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 연보 작성과 키워드 뽑기, 마인드맵 그리기를 통해 막연하기만 하던 내 삶이 많이 구체화했을 거다. 자서전을 쓰겠다고 맘먹을 때부터 부딪혔던 문제인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무엇을’의 실체가 잡혀간다는 얘기다.
다음에는 ‘어떻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건 ‘어떤 관점에서 쓸 것인가’이다. 그냥 막연하게 ‘내가 나에 관해 쓴다’는 입장으로는 만족할 만한 자서전을 쓸 수 없다. 쓰는 사람의 입장이 뚜렷하게 정립돼 있어야 모든 관점이 일관되게 흐를 수 있다.
그 입장이란 게 바로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이다.
자서전은 ‘지금의 나’가 ‘과거의 나’를 재해석해 ‘나’를 묘사해 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나의 정체성에 따라 과거 일들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가령, 초등학교 시절 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했다고 해보자. 당시의 나에 관해 글을 쓴다면 굳이 재해석이 필요 없다. 그냥 사실을 사실대로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 관점에서 보면 과거 사실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영업이 천직인 세일즈맨의 정체성으로 들여다보면, 어려서부터 사교성이 뛰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학력이 별 볼일 사람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면, 노느라 공부하지 않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자서전 쓰기에서 ‘지금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명인들의 자서전 제목을 보면 그 자서전을 쓴 사람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 제목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이다. 이 제목에 고 정주영 회장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가출해서 기업을 일구는 과정을 시련으로 표현하고, 그리고 “실패는 없다”라는 말에서 대기업 현대를 이루어 낸 자신감과 확신을 보여준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서전 제목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이다. 대우가 ‘세계 경영’을 신조로 삼았던 점을 상기하면 김우중을 상징하는 제목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들 자서전의 내용을 읽어보면, 수많은 사건이 다 같은 관점, 저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관점에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이렇게 자서전 전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갈 수 있는 나에 대한 관점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의 나’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의 나’에 대한 관점을 정리한 짧은 글을 한 편 쓰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이니 이 글을 ‘자소서(자기소개서)’라고 부르기로 하자.
단 우리가 쓸 자소서는 대학입시나 취업을 위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나의 일대기를 요약하는 글도 아니다. ‘지금의 나’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나 자신’에게 소개하는 글이다.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을 패러디하자면,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자소서이다.
그러니 대입이나 취업 자소서를 잘 쓰기 위한 팁 같은 것은 모두 머리에서 지워 버리는 쪽이 좋다. ‘좋은 글은 목적에 충실한 글’이라는 조건을 기억하자. 우리가 자소서를 쓰는 목적은 자서전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가령,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핵심적인 것들이 영업부나 복사기 판매왕, 의자 대리점 사장 같은 게 있다고 해보자.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건 바로 ‘나’가 ‘세일즈맨’이라는 낱말로 그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을 거다. 따라서 자소서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나’의 핵심적인 정체성은 세일즈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삶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은 당연히 세일즈맨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자소서는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쓰는 게 좋다. 또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모두 설명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할 필요도 없다. 그건 자소서라기보다 이미 자서전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자서전을 쓰기 위한 준비로 자소서를 쓰려고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이 자소서는 내 삶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상징하는 핵심 포인트를 끄집어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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