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칼럼] 엄금희의 문학으로 바라본 경제

[논설주간 칼럼] 엄금희의 문학으로 바라본 경제

CEONEWS 2024-10-24 13:47:53 신고

3줄요약
엄금희 논설주간
엄금희 논설주간

 

 [CEONEWS=엄금희 논설주간] 세계 최초의 기축통화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 탄생했다. 기축통화로 통상의 번영을, 솔론의 개혁으로 민주 정치의 토대를 이루어낸 아테네는 그리스의 맹주가 되었다. 그러나 패권에 대한 집착과 팽창정책의 유혹에 젖어 금화에 구리를 섞는, 도덕적 해이가 뚜렷한 통화 주조 방법으로 세입보다 세출을 늘렸다. 역사상 최초의 재정적자 정책이었다. 그 끝은 통화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었다. 통화 시장이 붕괴되자 아테네도 수명을 같이했다.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그리 오래 간직하지 못한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제국도 아테네와 똑같은 우를 범한다. 로마제국의 기축통화는 데나리우스 은화였다. 네로 황제는 늘어나는 조세 저항과 로마 대화재로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데나리우스 은화에 구리를 섞어 통화를 늘리기 시작했다. 이후 역대 황제들이 구리의 양을 늘려가자 시민들이 동전 및 은화를 불신해 통화 시장이 붕괴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통화 시장의 붕괴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켜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도시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자 도시민들은 시골로 내려가 영주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농노가 되었다. 이렇게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문명은 암흑의 중세가 되었다.

화폐 개혁을 주도했던 네로 황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불바다가 된 영원한 도시 로마이다. 누군가 화마의 등짝에 채찍질을 하였을까. 불은 맹렬히 타올랐다. 화염은 주택과 거리, 성소까지 삼켰다. 서기 64년 7월이다. 찬란했던 로마는 그렇게 잿더미에 깔렸다. 130만여 명이 살던 대도시는 불에 타버렸고, 사망자는 수만 명, 집을 잃은 이는 수십만 명이었다. 이 참사가 '로마 대화재'이다.

로마 제국 황제는 네로였다. 재앙의 소식을 들은 그는 휴가지에서 돌아와 수습에 힘을 쏟았다. 당장 자기 소유의 별장 문을 열었다. 이곳에 이재민 캠프를 지었다. 이어 외곽과 속주를 향해 구호 물품을 보내도록 명령하고, 불이 잘 붙는 소재로는 건물을 짓지 못하게 법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네로 황제는 어느샌가 들뜬 모습을 보였다. 검정 도화지가 된 도시 앞에서 오랜 기간 간직한 로망을 펼칠 마음이었다. 그는 폐허가 된 도시 곳곳에 그리스식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했다. 목 좋은 곳에는 도무스 아우레아, 이른바 '황금 궁전'을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금으로 재정을 메우지 못하자, 네로는 통화 변조에 손을 댔다. 이른바 통화 절하다. 대화재로 소실된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통화는 금과 은에 불순물을 섞지 않고 본래의 무게와 크기를 유지했다. 돈의 재료로 사용된 귀금속 그 자체가 가치를 지녔다. 네로가 통화 가치에 손을 댄 것이다.

당시 금 1파운드로 41개의 금화 아우레우스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네로는 1파운드로 45개의 아우레우스를 만들도록 했다. 은화 데나리우스도 12% 가벼워졌다. 명목상 통화 가격과 실질적 가치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새 통화는 기존의 통화보다 가치는 떨어졌는데 동등한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영리한 시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새 주화를 재래 주화에 비해 할인해 유통했다. 금값은 올라갔다. 은화에는 구리를 섞었기 때문에 금화보다 가치 하락이 심했다. 금화는 12% 하락한데 비해 은화는 25% 절하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나타났다.

네로 황제는 로마 대화재가 발발하기 10년 전인 54년,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에 올랐다. 나이는 17살이었다. 이는 그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만들어준 자리였다. 앞서 아그리피나는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아내로 황궁에 입성했다. 그녀는 전임 제3대 황제 칼리굴라의 여동생이었다. 아그리피나는 이러한 배경과 마성의 매력으로 황실을 휘어잡았다. 이때 그녀 손을 꽉 잡은 아이가 있었다. 과거 그녀의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식 네로였다. 그녀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세 번째 남편이었다.

아그리피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그리피나는 유한 성격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구워삶았다. 그리고 네로를 황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얼마 후 갑작스럽게 죽었다. 목표를 이룬 아그리피나가 그를 독살했다.

엉겁결에 소년 왕이 된 네로는, 초기 5년간은 좋은 행보를 보였다. 특히 친서민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네로 체제에서 시민은 공공시설 확대, 귀족 중심이었던 공연 등 볼거리 전면 개방 등 일상 속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 총명함이 있었고, 박식한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를 스승으로 둔 덕이기도 했다. 네로는 인기의 맛을 봤다. 심약한 그에게 그것은 꿀처럼 달콤했다. 모든 결정의 기준이 신념도, 철학도 아닌 광장 속 환호가 되기 시작했다.

치세 5년 차인 네로는 인기에 취해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배급과 축제 등 대중 영합주의 정책을 더 크게 벌이고 싶었다. 아그리피나가 맺어준 황후 옥타비아와의 연을 끊는 한편, 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하지만 아그리피나가 사사건건 간섭했다. "말 안 듣는 아들놈을 다른 녀석으로 갈아치울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퍼졌다. 네로는 모든 걸 잃을까 봐 두려웠다. 주변에선 "이럴 때 황제가 강한 모습을 보여야 대중이 좋아한다"라며 결단을 촉구했다. 그래서 네로는 그녀를 죽였다. 처음에는 사고로 위장해 익사시키려고 했다. 그녀가 헤엄쳐 살아남자 다시 자객을 보내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아내인 옥타비아를 도마 위에 올렸다. 옥타비아는 수수한 외모이긴 했지만, 품격과 현명함을 두루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는 간통죄에 반역 누명까지 쓴 채 참혹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노래를 부르며 하프를 연주하는 네로의 공연에 기다렸다는 듯 박수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가 악기를 든 팔을 번쩍 들자 이번에는 곳곳에서 휘파람이 넘실거렸다. 나폴리의 한 공연장에서 네로는 가수로 공식 데뷔했다.

네로는 감동한 시민들이 그에게 다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리라 믿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순회공연 또한 흥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다. 네로의 시에 감격하고, 네로의 음악에 감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박수부대였다. 시민들은 황제가 통치에 집중하지 않는 데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외국물을 먹은 광대처럼 나서는 게 못마땅할 뿐이었다.

그리고 네로는 난데없이 방화범으로 몰린 이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그가 들불처럼 퍼지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쓴 술수는 새로운 희생양이었다. 네로는 분풀이하듯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 네로는 기독교인에게 다짜고짜 털가죽을 씌우곤 맹수 우리에 던져버렸다. 일부는 십자가에 못 박은 채 매달았고, 또 일부는 그 상태로 불에 태워 죽였다. 포박당한 사람들은 인간 횃불이 되었다. 누명을 쓴 희생양의 비극적 최후는 강렬했다. 잔혹함은 시민들의 가슴을 동정심으로 채웠다.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기독교도들에게 가한 잔혹함은 역효과만 일으켜 로마 대화재 후 황실의 태양은 급격히 기울었다.

그렇게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못한 채 몰락했다. 평소처럼 잠을 뒤척이던 네로가 호위병을 불렀다. 그러나 이날 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암살이 있을 것을 직감한 네로는 황궁에서 탈출했다. 그가 피신한 곳은 한 노예의 집이었다. 저 멀리서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네로는 노예에게 칼을 건넸다. 자기 머리를 찌르도록 명령했다. 쓰러진 네로는 "참으로 훌륭한 예술가인 내가 죽는구나"라는 말을 내뱉었다. 다급히 달려온 병사들이 그의 죽음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늦었어. 내 절정의 상징이야." 네로는 이 말을 끝으로 죽었다.

Copyright ⓒ CEO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