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덕분에 제 삶 자체가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잖아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연기의 세계에서 배우 탕준상이 지나온 날들.
내면 깊숙이 깃든 자신의 면면을 기꺼이 꺼내 보이는 일. 배우 탕준상은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연기의 본질을 되새기며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다. <오빠생각>을 시작으로 <나랏말싸미> <라켓소년단> <설계자>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그는 자신과 나란히, 또는 자신보다 한발 앞서 걷는 이들에게서 얻은 배움을 자양분 삼아 부단히 전진해왔다. 한결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 배우 탕준상이 펼쳐갈 연기의 세계는 끝없이 넓어지고 있다.
<도그데이즈>부터 <설계자> 그리고 <원더랜드>까지, 올해 스크린에서 탕준상 배우를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모두 오래전에 촬영한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스크린에서 예전 모습을 다시 마주하니 어땠나요?
촬영을 마친 당시에는 만족하면서 작품을 잘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지나고 나면 다른 감정보다 후회가 앞서요. 어떤 작품에서든 스크린 속 제 모습을 마주하는 게 아직 어색하거든요. 더군다나 오래전에 찍은 작품들이라 더 풋풋하고 어려 보이더라고요. 저게 최선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웃음) 부끄러운 마음이 컸어요.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잖아요. 뿌듯한 마음은 없었어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거죠. 한 작품을 마치면 예전에 출연한 작품들을 모니터링하면서 표현 방법에 대해 자주 고민해요.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틀린 연기는 분명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계속 다른 방향성을 상상해보는 거예요. 최소한 틀린 연기는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요.
<설계자> 촬영 현장에서 20대의 시작을 맞이했죠?
네, 묘한 긴장감 속에서 맞이한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감정이 앞섰죠. 그도 그럴 것이 <설계자>를 촬영할 때 ‘월천’ 역으로 호흡을 맞춘 이현욱 선배가 성인이 된 기념으로 거듭 조언 해준 게 있어요. 이제 공식적으로 성인이 됐으니, 현장에 함께하는 모든 선배 배우를 경쟁 상대라 여기고 연기에 임해야 한다고요.
그 조언을 들으니 어땠어요? 더욱 막막해지던가요?(웃음)
성인의 세계는 이런 거구나, 이제 시작인가(웃음)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공감했고요. 나이를 떠나 결국 배우와 배우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잖아요. 이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이제부터는 연기적으로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다양하게 고민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어요.
좀 전에 촬영한 영상 콘텐츠에서 ‘영화로운 순간’으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서 최민식 배우와 호흡을 맞춘 순간을 꼽았어요.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만큼 그간 현장에서 연륜이 많은 배우들과 함께하며 배우고 느낀 게 많았을 거라 짐작해요.
짧은 찰나였지만 정말 영화 같은 순간이었어요.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보던, 언제나 제 롤 모델이던 배우의 눈을 바라보고 같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죠. 최민식 선배님을 예로 들었지만, 지금껏 그런 영화로운 순간이 무척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든, 인생에서든 제가 앞으로 겪어갈 일을 먼저 경험한 분들이잖아요. 그분들 모습을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고, 혼자 연기를 해나 가며 막막한 부분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도 있으니 더없이 감사한 일이죠.
배움이라는 면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도 있나요?
영화 <나랏말싸미>를 촬영하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는데, 그 전에는 현장으로 향하는 마음이 늘 무거웠거든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어붙고, 감독님과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도 너무 긴장됐어요. 이 작품에 송강호, 박해일 선배와 함께 출연했는데, 두 분이 어떻게 연기하는지부터 잠시 쉬는 시간엔 무얼 하는지까지 유심히 관찰하고 배우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한 게 부담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도 하고, 감독님과 의논하면서 장면을 완성해가다보니 처음으로 연기에 대한 칭찬도 받았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이후에는 현장을 어느 정도 즐기면서 촬영할 수 있었죠.
배우로서 중요한 기점이 된 작품이군요. 한편 드라마 <라켓소년단>은 온전히 또래 배우들과 함께 극을 이끌어간 작품이에요. ‘윤해강’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배운 점이 있다면요?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어요. 배우 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동료 배우들과 진짜 형, 동생처럼 가깝게 지내며 촬영한 작품인데,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연기하다 보면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불쑥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맡은 캐릭터의 특성이나 존재감을 과하게 앞세우지 않고 힘 조절을 하는 법을 터득했어요. 이 장면에서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더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요.
지나온 작품을 돌아볼 때, 어떤 면을 지닌 인물에게 매료된 것 같나요?
아직까지는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을 주로 택한 것 같아요. 대본을 읽다 보면 어떻게 표현해야 재미있을지 저절로 그려지는 인물이요. 대체로 저랑 닮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일 때 그런데, 접점이 아예 없는 캐릭터에도 도전 의지를 느껴요. 평소의 저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나 행동도 연기를 핑계 삼아 시도해볼 수 있으니까요.
자기 안에 있는 여러 면을 꺼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기에 흥미를 느끼는 거군요.
맞아요.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감정들을 마음껏 꺼내 쓰도록 허락된 시간이라고 느껴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보셨어요? 그 영화에 스파이더맨이 베놈한테 감염되고 내면에 있던 악이 깨어나서(웃음) 갑자기 블랙 수트를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 느낌이에요. 연기를 할 땐 선량했다가도 한순간에 악해질 수 있잖아요. 그런 면이 너무 재미있어요.
연기라는 일이 본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준 것 같나요?
제가 성격이 과묵하고 조용해서 오늘처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도 평상시에는 절대 못 하거든요.(웃음) 그런데 연기의 일환이라 생각하면 할 수 있어요. 연기 덕분에 삶 자체가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잖아요. 어떨 땐 스님이었다가, 북한군이었다가, 갑자기 배트민턴 선수가 되어볼 수도 있죠. 처음 배우가 되기로 다짐한 것도 이렇게 다양한 세계를 경 험해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여전히 같은 이유로 이 일이 무척 좋아요. 다른 선택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요.
그 한결같은 마음을 품은 채 다음은 어디로 나아갈 예정인가요?
드라마 <사관은 논한다>라는 작품으로 다시 한번 사극에 도전했어요.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 기회에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선택한 작품이에요. 곧 공개를 앞두고 있어서 떨리네요.(웃음)
앞으로 만나고 싶은 이야기의 형태에 대해 말해준다면요?
지금까지 선택한 작품을 돌아 보면 늘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나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에 이끌린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인간관계에 대한 섬세한 사유를 담은 작품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 근데 그것 말고도요,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현실과 아예 동떨어진 독특한 판타지물도 해보고 싶고요. 뭐든 좋아요, 연기라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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