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미루던 전기요금 인상이 결정됐지만 고물가 등을 고려해 산업용만 인상하기로 하면서 기업들로서는 당황해하는 모양새다. 특히 정부는 수출기업들의 고통 분담을 강조하며 반도체 등 주력 산업들은 1.2조원을 추가 부담하게 되면서 불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24일 정부 및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이날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평균 9.7% 인상됐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주로 상용하는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1kWh 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중소기업이 주로 해당되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164.8원에서 173.3원으로 5.2% 올랐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전체 산업용 고객은 약 44만호로 한전 전체 고객(2500만여호)의 1.7% 수준이지만 전력 사용량은 53.2%에 달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를 통해 한전은 대략 전체 전기요금의 5% 가량을 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추가 전기 판매 수익은 연간 단위로 약 4조7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정부는 내수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서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까지 한꺼번에 올리는 건 쉽지 않다는 판단에 선택적 인상을 또다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 한전 정상화 위해 불가피한 반쪽짜리 선택
최남호 산업부 2차원은 지난 23일 브리핑을 통해 “대외적인 큰 변동이 없다면 이번 조치로 한전은 안정적인 흑자 기조로 바뀔 것이며 전반적인 재무구조도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산업용 을에 해당하는 기업은 대부분 제조업에 해당되는 수출 대기업이다. 수출에서 원가 중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1.4%에 불과하다”며 “수출 물가에 반영되고 만약 요금이 가격에 반영되더라도 수출 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차관은 산업계에서 고통을 분담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물론 기업이 부담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면서도 “(국가의) 어려웠던 상황이 지나고 상황이 좋아지면 과거에 (한전이) 공기업으로서 맡았던 부분을 (기업들이 맡아서 사회에) 환원한다고 생각해주면 어떨까 한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인상안을 두고서 경제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산업용(을) 전기요금의 이번 인상으로 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전력 사용 상위 20개 기업의 연간 전기료는 지난해 12조4530원에서 13조8796억원으로 1조4266억원 늘어났다.
기업들은 경기둔화와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중국의 저가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부담까지 떠안게 돼 자칫 산업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철강을 비롯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국가 기간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감당하게 됐다.
실제 현대제철의 경우 연 1166억원의 전기료를 더 납부하게 됐다. 문제는 철강업의 경우 중국산 저가 철강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은 원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체절은 전기로 11기를 보유하고 있어 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상이다. 지난해에만 1조84억원의 전기료를 냈다. 이는 고로 중심인 포스코(5028억원)보다 두배 많은 요금이다.
더욱이 저탄소강을 추진하면서 전기로 활용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이번 전기요금 인상이 불편할 따름이다. 현대제철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전기료는 연 1166억원으로 이는 올 상반기 영억이익 1538억원의 75.8%에 달한다.
이 같은 어려움은 철강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정유사들도 매한가지다. 정제마진 하락으로 올 3분기 적자가 예상되는 SK에너지와 에쓰오일의 경우 국내 전력 사용량 8위와 9위로 이들 기업의 전기료는 약 500억원씩 늘어나게 된다.
◇ 전력 사용 상위 20개사 연간 1조4266억원 부담 확대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해서 대항할 방법은 없다. 기업으로서는 내는 방법 뿐”이라며 “하지만 중국산 저가 공습을 비롯해 글로벌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원가 부담 압박이 강해질수록 기업으로서는 생산 채산성을 두고 고민할 수 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관계자는 또 “전력량을 산업용으로 절반가량을 사용하는 건 맞지만 기업들로서는 이미 한차례 산업용만 인상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제는 전력을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가 분담해야 하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기요금을 두고 정부와 경제계의 이견은 좀처럼 좁히기 힘들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업계는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이 유난히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은 2022년 32위에서 지난해 26위로 상승했지만 주택용은 계속 35위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보다 주택용 전기요금이 저렴한 OECD 회원국은 헝가리·튀르키에 뿐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가정용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보니 적절한 수요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 한전의 전체 전력 판매량은 전년 대비 0.4% 감소한 가운데 산업용은 –1.9&로 크게 감소한 반면 주택용과 일반용은 각각 1.7%, 2.9% 전력 사용량이 늘었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들은 잇달아 아쉽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3일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돼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밝혔고 한국경제인협회는 “대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국내 산업계의 경영활동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를 두고 한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화학 등 국내 주력 산업이 업황 악화,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까지 떠안게 돼 결국 기업에게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로 불활실성이 확대되고 있는데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비용 부담만 키우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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