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않고 브레시아와 로마 사이를 잇는 500마일 길이의 코스를 왕복해야 하는 험난한 레이스
참가자 중에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던 56세의 노인이 있었다.
곧 출발 신호가 켜졌고,
노인은 그의 오랜 벗이 만든 첫 레이스카를 타고 출발선을 지나 터닝 포인트인 로마로 향했다.
이제 눈은 잘 보이지 않고 기침할 때마다 피가 섞여나왔지만
첫번째 체크포인트인 페스카라에서 그는 선두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 12분 빠른 기록으로 로마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500마일을 더 달려야 했고, 도로는 매우 좁고 험난했다.
늦은 밤 로마의 시골길을 질주하던 그는 보닛에서 덜그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안가 후드는 처참하게 뜯겨 그의 머리 위로 날라가버렸다.
하지만 그는 옆에서 공포에 질린 라이딩 메케닉을 이렇게 위로하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잘됐다, 이제 과열로 고장날 일은 없겠네."
그는 멈추지 않았다.
피렌체에선 험난한 도로를 버티지 못하고 시트를 고정하던 볼트가 떨어져 나갔다.
헐거워진 시트는 심한 멀미를 동반했고,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과감하게 시트를 때어낸 뒤 그 자리에 오렌지 봉지를 깔았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모데나에서 그는 범퍼를 잃었다.
이제 그의 벗도 레이스를 멈추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29분 앞서있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설득에 실패한 친구는 울면서 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우승을 기원하던 이탈리아 국민들도 라디오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파르마에서 모든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후륜 판 스프링마저 부셔졌다.
여전히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차는 그의 속도를 버티지 못했다.
결국 그는 빌라 오스피지오에서 멈춰야 했다.
만신창이인 몸 상태 덕분에 그 자리에서 쓰러진 노인을 주민들은 지역 사제의 침대로 옮겼다.
소식을 들은 그의 벗도 사제의 집에 찾아와 이렇게 위로했다.
"타지오, 내년에 이 레이스는 네 것이 될거야."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엔초, 우리 나이에 이런 날은 많지 않을거야. 할 수 있을 때 즐겨야 해."
1948년 밀레밀리아는 타지오 누볼라리의 마지막 레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누볼라리는 남은 여생을 요양하며 보내다 1953년 6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F1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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