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장벽] ② "손이 닿지 않는 트렁크 여닫이 버튼 무용지물이에요"

[장애인장벽] ② "손이 닿지 않는 트렁크 여닫이 버튼 무용지물이에요"

여성경제신문 2024-10-23 12:00:00 신고

3줄요약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장애인 운전자의 일상은 우리가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매일 균형을 잡는 도전이다. 차에서 내리고 휠체어를 꺼내는 일조차 큰 난관이 된다. 좁은 주차구역, 닿지 않는 트렁크 버튼, 장애인이 운전 중이라는 사실을 알릴 수 없는 표식 부재까지 넘기 어려운 벽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느꼈던 잠깐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들에게는 일상이고 도전이다. 두 발과 두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해도 그들의 이동권은 모두와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한데 현실은 권리조차 매 순간 도전이다. 여성경제신문이 장애인 운전자가 넘어야 할 벽을 조명하고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독자와 나눠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하반신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았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키가 큰 목발 장애인도 차량 트렁크를 닫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목발 장애인 이성수 씨(56)가 본인 소유 차량 '티볼리' 트렁크를 닫지 못하고 있는 모습. 소형 SUV인 해당 차량도 장애인 운전자는 트렁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경제신문
하반신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았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키가 큰 목발 장애인도 차량 트렁크를 닫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목발 장애인 이성수 씨(56)가 본인 소유 차량 '티볼리' 트렁크를 닫지 못하고 있는 모습. 소형 SUV인 해당 차량도 장애인 운전자는 트렁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경제신문

"트렁크를 닫는 버튼이 차량 후면 번호판 주변에 위치해 있어요. 때문에 하반신 장애인은 트렁크를 열고 닫을 때 손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트렁크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죠. 장애인 운전자가 차량을 구매할 때 이를 고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옵션을 통해 버튼을 아래쪽으로 내려 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버튼만 누르면 열고 닫을 수 있는 전자식 트렁크. 편리한 기능으로 여겨지지만 장애인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전자식 트렁크 버튼이 차량 후방 높은 위치에 달려 있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운전자가 손을 뻗어 닫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SUV 차량은 평균 높이는 약 170㎝에서 180㎝에 달한다. SUV 차량 트렁크 버튼은 지상에서 150~160㎝의 높이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승용차(세단)의 트렁크 높이도 차량의 설계와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트렁크 도어를 열었을 때 지면에서 약 110~130㎝ 정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올해 기준 남자 초등학생 평균키는 139.2㎝, 중학생은 165.3㎝.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평균적인 앉은 키는 90~110㎝. 휠체어에 앉아 팔을 뻗었을 때 최대 도달할 수 있는 높이가 120~135㎝ 정도임을 의미한다. 승용차의 경우 트렁크를 열었을 때 팔이 겨우 닫고 SUV의 경우 사실상 트렁크 문을 장애인 운전자 혼자 닫기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전동 트렁크 옵션이 있긴 하지만 국내에선 장애인이 차량을 구매할 때 2000cc 이하 배기량의 차량에 대해 개별소비세, 취득세, 등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2000cc를 초과하는 고급 차량에는 이러한 세제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많은 장애인 운전자는 비교적 저렴한 차량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고가 모델에 포함된 전자식 트렁크 옵션을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저렴한 차량에서는 수동으로 열고 닫아야 하는 트렁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장애인장벽' 취재를 종합하면 장애인 운전자는 대부분 트렁크 공간을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로 차량을 소유하고 있어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면서 "비장애인 기준으로 차량을 설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옵션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선택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요타 웰캡 모델은 휄체어 장애인의 키를 고려해 트렁크 버튼을 아래에 설치할 수 있도록 옵션을 구성했다. /여성경제신문
도요타 웰캡 모델은 휄체어 장애인의 키를 고려해 트렁크 버튼을 아래에 설치할 수 있도록 옵션을 구성했다. /여성경제신문

쉐보레 트레버스(Chevrolet Traverse) 모델과 포드 익스플로러(Ford Explorer) 같은 차량은 옵션을 통해 휠체어 리프트와 파워 리프트 게이트를 제공해 운전자가 스스로 짐을 적재하고 트렁크를 조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혼다 파일럿(Honda Pilot)과 스바루 포레스터(Subaru Forester)는 램프와 낮은 플로어 설계를 통해 휠체어 사용자가 쉽게 차량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일본도 토요타(Toyota)와 혼다(Honda)를 필두로 장애인 맞춤형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도요타의  웰캡(Welcab) 시리즈와 혼다 프리드(Freed)는 회전 좌석과 휠체어 리프트를 제공하며 슬라이딩 도어를 통해 편리한 탑승을 지원한다.

트렁크를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닫기도 가능한 버튼. 운전석 상단에 위치해 있다. 전동 옵션인데 국내에선 일부 차종에 한해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 선택하거나 고급 차종에만 설치되어 있지만 일본과 미국에선 장애인 전용 옵션으로 추가 가능하다. /여성경제신문
트렁크를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닫기도 가능한 버튼. 운전석 상단에 위치해 있다. 전동 옵션인데 국내에선 일부 차종에 한해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 선택하거나 고급 차종에만 설치되어 있지만 일본과 미국에선 장애인 전용 옵션으로 추가 가능하다. /여성경제신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대부분의 국내 차량은 후방 상단 또는 트렁크 도어 내부에 전자식 버튼이 위치한다. 현대 팰리세이드와 투싼은 트렁크가 열린 상태에서 차량 후방 도어에 있는 버튼을 눌러 닫도록 설계돼 있다. 특히 최신 모델들은 스마트 트렁크 기능을 탑재해 운전자가 가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열리지만, 닫을 때는 여전히 높은 위치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휠체어 사용자가 손쉽게 조작하기에는 트렁크 버튼의 높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 운전자가 트렁크를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버튼의 위치 조정 또는 음성 명령 기반 시스템과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후로다 겐지 오사카부립대 교수는 "일본의 웰캡(Welcab) 모델은 장애인 운전자를 고려해 트렁크 버튼을 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하거나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을  옵션을 통해 제공한다"면서 "이처럼 장애인 운전자만 선택할 수 있는 차량 옵션을 도입하면 장애인 운전자의 자립적인 운전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 운전자가 차량을 구매할 때 주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으로 장애인 전용 장비를 설치할 수 있다. 사진 속 장비는 트렁크의 짐을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설치된 로봇 팔. 트렁크를 열고 닫을때도 트렁크 하단에 설치된 추가 버튼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미국의 경우 장애인 운전자가 차량을 구매할 때 주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으로 장애인 전용 장비를 설치할 수 있다. 사진 속 장비는 트렁크의 짐을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설치된 로봇 팔. 트렁크를 열고 닫을때도 트렁크 하단에 설치된 추가 버튼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차량 개조 비용 지원 제도  
지원 대상 사각지대 해소해야

국내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장애인 근로자의 출퇴근 편의를 위해 차량 개조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운전 보조 장치와 휠체어 리프트 설치를 포함한 차량 개조에 대해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에게만 제공되어 자영업자나 취업 준비 중인 장애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연합회 정책실장은 "이 제도의 문제는 지원 대상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며 "취업 준비생이나 자영업자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유연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부품 대부분이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어 개조 비용이 1억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는 15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은 장애인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김필수 교수는 “초과 비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장기 저리 대출을 제공하고 장애수당을 통해 상환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일본에선 지자체별로 지원되는 장애인 운전자 지원 기금을 받아 차량을 구매할 때 장애인 맞춤형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은 도요타 웰캡 모델의 장애인 운전자 전용 좌석. /여성경제신문
일본에선 지자체별로 지원되는 장애인 운전자 지원 기금을 받아 차량을 구매할 때 장애인 맞춤형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은 도요타 웰캡 모델의 장애인 운전자 전용 좌석. /여성경제신문

미국에서는 퇴역 군인과 중증 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차량 구매 및 개조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VA(Auto Act)를 통해 장애인 전용 차량을 구매할 경우 최대 약 2만달러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휠체어 리프트와 전동 스티어링 등 차량 개조에 필요한 보조 장치도 추가로 지원한다. 이 지원금은 평생 한 번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 법 개정을 통해 10년마다 갱신이 가능해졌다. 지원금은 차량 판매업체에 직접 지급되며 개조 장비에 대한 별도 지원도 여러 번 중복해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은 고비용 차량 개조 부담(최대 8만달러)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는 도요타(Toyota)의  웰캡 Welcab 시리즈와 같은 장애인 맞춤형 차량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 시리즈는 휠체어 리프트와 회전 좌석, 슬라이딩 도어 등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한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차량을 구매하는 장애인에게 자동차세와 취득세 감면을 지원하며 개조에 필요한 비용도 일부 보조한다. 

미국과 일본 모두 장애인 운전자의 이동 편의를 위해 맞춤형 차량 옵션과 세제 혜택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국내도 지원 대개조 비용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장기 저리 대출 제도를 도입하거나 장애수당으로 초과 비용을 보충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김필수 교수는 “국토교통부, 복지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여러 부처의 협업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도쿄·오사카, 서울=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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