 코미디언을 비롯한 창작자들이 고민과 노력을 거듭하는, 타인을 웃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종합 예술이라는 장르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더는 잃고 싶지 않다. ‘웃자고 하는 일’에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실컷 웃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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