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나는 요즘 축구 남자 국가대표 경기를 ‘굳이’ 보지 않는다. ‘굳이’라는 부사에 홑따옴표를 친 건 채널을 돌리다 마주치면 아주 짧은 시간의 눈팅 정도는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기가 있는 거조차 궁금해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 해도 결과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애초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드라마를 보려는 아내와 리모컨 싸움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유일한’ 게 남자 국가대표 축구 경기 중계였다. 그 경기가 월드컵 예선 같은 중요한 경기든, FIFA 랭킹순위가 우리와 서너 배 차이 나는 국가와의 친선경기든 상관하지 않았다. 남자 축구 국가대표 경기는 ‘무조건’ 만사 제쳐 두고 봤다.
그런 내가 이렇게 남자 국가대표 축구에 심드렁해진 건 다름이 아닌 축구협회의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에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남자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 대한 무관심은 누가 보든 말든 나만의 항의 방식이다. 아, 아내에겐 드라마 보라고 선심 쓰듯 채널을 흔쾌히 양보하며 이유를 설명하긴 했으니, 한 사람은 나의 이런 행동을 알고 있다.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나는 프로축구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음에도 프로축구의 나의 고향 연고팀인 ‘강원’의 경기는 지금도 가끔 스포츠 채널에서 찾아보곤 한다. 이건 축구에 대한 나의 관심 모두가 식은 게 아니라 오로지 남자 국가대표 축구만 그렇다는 얘기다. 강원팀 경기에 대한 관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건 치열한 승부 게임이란 데 있다. 사전 각본 없이 전개되는 드라마처럼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다. 특히 축구 경기는 ‘불가능’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지운 듯한 짜릿함을 선사해 준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월드컵 예선전이 진행되는 지금 남자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에 관한 설왕설래가 여전하다. 지난 경기에서 몇몇 선수의 부상 소식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부상 소식을 어떻게 알았냐고? 그래도 내가 뉴스에 민감한 명색이 전직 저널리스트인지라 뉴스를 챙겨보다 스포츠 뉴스 메인에 떡하니 떠 있는 걸 안 볼 수 있겠는가.
홍명보 감독 선임에 관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감사를 했다. 그 결과, 선임 절차에 대해 일부 명쾌하지 않음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물론이거니와, 홍명보 감독도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스포츠 정신이 뭔가. ‘공정’이 아닌가. 혹시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이 그 뜻을 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지랖 넓게 사전적 정의까지 들먹여 본다. “공평하고 올바름.”
축구를 비롯한 현대 스포츠에 ‘비디오 판독 시스템’인 VAR을 왜 도입했을까. 다 ‘공정’을 위한 거 아닌가. 순전히 심판의 눈에만 의존하여 판정하던 때를 상기해 보라. 판정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판정 불복 때문에 싸움질까지 하지 않았던가.
축구를 비롯한 몇몇 구기 종목에는 매우 중요한 규칙이 있다. ‘오프사이드’. 플레이어가 정당한 위치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에 관여할 적에 주어지는 반칙이다. 이 칼럼의 주제가 축구에 관한 것이니만큼 축구에 한정해 보자. 골을 넣고 신나게 세리머니를 펼치던 선수가 주춤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대부분 VAR이 심판에게 오프사이드일 가능성이 있으니 살펴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상황이다. 잠시 VAR 심판과 교신들 주고받던 심판이 손으로 네모를 그리고 모니터를 뛰어가고, 모니터를 자세하게 살펴본 후 그라운드로 돌아오며 두 손을 아래로 내려 가로저으며 골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오프사이드’를 범했으므로 골이 아니라는 제스처다.
내가 보기에 홍명보 감독 선임도 ‘오프사이드’를 범했다. 감독 자리를 쟁취했지만,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판정이 나온 거다. 그러면 오프사이드로 넣은 골이 취소되듯 감독 선임도 취소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오프사이드를 범하면 심판이 호루라기를 분다. 내가 남자 국가대표 축구를 안 보는 건 호루라기를 부는 거다. 이런 사람이 나 말고도 더 많은 거라고 짐작한다.
행동하는 지성으로 평가받는 《양철북》의 작가 권터 그라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서 ‘밤의 경기장’을 낭송했다. 왜일까. 페어플레이하라는 거가 아니었을까.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관중석이 꽉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루라기를 불었다. 오프사이드./ 팀원이 최종 수비수 라인을 넘어가도 오프사이드가 인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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