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부동산 재벌에서 대통령, 다시 대선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부동산 재벌에서 대통령, 다시 대선 후보로

BBC News 코리아 2024-10-23 13:03:49 신고

3줄요약
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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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직에 3번 연속 출마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억만장자였다.

2015~16 대선에 출마하기 전까지 뉴욕의 부동산 재벌인 그의 삶은 수십 년간 타블로이드지와 TV를 통해 늘 대대적으로 노출됐다.

자신의 유명세와 정제되지 않은 선거 캠페인 방식을 바탕으로 여러 노련한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대통령까지 올랐던 트럼프는 논란으로 가득했던 재임 기간을 보낸 뒤 단 1번의 임기 만에 백악관을 내줘야만 했다.

현재 78세로 또 한 번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을 차지하는 놀라운 정치적 복귀를 이뤄내고자 싸우고 있다.

가업의 후계자

청년 시절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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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1971년 가업을 이어받았다

트럼프는 뉴욕의 부동산 재벌 프레드 트럼프의 네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아버지의 회사에서 가장 낮은 직급의 일을 해야 했던 그는 학교에서 비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자 13세 때 군사학교로 보내졌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학위를 받은 트럼프는 형 프레드가 조종사의 길을 택하면서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주목받게 된다.

형 프레드는 알코올 중독으로 43세의 나이에 사망했는데, 이로 인해 트럼프는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년 시절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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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가업을 물려받은 뒤 브루클린과 퀸스의 주택 사업보다는 화려한 맨해튼의 고급 부동산 사업에 집중하길 택했다

트럼프는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로부터 100만달러 정도의 “소액”을 빌려 부동산 사업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뉴욕시 곳곳에서 운영하던 여러 주택 사업의 관리를 도왔고, 이후 사업을 완전히 물려받게 된다. 1971년에는 사명을 ‘트럼프 오거나이제이션’으로 바꿨다.

트럼프가 “내게 영감을 주던 인물”이라고 했던 아버지는 1999년 사망했다.

‘트럼프’라는 브랜드

회의 중인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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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창하는 그의 기업 왕국과 함께 트럼프 개인도 점점 더 유명해져갔다

트럼프는 가족 사업을 물려받게 된 이후 브루클린과 퀸스의 주택 사업보다는 화려한 맨해튼의 고급 부동산 사업에 집중하길 택했다.

뉴욕의 그 유명한 5번가에는 그의 부동산 사업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자, 오랜 세월 그가 실제 거주했던 ‘트럼프 타워’가 들어섰다. 오래된 코모도 호텔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탈바꿈했다.

아울러 카지노, 콘도, 골프장, 호텔 등 브랜드 ‘트럼프’의 이름이 붙은 다른 부동산도 미국 애틀랜틱 시티, 시카고, 라스베이거스부터 인도, 튀르키예,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들어섰다.

이에 더해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미스 틴 USA 미인대회의 운영권 소유자로서, NBC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의 제작자 겸 진행자로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트럼프 그룹’ 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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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의 14개 시즌에서 진행자를 맡았다. 해당 쇼에는 그의 자녀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14개 이상의 시즌으로 이뤄진 ‘어프렌티스’의 참가자들은 트럼프의 기업 왕국에서 매니지먼트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쟁을 벌였으며, 이때 트럼프는 자신이 줄곧 외친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대사 덕에 더욱더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아울러 트럼프는 책도 여러 권 집필했으며, 영화에도 출연하고, 프로레슬링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넥타이부터 음료까지 안 파는 게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순자산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포브스는 트럼프의 현재 자산이 약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트럼프는 총 6차례 사업 파산 신청을 한 바 있다. 아울러 트럼프 스테이크, 트럼프 대학 등 그가 시도한 여러 벤처 기업이 결국 도산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세금 관련 정보를 철저히 숨겨왔는데, 2020년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수년간 이어진 소득세 회피 및 만성적인 재정 손실이 드러났다.

가족사

트럼프와 전 아내 이바나 젤니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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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나 젤니코바와의 결혼과 이혼은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트럼프의 사생활 또한 대중의 큰 관심거리였다.

그의 첫 번째 아내이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아내일 여성은 체코 출신 운동선수이자 모델인 이바나 젤니코바이다. 트럼프는 1990년 이혼하기 전까지 젤니코바와의 사이에서 도널드 주니어, 이방카, 에릭 등 2남 1녀를 뒀다.

두 사람의 험악한 법정 다툼은 잡지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고, 젤니코바가 제기한 가정 폭력 혐의(이후 젤니코바는 혐의의 심각성을 축소했다)는 이후 제작된 트럼프 관련 영화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그렇게 이혼한 트럼프는 1993년 배우 출신 말라 메이플스와 재혼했다. 메이플스가 이들 사이의 유일한 자녀인 딸 티파니를 낳은 지 2달 뒤였다. 메이플스와는 1999년 이혼했다.

트럼프와 멜라니아 트럼프, 아들 배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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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와는 아들 배런(18) 하나를 뒀다

트럼프의 현재 아내는 슬로베니아 모델 출신인 멜라니아 크나우스이다. 두 사람은 2005년에 결혼해 최근 18살이 된 아들 배런 윌리엄 트럼프를 뒀다.

한편 트럼프는 정치계에 입문한 이후 줄곧 여러 성추행 및 외도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초, 배심원단은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롤이 트럼프를 상대로 제기한 성폭행 혐의를 인정했으며, 이후 또 다른 배심원단은 트럼프가 캐롤의 성폭행 피해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트럼프는 캐롤에게 배상금 88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평결을 받았으나, 항소했다.

아울러 트럼프는 지난 2006년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외도 이후 이를 입막음하고자 돈을 지급했으며, 이와 관련해 회사 장부를 위조한 혐의로 중범죄 34건을 적용받아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선 후보

1980년 당시 34세였던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계는 “매우 비열한 삶”이라면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은 정치가 아닌 사업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조차도 1987년부터는 대선 출마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개혁당 소속으로, 2012년에는 공화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잠시 맛보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출생 음모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2016년이 돼서야 사실이 아님을 인정했으나, 사과는 없었다.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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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트럼프 타워의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모든 게 시작됐다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포한 것은 2015년 6월이 돼서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면서 “자신이 아메리칸 드림을 더 크고 더 좋게 되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출마 연설에서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자신의 부와 사업 성공을 과시하는 한편 멕시코가 마약과 범죄, 강간범을 미국으로 보낸다고 비난했으며, 국경 장벽 건설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늘어놨다.

후보자 간 토론 무대 및 정책 플랫폼에서 압도적으로 돋보였던 그는 열렬한 지지자와 열렬한 비평가를 동시에 끌어들이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대선 후보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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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2015~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단연 돋보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아래 트럼프는 경쟁자들을 가볍게 제치고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하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맞붙었다.

정치 신인이었던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운동은 그가 성적 학대에 대해 자랑하는 내용이 담긴 음성 테이프가 유출되는 등 각종 논란으로 점철됐으며, 선거 기간 내내 여론 조사에서 뒤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후에 웃는 자는 트럼프였다. 베테랑 정치인이었던 클린턴을 상대로 깜짝 승리를 거두며 전문가 및 여론 조사 기관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그렇게 그는 2017년 1월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서 취임 선서를 했다.

대통령이 되다

임기 초기부터 그는 트위터(현재 ‘X’)를 통해 공식적인 발표를 내놓고, 외국 정상들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극적인 모습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세계 정상들과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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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맹국들에 트럼프의 집권 시절은 불확실성의 시기였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국제 사회의 주요 기후 및 무역 협정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국가 7곳에서 미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했으며, 강력한 이민 제한 조치를 실시하고,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했으며, 기록적인 감세 정책을 실시하고, 중동 관계를 재편했다.

이후 거의 2년간 2016년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간 유착 관계에 대한 특검이 이뤄졌다. 당시 34명이 컴퓨터 해킹, 금융 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트럼프는 아니었다. 특검 수사는 불법 공모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아울러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3번째로 탄핵 대상이 된 대통령이 됐다. 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해 경쟁자인 바이든 후보의 비리를 캐도록 했다는 혐의였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하원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으나,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한편 그가 재선에 나선 2020년은 그야말로 코로나19 팬데믹의 한 해였다.

미국의 사망자 및 감염자 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웃돌고 있는 가운데 그는 소독제 체내 주입을 통해 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지 연구해봐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이어가며 보건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트럼프 자신 또한 그해 10월 양성 판정을 받으며 선거 운동에서 잠시 물러나야만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치러진 2020년 11월 대선, 트럼프는 현직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많은 표인 7400만 표를 얻었으나, 부통령 출신인 바이든 후보에게 700만 표 이상 차이로 밀리며 재선에 실패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까지 트럼프는 자신이 표를 도둑맞았다는 등 여러 부정 선거의혹을 부채질했으나, 60건이 넘는 법정 소송 끝에 해당 주장은 기각됐다.

그러나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트럼프는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의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2021년 1월 6일, 지지자들을 모아두고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달라고 촉구했다.

결국 이 집회는 폭동으로 번졌고, 의원들과 트럼프의 부통령이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하원은 트럼프에 대한 2번째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하원에서 2번 탄핵당한 대통령이다. 탄핵안은 다시 상원에서 기각됐으나, 첫 번째 탄핵안보다는 더 근소한 차이였다.

트럼프의 이날 행적은 현재 진행 중인 형사 소송 2건의 핵심이다.

복귀를 꿈꾸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의 트럼프

트럼프의 정치 경력은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이후 끝난 듯 보였다. 기부자들과 지지자들은 다시는 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나섰고, 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조차 공개적으로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후임인 바이든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가족들과 함께 플로리다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여전히 충성스러운 팬들이 남아 있었기에 공화당 내에서 쟁쟁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편 그가 직접 임명장에 서명한 우파 성향의 대법관 3명이야말로 트럼프가 남긴 가장 오래 가는 유산일 것이다. 이로 인해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이는 50년 가까이 미국에서 이어졌던 임신 중지권 보장의 종식으로 이어졌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막상 공화당의 득표율이 저조해 비난받았음에도 트럼프는 곧바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이내 공화당 내 유력 대선 후보로 발돋움하게 된다.

트럼프의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를 포함해 십여 명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트럼프의 인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 토론 무대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바이든 현 대통령에 대한 비난에 집중했다.

트럼프 팬들에게 '바이든에게 장점이 있는지' 물었다

트럼프는 대선에 뛰어들기 전 이미 형사 사건 4건에서 중범죄 91건에 대한 혐의를 적용받고 있었으나, 소송을 지연시키는 그의 전략은 대부분 성공했다.

그로 인해 현재 소송 3건의 경우 대선 전까지 재판이 열리지 않을 예정이며, 가장 약한 가벼운 혐의라고 평가받는 뉴욕주에서의 재판 선고도 11월 말로 연기됐다.

한편 올해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집회 현장에서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총격범 토마스 매튜 크룩스(20)는 인근 옥상에서 AR식 소총으로 8발을 발사했고, 트럼프는 오른쪽 귀에 부상을 입어다. 크룩스는 저격수에 의해 사살됐다.

며칠 후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열렬한 찬사 속에 입장했고, 대선 후보로 공식 추대되며 3회 연속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됐다. 바이든 현 대통령과의 재대결이 예고된 순간이었다.

바이든은 역사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재임 기간을 보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와 인프라가 개선됐으나, 높은 물가와 불법 이민자 급증, 외교 정책 혼란 등으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바이든이 대선 출마 의사를 철회하고 카멀라 해리스 현직 부통령을 지지한 이후 트럼프는 해리스 후보를 현 행정부의 실패와 연결 짓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중간 정도는 성공을 거둔 듯하다.

해리스 후보가 나서며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다시 활력을 되찾고,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기부금이 모였으나, 전국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한편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대선이 열리는 11월 5일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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