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학부모 단체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라 보고 전국 초·중·고 도서관에 비치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이하 전학연)은 23일 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학연은 “한강 작가의 저서를 읽어보지 않은 국민 대부분은 실제 작품의 내용은 알지 못하면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식만으로 대단히 기쁜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한강의 책을 읽은 사람 중에는 어른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대단히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책을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려는 시도에 학부모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청소년 보호법을 근거로 들었다. 청소년 보호법 제9조 제1항에 따르면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에는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이 포함돼 있고, 이에 해당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해야 한다.
전학연은 “누가 보아도 청소년유해매체물인 내용의 책을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직 미성년인 초·중·고등학생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19금 성인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해서 ‘청소년 관람 가능’한 영화가 될 수는 없다”며 “영화에 관람 불가 등급이 있듯 도서에도 미성년 보호를 위해 연령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17일 이들은 취임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을 향해서는 “‘채식주의자’를 끝까지 읽어봤는지, 그리고 미성년 손자·손녀가 있다면 과연 필독 도서로 추천하고 싶은지 공개적인 답변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후보 시절인 지난 13일 논평을 내고 “조전혁 후보가 서울시교육감이 된다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등이 학교도서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울러 이들 단체는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에 △‘채식주의자’가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지 않도록 조치할 것 △‘채식주의자’가 공공도서관의 아동·청소년 서가에 비치되지 않도록 당장 조치할 것을 촉구했다.
전학연이 지난 22일부터 시작한 채식주의자 비치 반대 서명에는 이날 오후 7시 기준 개인 1만474명, 단체 195개가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명은 계속 진행 중인 상태다.
‘채식주의자’의 학교 도서관 비치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전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등장했다. 지난해 경기도 소재 학교 도서관에서 ‘채식주의자’가 성 묘사 문제로 폐기된 사례에 관련한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날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채식주의자’를 읽어봤는데 아주 깊은 사고 속에서 쓰인 작품”이라면서도 “책에 담긴 몽고반점 관련 등의 부분에서는 학생들이 보기에 저도 민망할 정도의 그렇게 느끼면서 읽었다”고 했다.
임 교육감의 답변에 더불어민주당 정을호 의원은 “시대착오적 도서 검열”이라고 규탄했으며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경기교육청이 지난해 3차례나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목록 제출’ 등 문구가 담긴 공문을 학교에 보낸 것은 검열 또는 강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채식주의자’는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자가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데 이어 죽음에까지 다가가는 이야기다. 해당 소설은 2016년 영국 맨부커상 국제 부문(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 받은 작품으로, 한강을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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