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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마구’로 불렸던 주무기 스크루볼을 앞세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멕시코 출신 전설의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은 23일(한국시간) 발렌수엘라가 별세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발렌수엘라가 현역 시절 활약했던 LA다저스 구단은 “발렌수엘라가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AP통신 등 외신들도 “발렌수엘라가 지난달 갑작스럽게 다저스 구단의 스페인어 해설자를 그만두고 이달 초 병원에 입원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발렌수엘라는 1980년대 MLB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1980년 다저스 유니폼을 압고 처음 빅리그 무대를 밟은 발렌수엘라는 이듬해인 1981년 해당 시즌을 완전히 평정했다. 25경기에 선발 등판해 13승 7패 192⅓이닝 180탈삼진 평균자책점 2.48을 기록, 신인상과 사이영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파업 때문에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그해 발렌수엘라는 선발 등판(25경기)과 완투(11경기), 완봉(8경기), 탈삼진까지 모두 리그 최다 기록을 수립했다.
이후 다저스의 주축 투수로 발돋움한 발렌수엘라는 이듬해 1982년부터 1987년까지 6년 연속 250이닝 이상 투구했다. 이 기간에 98승 75패 평균자책점 3.19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발렌수엘라 하면 스크루볼의 달인이었다. 스크루볼은 왼손 투수가 던지면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간다. 때문에 오른손 타자 입장에선 알고도 삼진을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크루볼은 팔을 비틀어 던지기 몸에 무리가 많이 가고 부상 위험이 크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스크루볼을 구사하는 투수가 거의 없다. 대신 보다 던지기 수월한 서클 체인지업을 많이 선택한다.
발렌수엘라도 스크루볼의 악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지나친 혹사로 인해 서서히 가량이 꺾인 발렌수엘라는 1990년을 끝으로 다저스에서 방출됐다. 이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여러 팀에서 활약한 뒤 199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453경기 173승 153패 2074탈삼진 평균자책점 3.54다. 1986년에는 21승을 기록, 그 해 내셔널리그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스타에도 6번이너 뽑혔다.
은퇴 후 다저스와 잠시 멀어졌던 발렌수엘라는 2003년 구단 스페인 중계 해설자로 복귀하면서 다저스와 다시 인연을 맺었다. 다저스 구단은 지난해 발렌수엘라의 등번호 34번을 뒤늦게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공교롭게도 발렌수엘라는 다저스와 양키스가 1981년 이후 43년 만에 치르는 월드시리즈 맞대결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다저스 구단과 팬들이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43년 전 다저스는 양키스를 4승 2패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당시 승리 영웅이 바로 발렌수엘라였다. 발렌수엘라는 다저스가 2패로 뒤진 상황에서 3차전에 선발 등판해 9이닝 4실점 완투승을 거둬 반격의 신호탄을 쐈다. 다저스는 발렌수엘라의 호투를 발판삼아 내리 4연승을 거두고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스탠 카스텐 다저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발렌수엘라는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다저스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며 “그는 팬들을 하나로 모았고, 선수뿐만 아니라 방송인으로도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 너무 일찍 떠났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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