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 해외 브랜드는 여럿 있었지만, 순수 국내 토종 패션 브랜드로 올해 매출 1조 원을 달성할 유력한 후보는 누굴까. ‘탑텐(TOPTEN10)’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의 매출 기록으로 볼 때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 탑텐의 질주는 일본제품을 상징하는 ‘유니클로’를 저만치 따돌렸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에게 카타르시스까지 안겨준다. 탑텐의 성공 신화는 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의 ‘뚝심 경영’이 빚어낸 결과다. 과감하게 투자하고 힘 있게 밀어붙이는 두둑한 배짱의 소유자 염태순 회장은 어떤 CEO인가.
탑텐으로 국민에게 카타르시스 제공
이젠 옛말이 됐지만 ‘노재팬’ 열풍이 거셌던 적이 있었다. 2019년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노동자에게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강제로 끌고 간 것도 불법인데, 임금마저 제대로 주지 않았으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피해자에게 배상하면 된다. 그게 민주국가의 법질서이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이 되레 성질을 부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우리나라에 팔지 않겠다고 한 거다.
이때부터 우리 국민은 자발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인 ‘노재팬’ 캠페인에 돌입했다. 마트나 편의점 매대에서 일본제품들이 쫓겨났다. 누구랄 거 없이 업주들이 강한 애국심에서 실천한 자발적 퇴출이었다. 진열한들 우리 국민이 거들떠보지도 않거니와, 아예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의지가 작동한 결과였다.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온 국민이 하나로 뭉친 결과 우리는 문제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를 이뤄 극복했다.
이때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생활필수품 분야에서 카타르시스까지 안겨준 브랜드가 있었다. 일본제품을 상징하는, 우리의 패션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한, 유니클로를 한 토종 패션 브랜드가 제쳤던 거다. 이 ‘넘사벽’ 유니클로를 뛰어넘은 주인공은 바로 ‘탑텐’이다.
한국 패션 역사 새롭게 쓴 승부수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은 2012년 토종 SPA(기획에서 유통까지 모두 책임지는 시스템) 패션 브랜드 ‘탑텐’을 론칭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염 회장은 탑텐을 ‘유니클로 대항마’를 자처하며 한국의 패션 산업 역사를 새롭게 쓰겠다고 다짐했던 거다.
하지만 염 회장의 이 같은 호언장담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우리 시장은 ‘자라’ ‘H&M’ ‘유니클로’ 등 소위 글로벌 SPA들이 치열한 삼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럭저럭 버티던 기존 국산 브랜드들조차 이들 앞에서 맥을 못 추던 상황이었다.
더욱이 신성통상은 삼성물산패션이나 이랜드처럼 자금력과 조직력이 탄탄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염 회장은 ‘허언’이라고까지 혹평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정말 한국 패션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염 회장에게는 나름대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동안 OEM·ODM 의류 봉제 수출을 하며 쌓아온 소싱 노하우였다. OEM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이고, ODM은 제작자 설계 생산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시장은 염 회장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전의 연속이었고,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럴수록 염 회장의 도전 의식은 더 강해졌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로 맞섰다. 모든 걸 쏟아붓고 최선을 다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해 ‘굳웨어(Good Wear)’라는 브랜드 슬로건에 힘입어 롱패딩이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2019년엔 ‘노재팬’ 캠페인에서 기회를 맞았다. 그리고 탑텐은 지금 유니클로를 제친 명실상부한 1위 브랜드가 됐다.
모든 걸 걸고 신성통상 인수
전공인 정치외교학보다 연극에 더 심취했던 염태순은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한다. 그런 그가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가방회사에 취직한 건 순전히 나이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물아홉 나이면 입사원서조차 낼 수 없었다. 갈 곳이 없어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염태순은 그동안 소홀했던 공부를 대신 벌충하려는 듯 일에 미쳐 지냈다. 가방을 어떻게 만드는지, 수출은 어떻게 하는지 몸으로 터득해 가며 배웠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직장을 잃었다.
다시 갈 길을 잃은 염 회장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는 심정으로 1983년 가방 제조업체 ‘가나안’을 창립했다.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가방 수출하는 거였다.
일개 영업사원에서 CEO로 변신한 그에게 시장은 여전히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안 되면 통하게 한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국내 인건비가 치솟자 일찌감치 동남아로 눈을 돌리는 식이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도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겁 없이 해외에 진출했던 모험심에서 자신감을 얻은 매물로 나온 대우그룹 계열사 ‘신성통상’을 전격 인수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기업 대신 빌딩을 줍줍하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인생을 통째로 맞바꾸는 거나 다름없는 통 크게 결정한 염 회장은 신성통상의 매출을 2022년에 1조 원을 돌파시키는 대성공을 이룬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 다하는 CEO
‘이기진 못해도 지진 않는다’는 신념의 소유자인 염태순 회장은 철저한 시장 조사와 품질로 승부를 건다. 이는 염 회장 경영철학의 핵심이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탑텐이 론칭 2개월 만에 특별한 광고·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쳇말로 대박을 친 것도 1년이란 시장 조사와 준비한 결과였다.
염 회장은 직원들에게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소비자의 눈높이로 가격을 결정하고 디자인하라.” ‘저가고품질’의 제품은 애써 광고하지 않아도 눈썰미 있는 소비자가 먼저 알아본다. 구매해 입어본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입소문’을 낸다.
염 회장은 늘 동종업계의 성공모델을 눈여겨본다. 성공한 회사의 CEO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유니클로는 왜 SPA를 시작했을까. 경영 노하우와 전략을 판단하기 위한 고민이다. 물론 그가 던진 모든 승부수가 다 통하진 않았다. 그에게도 실패한 브랜드다 10개가 넘는다.
염 회장은 30여 년 CEO로 살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치열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에 최선을 다해서 어제의 모습이 오롯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내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리라.
최근 자발적 상장 폐지를 추진하면서 구설에 오른 염태순 회장은 영업사원 시절 독일 출장에서 아우토반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성공을 다짐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염태순 회장이라면 그 어렵다는 독일, 아니 유럽에 우리 순수 토종 브랜드 탑텐 매장을 세울 거 같은 기대감이 크게 든다.
Copyright ⓒ CEO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