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결국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경기 선언이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판도를 바꿨다.
23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KS 1차전 서스펜디드 경기와 2차전은 모두 KIA의 승리로 끝났다. 역대 KS에서 1, 2차전 모두 승리한 팀의 우승 확률은 무려 90%(20회 중 18회)에 이른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2승을 쌓은 KIA는 2017년 이후 7년 만의 'V12'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반면 삼성은 2경기를 모두 내주며 위기에 몰렸다.
◆가을비에 기사회생한 KIA, 대구에서 끝낼까
사실 KIA의 KS 1차전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올 시즌 정규리그 1위로 KS에 직행한 KIA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다른 팀들이 치열한 경기를 치르는 동안 자체 평가전, 대학팀과 연습 경기 등으로 담금질에 몰두했다. 하지만 KIA는 삼성의 1차전 선발투수 원태인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다. 서스펜디드가 선언되기 전까지 5이닝 동안 안타 2개를 뽑아내는 데 그쳤다. 이범호 KIA 감독은 “선수들에게 경기 전에 차분하게 하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1차전이다 보니 긴장하고 흥분하면서 경기가 잘 안 풀렸다”고 밝혔을 만큼 타자들의 움직임은 무거웠다.
하지만 광주에 내린 가을비가 KIA에 호재로 작용했다. 23일 KIA는 6회 초 노아웃 1, 2루 상황에서 재개된 1차전에서 실점 위기를 넘긴 후 7회 말 대거 4점을 뽑아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1차전을 따낸 KIA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2차전에 나섰고, 1회부터 5점을 올리며 8-3으로 크게 이겼다. 사상 초유의 KS 서스펜디드 선언으로 KIA에 1차전은 ‘연습경기’가 된 셈이다.
서스펜디드 선언 전까지 안타 없이 볼넷 2개만 골라낸 김도영은 “1차전을 앞두고 밤잠을 자지 못했다. 침대에서 3시간을 뜬 눈으로 보냈다. 그때는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들려고 한 게 독이 됐다. 1차전 중단 후 평소 자던 대로 하니까 오히려 잠도 잘 왔고, 컨디션도 좋았다”고 말했다. 재정비 시간을 가진 김도영은 2차전에 3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 자신의 KS 첫 홈런을 포함해 4타수 1안타(1홈런) 1득점 2타점으로 활약했다.
컨디션을 되찾은 KIA는 대구에서 열리는 3~4차전도 모두 따낸다는 각오다. 서스펜디드 경기 선언 후 살아난 타격과 변동된 투수 로테이션은 KIA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KIA는 3차전에 에릭 라우어, 4차전은 1차전 선발로 나섰던 제임스 네일이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다. 부상자가 많은 삼성과 달리 전력이 온전하고, 전상현, 곽도규, 정해영 등 선발 투수의 뒤를 받쳐주는 불펜진 역시 건재하다. 하지만 리드오프로 두 경기에 나선 박찬호의 타격 부진, 확실한 1루수의 부재 등 고민거리도 존재한다.
◆삼성, 타자 친화적인 홈구장에서 반등할까
1, 2차전을 모두 내주며 궁지에 몰린 삼성은 분위기 전환이 급선무다.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3승 1패를 거둔 상승세가 꺾였다. 삼성은 서스펜디드 경기가 선언된 1차전이 매우 아쉬웠다. 원태인은 5이닝 동안 단 2개의 안타를 내주며 호투 중이었고, 김헌곤은 네일의 결정구인 스위퍼를 받아쳐 1점 홈런을 기록, 1-0으로 앞섰다. 삼성은 김헌곤의 홈런 이후 기세를 올려 연속 두 개의 볼넷을 골라내며 노아웃 1, 2루 득점 기회를 만들며 1차전을 잡아낼 기세였다.
하지만 서스펜디드 선언으로 삼성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불펜진이 약점으로 꼽혀 선발 투수가 최대한 오랜 이닝을 버티는 것이 중요했다. 원태인은 1차전에서 투구 수 66개로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했으나, 가장 강력한 ‘원태인 카드’를 5이닝 만에 잃었다. 부상자가 많다는 것도 삼성에 악재다. 외국인 투수 코너 시볼드, 불펜투수 최지광과 백정현이 부상으로 KS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주장 구자욱은 PO 2차전에서 무릎 부상, 유격수 이재현은 2차전 도중 발목에 통증을 느껴 교체됐다.
하지만 반등의 여지는 남아있다. 타자 친화적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3, 4차전이 열린다. 삼성은 홈 경기장에서 올 시즌 좋은 성과를 냈다. 앞서 PO에서 LG를 상대로 1, 2차전에서도 각각 10득점, 총 20점을 올리며 화끈한 타격을 자랑했다. PO 1차전에서 3홈런, 2차전에서도 5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흐름을 가져간 바 있다. 구자욱도 중요한 상황에서 대타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대를 걸어볼 여지는 충분하다. 삼성은 KS 2차전에서도 KIA(10개)보다 많은 안타(12개)를 생산했다.
다만 KS에서 침묵한 장타가 터져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삼성은 PO 3차전 이후 4경기서 5득점에 그친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이기는 패턴이 되기 위해선 장타가 나와야 하는 데 결정적일 때 장타가 터지지 않았다. 대구에서는 장타력을 생산해서 좋은 흐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대 KS에서 2차전까지 모두 패하고 우승한 경우는 10%(20회 중 2회)에 불과하다. 하지만 2회 중 1회를 삼성이 이뤄냈다. 삼성은 지난 2013년 2차전까지 패하고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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