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끝나고, 한 테이블에 모인 <더 킬러스>의 감독들

영화제가 끝나고, 한 테이블에 모인 <더 킬러스>의 감독들

바자 2024-10-23 08:00:04 신고

3줄요약
하퍼스 바자 10여 년 전 영화의전당 설립 이전엔 남포동이나 해운대가 부산영화제의 주축이었죠. 영화인과 평론가, 기자들이 술집에 모여 영화를 안주 삼아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를 추억하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보았습니다.
이명세 그때는 진짜 축제 같은 분위기였어요. 영화인이라면 해운대 때가 좋았지.
장항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저는 1회 때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 출품되었어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제에 왔는데 첫 해라서 열의는 있으나 완숙하지 못한 느낌이었달까. 걸어 다니다가 포장마차에 있는 감독이나 배우들을 보고는 복화술로 ‘와, 누구다!’ 하면서 신기해하고 그랬죠.
이명세 어디 가면 누가 있고, 어디 가면 모 촬영팀이나 모 조명팀이 모여 있고…. 지나가면서 다 만날 수 있었지. 마치 할리우드처럼 영화 동네가 부산으로 옮겨온 것 같았지. 영화제가 커지고 좋아졌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없어요.
장항준 동틀 때쯤 술이 술을 먹는 영화인들만 남아서 큰소리가 나죠. “형 영화, 정말 후진 거 알아!”(웃음) 진짜 싸움 날 분위기가 펼쳐져요.
이명세 옛날 충무로 때 딱 그랬어. 하길종, 이장호 감독님이 있는 술집에 갑자기 김응천 감독이 나타나는 식이었지.
노덕 와, 김응천 감독님은 전설처럼 성함만 들었어요. 늘 이런 식으로 등장하시던데요. 전 부산영화제에 처음 왔을 때 연출부로 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스스로 영화인의 정체성을 의심했던 것 같아요. 단편영화가 초대된 동료에 대한 부러움을 갖고 분위기에 휩쓸려 즐기기보단 열등감에 폭음을 했던 것 같네요.
김종관 학생일 때는 빵 먹으면서 영화를 네다섯 편씩 하루 종일 봤는데 그게 다시 오지 않는 시절 같아요. 부산영화제 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긴 해요. 미나미(해운대 오뎅 바)에 갔는데, 이명세 감독님이 혼자서 정종을 드시고 계셨어요. 영화 배우는 학생인데 존경한다고 얘기 드렸더니, 감독님이 옆에 앉으라고 하고 정종을 따라 주셨어요. 다음 날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는데, “종관아!” 하고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엄청 쇼킹했던 사건이었죠.

하퍼스 바자 그때 이름을 불러주셔서 이렇게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김종관 그래서 이렇게 애증에 휩싸였죠.
이명세 그때가 언제였는데?
김종관 2001년이었어요. 그때 진짜 두근두근했었죠.
이명세 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쉬고 있을 시기였네. 그땐 잘나가던 시절인데.(웃음)
김종관 당시 이명세 감독님은 〈더 킬러스〉의 호퍼 바에 나오는 양익준의 뒷모습 같으셨어요.

하퍼스 바자 양익준 배우의 뒷모습이 이명세 감독님에 대한 오마주였나요? 자연스럽게 네 편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 얘기를 해보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27년 단편소설 〈더 킬러스〉와 에드워드 호퍼의 1942년 유화 〈나이트호크〉를 모티프로 삼은 살인극입니다. 네 감독님이 어떻게 의기투합하게 됐나요?
이명세 좋은 감독들이 모여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면 지속가능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오롯이 감독이 편집권을 가진 영화를 만들어보자, 재미있게. 어제 개막식에서 이야기 들어보니 연상호 감독이 2억원으로 〈얼굴〉을 찍었다더군요. 연상호라서 하고 홍상수라서 한다고 하지만 저예산의 좋은 콘텐츠가 더 만들어져야 해요. 〈더 킬러스〉는 결과를 보고 “딱 괜찮다!”고 느꼈어요. 내 영화 중에서 누구에게 괜찮다고 말한 첫 영화인 것 같네요. 영화 시사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별로면 뒤풀이에 참석 안 하고 조용히 가는 편이죠. 감독에게 해줄 말이 없어서 그래요. 반면 내가 기꺼이 뒤풀이에 참여할 수 있는 영화가 〈더 킬러스〉죠.
하퍼스 바자 〈더 킬러스〉의 첫 이야기이자 김종관 감독님의 영화 〈변신〉에 양익준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초기 단편 〈드라이버〉 같은 폭력적인 영화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흡혈귀가 등장하더군요. 노덕 감독님이 연출한 두 번째 이야기 〈업자들〉은 코미디 장르라 뜻밖이었고요. 각각의 영화를 연출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김종관 장르적으로 풀어야 하는 프로젝트라 좋았어요. 제가 장르물을 시도한 적이 없는데 감독님들과 함께하니까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도전해보는 시간이었죠. 1980~90년대에 좋아했던 영화들, 특히 스튜어트 고든이나 조 단테 영화, 옴니버스 〈환상특급〉이 생각났어요. 피가 나오는 영화지만 잔인하기보다는 유희 있게 접근하고 싶었어요.
노덕 저 역시 세 감독님과 부담을 나누다 보니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제가 한 작업 중에서 가장 즐기면서 임했죠. 순수하게 영화를 만드는 재미에만 집중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한 헌정을 담고 싶었죠.
장항준 제 영화는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라는 제목을 택했는데, 기다림 끝에 오는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질문하고 싶었어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후 과연 봄이 올 것인가 기다리는 일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기다리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영화 속 캐릭터들이 악인인지 선인인지 모호하게 만들었어요.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기점으로 해 서울 궁정동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군산 술집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죠.

하퍼스 바자 노덕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3인조는 이명세 감독님의 1989년 작 〈개그맨〉을 연상시키고 장항준 감독님 영화 속 잠복근무하는 형사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역시 오마주였나요?
장항준 오마주는 아니지만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 자체가 이명세 감독님에 대한 리스펙트였죠. 이 감독님이 제안하지 않으셨다면 맨땅에 헤딩하듯 모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처음 이 감독님이 계획에 대해 설명하실 땐 속으로 ‘이건 안 된다’ 했죠!
노덕 어우. 저도 똑같이 생각했어요.
장항준 막연히 촬영 못 들어가겠다고 생각했죠.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주셨는데, 모든 것을 열어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지대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원 없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어서,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노덕 〈개그맨〉을 좋아해서 그 테마를 가져갔어요. 이명세 감독님께 헌정하는 영화는 작품에 안 맞는 것 같았죠. 그걸 희석시키고자 코언 형제의 〈파고〉나 제게 자극을 준 다른 감독님들의 영화를 오마주로 섞었어요.
장항준 제가 노덕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그렇게 많이 웃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한 컷 한 컷, 모든 지점이 다 웃겼어요. 뉴욕아시아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죠. 상영이 끝나고 반응이 뜨거웠는데 노덕 감독의 그 오만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노덕 자, 모두 보았느냐!(웃음)



하퍼스 바자 김종관, 노덕, 장항준, 이명세 감독으로 이어지는 〈더 킬러스〉의 순서는 어떻게 정했나요?
이명세 다 함께 민주적으로 정했어요.
장항준 감독님이 민주적이어서 모든 팀들이 사이가 좋았죠.
김종관 완전히 민주적인지는 모르겠어요. 고집이 있으시죠. 사실 저도 이 프로젝트가 들어갈지 몰랐어요. 처음엔 그냥 술 먹는 자리라 생각했거든요. 감독님 말씀하시는 게 항상 추상적이세요. 선문답이시고요. 잘 들어보면 그 안에 명확한 것이 있어요. 만약 영화에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속의 바를 이용하자고 한다면 강요하지 않으세요.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3시간을 이야기하시죠. 다른 것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죠. 실은 강요예요.(웃음)
노덕 아니, 왜 꼭 호퍼여야 하죠?(웃음)
김종관 전 차라리 이명세 감독님에 대한 헌정 영화를 하자고 밀었죠. 누구는 〈개그맨〉 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하고, 저는 〈지독한 사랑〉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많은 감독들이 같이 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감독님은 생각이 다르셨어요.
장항준 저희들의 생각을 많이 존중해주셨어요. 저는 대학 신입생 때 감독님을 성공한 동문으로 처음 뵈었어요. 〈개그맨〉으로 막 입봉을 하신 때라서 성공하신 건 아니었죠. 영화감독을 처음 본 게 감독님이라서 기억이 나요. 지금 감히 맞담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퍼스 바자 〈더 킬러스〉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명세 감독님의 〈무성영화〉입니다.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합적인 요소를 지닌 영화죠. 마치 1백30년 영화의 역사와 대화하는 작업 같았습니다.
이명세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철저히 장르 속에서 고민하고 싶었어요. ‘영화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감독 각자가 시나리오를 쓰고 옴니버스로 만들었지만 이게 한 편처럼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어요.
김종관 이번 작업에서 이 감독님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으셨는데 추상적인 타입의 리더라서 힘든 게 있었죠. 약간 미운 마음이 있었는데 현장에 갔더니, 감독님은 진짜 영화를 찍고 계셨어요. 현장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열정과 움직임. 감독님이 제일 많이 움직이세요. 뛰어다니면서 모든 걸 조화롭게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연출자가 하나의 장면을 이렇게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죠.
노덕 저도 편집기사님이랑 같이 현장 갔었는데, 보고 나서 우리는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안일했다, 마무리 다시 하자고 했죠.



하퍼스 바자 부산영화제의 술자리에선 항상 한국 영화의 미래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각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항준 다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해 이 자리에 있겠지만, 살아생전 극장의 종말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사람들이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는 게 너무 충격이에요. 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재앙을 보는 심정이랄까,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해야 할지 고민이죠. 저의 조감독들도 장편영화로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인데 지금은 기회가 너무 없습니다. 감독으로서 장편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온전한 나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느낌이죠. 감독들이 영화와 시리즈를 오가지만 다들 같은 심정이 아닐까요. 감독이라면 극장에서 개봉하는 장편영화를 찍고 싶죠. 탄광으로 비유하면 활황이 끝나고 폐광을 맞이한 분위기.
노덕 감독의 세계, 한 사람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과거에는 몇몇의 뛰어난 개인이 있었다면 지금은 시대가 발전하고 시스템이 공고해졌죠. 바꿔 이야기하면 완성도 높고 퀄리티 있는 영화들이 대거 나올 수 있지만 누군가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영화는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장항준 돌이켜보면 시대마다 괴물 같은 영화가 있었죠. 그 시대를 상징하는 영화. 그 영화가 다른 영화에 영향을 미쳤고요. 지금은 그런 괴물이 탄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노덕 그래서 그 누군가가 탄생하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는 개인이 많이 나와야 영화의 매력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명세 예전에는 영화인들이 술자리에서 흥행 여부로 싸운 적이 없었어요. 앵글이 그게 뭐냐, 이런 식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 요즘은 촬영이나 연기,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전부 흥행이 될 것 같냐는 물음만 해요.
장항준 나 같으면 그 신을 그렇게 안 찍는다면서 싸웠죠.
이명세 자각이 중요하지. 90년대 초반에 퐁피두센터에 갔을 때 서구 평론가들이 영화는 죽었다고 하길래, “영화는 내일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지금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라디오나 연극, 뮤지컬이 사라진 것은 아니잖아요. 모든 게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가 아니, 바로 우리가 자각하고 이런 질문을 해야 해요. 그래서 〈무성영화〉가 작게 헛발질이라도 했던 것은, 큰 파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져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노덕 10년 전쯤 비평이 죽었다는 말이 돌았던 적이 있죠. 예전에는 흥행이 안 되더라도 좋은 영화에 대해 조명을 해주는 시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흥행 논리가 지배적이게 되었죠.
이명세 이 시간이 참 길게 느껴져요. 장강(長江)의 물결을 생각하죠. 장강은 도도히 흐르다가 어느 순간 뒤집는데 그때가 어느 때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할리우드에서 흥행한 영화 중에 시나리오가 몇 년 동안 썩은 경우가 많아요. 어떤 흐름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죠. 〈더 킬러스〉의 경우 옴니버스니까 흥행이 안 된다고 말하겠죠. 자본과 흥행 여부를 떠나서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작업한 것이 만약 조금이라도 성과를 낸다면 ‘봐, 저렇게 되잖아’라는 식으로 보여줄 수 있어요. 이번에 〈더 킬러스〉를 만들어 영화제에 오고 연상호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감을 받았어요. 앞으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10편의 필모그래피는 채울 수 있겠지. 난 은퇴는 안 합니다. 영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거예요. 내가 은퇴 안 해도 은퇴시켜주니까.(웃음) 박수 많이 받고, 계속 받다가 안 치면 그때 가면 됩니다.



하퍼스 바자 올해 부산영화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상징적인 사건이죠.
노덕 몇 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 작품을 영화제에 초청하느냐 마느냐, 또 그것을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느냐로 논쟁이 있었죠. 그런 담론을 지나 벌써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것을 보고 저 역시 상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시대가 개념이 정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구나. 너무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고 있어요.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을 수정하고 전략을 짜고 있으면 이미 또 다른 트렌드가 되어 있죠. 그래서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하자는 마음입니다.

하퍼스 바자 요즘 같은 시기, 감독으로서 창작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각자만의 비법을 묻고 싶습니다. 김종관 감독님은 저예산 작업, 단편이나 옴니버스 영화를 다양하게 해왔죠.
김종관 변화와 싸우거나 변화에 적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창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형식적인 실험을 추구하고 있어요. 방식을 열어놓고 상업영화,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시 영상이나 다큐멘터리 작업도 진행하고요. 창작자로서 뭔가를 계속 쌓아 올리다 보면 나중에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거니까요. 저예산영화를 할 때는 창작적으로 내적인 질문을 빌드업 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도 안 보는 잊힌 창작자가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이죠.

하퍼스 바자 노덕 감독님은 넷플릭스 10부작 시리즈 〈글리치〉를 연출해보니 어떻던가요?
노덕 OTT와의 작업을 원한다고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지금은 영화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플랫폼이 OTT로 넘어가면서 겪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이 과도기가 지나고 나면 더 구체적인 영화의 정체성이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스트리밍 서비스와 영화만의 매력을 각각 찾아서 즐기는 시기가 제가 활동할 때 오면 좋겠어요. 영화 데뷔 이후에 많은 작품을 하진 못했어요. 언제까지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이죠. 지금은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져요.

하퍼스 바자 장항준 감독님은 방송과 영화, 이중생활을 하고 있죠. 바쁜 일정 중에도 연출을 놓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장항준 연예인이죠.(웃음)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한 시절을 살고 있어요. 다만 외부적인 활동이 잘되더라도 나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죠. 창작자들 모두의 꿈이겠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적인 한계가 먼저 왔으면 좋겠어요. 영감은 고갈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더 킬러스〉를 만든 건 여름에 속 시원한 냉차를 마신 느낌이라고 할까나.

하퍼스 바자 관객과의 교감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숙명일 겁니다. 감독으로서 새로운 세대와의 대화나 관객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나요?
김종관 어떻게 하면 영화적인 감각이 늙지 않을 수 있을까, 자문합니다. 그건 너무 내 안에 있는 것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계속 자각하면서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노덕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대중은 늘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세대의 관객이라고 해서 소통이 잘 된다는 확신이 들진 않아요. 늘 대중에 대해서 두렵고 제가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제 작품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대중을 생각하다 보면 고민의 끝에 남는 것은, 본인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죠. 나에게 솔직하기. 사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는 없잖아요. 반면 모두가 싫어하는 영화도 없고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거나 노리고 작업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로 느껴져요. 저 또한 대중의 한 명이고, 관객의 한 명이기 때문에 작품에 동의가 되고 마음이 가야죠. 내가 재미있냐, 내가 설득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김종관 모두의 사랑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어요. 그 누군가가 있어주면 창작하면서 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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