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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 사유…“살인 입증 미흡” 중론
24일 경찰에 따르면 ‘36주 낙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전날 나온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대한 분석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 김석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병원장 70대 윤모씨와 집도의 60대 심모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기본적 사실관계에 관한 자료가 상당 부분 수집된 점, 피의자 주거가 일정한 점, 기타 사건 경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에 대한 구속은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증거 인멸 염려가 있을 경우 △도망할 염려가 있을 경우 중 하나를 충족해야 구속할 수 있다. 통상 살인 혐의는 형량이 높기 때문에 상당성이 인정되면 도망갈 염려가 있다고 봐 영장이 발부된다. 결국 살인 혐의에 대한 명확한 입증이 되지 않아 영장이 기각됐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경찰은 그간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병원 압수수색을 통해 진료기록부·휴대전화 등과 피의자·참고인들의 진술을 충분히 확보했다. 그러나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직접적 증거는 부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피의자 측은 “(수술 당시) 이미 사산된 아이를 꺼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장 업체에 제출한 사산증명서 역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경찰은 그간 사산증명서가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이어왔다.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산부인과 전문의 등으로부터 의료 관련 자문을 받아 이를 핵심 증거 중 하나로 이용했다. 실제로 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태아가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답변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자문 결과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진술을 종합해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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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수술 당시 생존 입증해야”
법조계에서는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술 당시 사산된 아이가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 임신 22주 내외면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게다가 36주 태아의 경우 모체 안에서 낙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36주 태아를 수술할 경우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지만, 이미 사산됐다는 주장을 한다면 살인죄 적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양태정 변호사(법무법인 광야)는 “36주차면 산모로부터 분리해도 인큐베이터 등을 통해 독자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살인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피의자가 ‘이미 사산됐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를 반증할 수 있는 증거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경찰 수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피의자의 자백이 중요한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이 신병을 확보해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 대질 수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기각 사유를 충분히 검토한 뒤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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