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人] 이승윤 "불합리 향한 빈정거림…'역성' 만들기 위해 가수 됐구나"

[조이人] 이승윤 "불합리 향한 빈정거림…'역성' 만들기 위해 가수 됐구나"

조이뉴스24 2024-10-24 07:0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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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가수 이승윤이 24일 오후 6시 전 음원 사이트를 통해 정규 3집 '역성'을 발표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대중 음악 시장 속 굳건하게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긴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승윤은 이번 앨범을 통해 조금 더 직설적이고 강렬한 가사들로 대중을 향해 소리친다.

이승윤은 최근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정규 3집 '역성'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거스르지 못하는 것들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앨범에 담은 배경, 또 '역성'을 통해 선보일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랫말의 비화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는 이승윤과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가수 이승윤이 새 정규 앨범 '역성'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마름모]

◇신보 발매 소감은?

지난해 4월부터 만든 앨범이라 꼬박 1년 6개월 만에 앨범이 나온다. 이전 앨범 발매했을 땐 아쉬움이 있거나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번엔 자부심이 드는 걸 보니 만족스러운 듯 하다.

◇어떤 면에서 앨범 만족도가 높은가?

이걸 하려고 음악을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들이 완성되면서는 '이 노래 만들려고 내가 기타를 잡았나보다', 앨범이 완성된 이후엔 '내가 이러려고 가수 했나 보다' 싶었다.

◇신보 '역성'의 뜻은 뭔가.

앨범을 만들면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모든 걸 다 거스르는 내용이구나 생각했다. 거스르는 것을 함축시키는 단어를 찾다가 역성을 알아냈다. 또 역성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일'이라는 뜻도 있더라. 두 의미를 다 담은 앨범을 나도 모르게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신보 설명을 보면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을 거슬러 보겠다'는 문장이 있더라. 이승윤에게 '거스를 수 없는 것'이란?

태어나서 2024년을 살고, 한국인으로 살고, 시대의 흐름을 사는 것처럼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것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서 아주 특별하진 않아도 고유한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나의 고유함을 되짚어 보고 싶었다.

◇이번 앨범에는 이승윤의 고유함이 어느 정도 들어갔나.

270% 들어갔다. 완벽한 고유함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를 최대한 담아내려고 했다. 이 앨범이 완성됐을 때 '이 앨범 만들려고 음악을 시작했나보다' 했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굉장히 많은 것을 담은 앨범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고유한 이승윤'은 어떤 사람인가?

줏대 없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용기는 없는데 가끔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을 지금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 현실주의자면서도 이상주의자인 모순된 캐릭터다. 하지만 이상에 매몰돼 봐야 현실주의자가 되고, 현실에 치여봐야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갈 지' 자로 뻗어나가는 내 마음을 너무 둘러대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

가수 이승윤이 새 정규 앨범 '역성'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마름모]

◇정규 앨범을 내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발매하게 됐나.

나는 정규라는 당위에 매료돼서 음악을 한 사람이다. 정규 앨범의 긴 호흡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시대나 산업에 꼭 맞는 형식이 아닌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내 노래를 들어주는 분들이 계신 이 시점에 정규 앨범을 한 번만 더 내보자는 생각을 했다. 정규 앨범을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걸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 없이 만들어지는 대로 만든 앨범이다. 감정적인 대로 감정적으로, 이성적인대로 이성적으로, 미지수인 상태로 앨범을 만들었는데도 만족스럽다.

◇'역성'을 통해 하고 싶었던 긴 얘기는 무엇인가.

이 앨범이 '잡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 멜로디를 담당하는 어떤 것들이 있고, 훨씬 많은 잡음들이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번 멜로디는 잡음이라 일컬어지는 마음, 이름, 고민들에게 역성의 용기를 줄 수 있는 앨범이 됐으면 하는 작은 마음이 있었다. 맥락처럼 전시되지 않고 호명되지 않은 이름들에게 이 노래가 마음껏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노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이승윤의 음악은 소외된 사람들, 무명의 존재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게 이승윤의 정서나 바탕을 형성하는지.

무명이라는 단어 자체를 선호하지 않지만.. 그 단어의 프레임 속 삶을 살고 있을 땐 나 자신의 이야기라서 관심이 많았다. 이제 내 이름을 많은 분들이 연호해 주시는 삶을 살다보니,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분들의 이름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고, 이름들의 수고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모순된 지점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이번 앨범은 내 이름을 빛내주기 위해 애써주는 분들을 위해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창작자로서 혹은 말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귀기울임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에너지와 활동의 원동력은?

이번 앨범은 나와 무대 같이 오르고 작업도 같이 하는 조희원 이정원 지용희와 지난해 4월 각자가 느낀 무력함과 벽, 고민들을 나누면서 시작됐다. 이런 무력함 속에서 '우리 한 번 0부터 같이 만들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지점을 바라보며 살아볼까?'하며 속내를 털어놨던 게 원동력이 됐다. 또 나는 무력감이나 좌절이나 화가 날 때 음악으로 해소하는 것 같다. 창작하며 소진이 되는 것도 있지만, 나에게 창작은 해소의 영역이기도 해서 아직까진 그게 내 원동력이다.

◇공연으로 얻는 에너지도 클 것 같은데.

내 장점은 아직 무대에서 진심으로 재밌다는 것인데, 최근에 '내가 무대에서 즐거울 수 있을까?' 아슬아슬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막상 무대 올라가서 관객을 보고 에너지를 받으니 진심이 아니 될 수 없어서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슬아슬한 무력감을 왜 느끼게 됐나.

세세하게 말하긴 부끄럽고 작년 어느 시점에 '나는 그래서 어떤 음악인이 될까?',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름의 고민을 했다.

◇음악에 대한 회의감이라고 보면 되나.

'우리가 어딘가에 나열되는 사람들인가?', '장식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거기 나열되고 싶은가?' 그런 생각도 했다. '음악을 왜 하고 싶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음악을 사랑하는구나 생각했다. 이 마음이 충만할 때 다 쏟아내자 생각했다.

◇타이틀곡은 '역성'으로 정해놓고 진행했나.

'역성'이라는 앨범명을 정해야겠다가 먼저였고, 내부에서는 '폭포'라는 노래가 만장일치였다. '폭포'는 자부심을 느끼는 노래라 선발매로 냈다. 이 앨범에서 단 한 곡을 남긴다면 '폭포'를 남길 것 같다. 나는 '폭포'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역성'은 인트로와 벌스 정도만 만들고 너무 대곡 같아서 손 대지 않으려다가 만들었다. 아니나다를까 대곡이 됐다. 하하.

가수 이승윤이 새 정규 앨범 '역성'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마름모]

◇이승윤이 말하는 '대곡'의 기준은 뭔가.

대곡 병이 있어서 웬만한 건 다 대곡이긴 하다. 특히 함께 해주는 분들의 마음이 일치단결 됐을 때 더 대곡이라 생각한다.

◇바쁘게 음악과 공연을 하는데 휴일을 어떻게 보내는가.

누워서 스도쿠 한다. 하는게 별로 없다. 지지난 주 피파 새로 나온거 깔아서 세 판 했다. (건강 관리는?) 잡혀진 일정들이 있어서 건강 관리보다는 건강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신보 가사들을 보면 어느 한 곳을 지목해서 비판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혹시 비판의 대상이 무엇인가.

미시적인 이야기에서 거시적인 이야기까지 내포하고 있다. 내 나름대로 이야기와 비판의 대상은 있습니다만 그걸 내부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게 열린 문을 만드는 것 같아 함구하려고 한다.

◇사색적이고 웅장하고 철학적인 단어들의 가사가 흥미롭다. 그런 단어들을 유독 많이 써서 작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있어보이려고. 하하. 가사를 쓸 때 그래도 뭔가 고유한 문장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초안을 다듬는 작업을 많이 한다. 생소한 단어를 넣는 경우도 있다. '피투', '기투' 등의 단어는 노래를 가짜 영어로 부를 때 비슷한 단어를 써서 우연한 발음의 일치로 들어가게 된 가사다.

◇수많은 가사 중 기억에 남고 좋아하는 가사나 문장이 있다면?

'역성'이라는 노래에 '영영 위대하소서 영원히 눈부시옵소서 허나 하나 청하건대 다 내놔'를 쓰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빈정거림 같았다.

◇이승윤은 어떤 때 빈정거리게 되는 편인가.

아무래도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그러는 편이다. 그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을 발화하는 대상이 세간의 당위성을 입고 있을 때 돌려 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 팬들의 애정이 뜨거운데 어떤 매력에서 사랑을 받는 것 같은가?

나는 내가 남자 팬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시야를 마주해서 '어?' 했다. 너무 감사하다. 내 노래가 세대에 아주 많은 영향, 구애를 받지 않는 것 같아 굉장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좀 고전적으로 생겨서 인기가 많나 싶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밴드 음악들이 1960~90년대가 전성기라서 그런 요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왜 남자 팬들이 많을거라 생각했었나.

절대 다수가 남자 팬이 되는 건 너무 싫고요, 하하. 지금은 너무 비율이 (차이 나서)…. 그래서 공연을 하면 남성 팬들이 존재감 어필을 엄청 하신다. 그 분들 덜 외롭게 해드리고 싶다.

◇이승윤은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역성을 만든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이번 앨범에 매우 큰 자부심을 느껴서 그렇게 남으면 좋을 것 같다. 대단한 목소리를 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승윤이라는 개인, 단 한 명의 리스너로서 노래가 너무 좋은 것 같다.

◇이정도의 만족감이라면 다음 앨범 준비하려면 창작의 고통이 크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 때의 내가 느끼게 되겠지만 지금 나는 만족감이 더 커서 그 고통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스포츠로 치면 5연패 6연패 하는 위대한 팀도 있지만 단 한 번의 승리로 회자되는 팀도 있다. 꼭 4집이 3집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이 너무 만족스럽다.

◇'역성'처럼 목소리를 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목소리를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진정성 있게 알아주지 않는다. 스피커를 달고 말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용기가 필요할 땐 내도 되지 않나 싶은 거다.

◇최근 불고 있는 록, 밴드 열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페스티벌 열풍이라 생각한다. 밴드라는 음악 형식, 록이라는 장르에 붐이 오면 더 치열한 고민을 해야하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닫혀있음과 무언가를 끌어오기 위한 열려있음이 더 활발해야 한다. 나는 대중이 페스티벌 붐을 밴드 붐으로 너무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데뷔 10년, 지금까지 이승윤으로서 이룬 것 중에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성'이라는 앨범을 만든 것.

◇이승윤의 빈정거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는 노엘 갤러거 같은 가수가 될 것 같기도 하다. 20년, 30년 뒤의 이승윤은 어떤 사람일까.

일단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난 그 뒤에는 내가 역성의 대상이 될 것 같다. 내가 역성의 대상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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