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축사 아닌 자연서 진흙 목욕을…"동물도 행복추구권 있어"

좁은 축사 아닌 자연서 진흙 목욕을…"동물도 행복추구권 있어"

연합뉴스 2024-10-23 08:0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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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다룬 책 '동물의 자리'·'우리 시대의 동물해방' 출간

비좁은 축사 비좁은 축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돼지 '새벽'은 당근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그러다 인간을 보면 반갑다고 인사하듯 달려온다. 그는 먹고, 자고, 좋아하는 진흙 목욕탕에서 뒹굴고, 풀밭 위를 달린다. 새벽이 사는 곳은 비좁고, 곧 도축될 날만을 기다리는 축사가 아니다. 동물들이 뛰놀 수 있는 넓은 농장, '생추어리'(sanctuary)다.

생추어리는 안식처, 보호구역이라는 뜻으로, 축산피해 동물 보금자리를 말한다. 1986년 미국의 동물보호 운동가 진 바우어가 동료들과 함께 '가축수용소' 근처 사체 처리장에서 살아남은 양 '힐다'를 구출해 처음으로 생추어리 농장을 만들었다. 힐다는 1997년 그곳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후 생추어리는 산업화한 동물들의 안식처로서 동물권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국내에도 생추어리가 있다. 새벽이생추어리,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등 다섯 곳이 운영 중이다. 최근 출간된 '동물의 자리'(돌고래)는 이런 국내의 생추어리를 소개한 책이다.

진흙 목욕 진흙 목욕

[EPA=연합뉴스]

사회학자인 정윤영과 현직 기자인 김다은이 함께 쓴 이 책은 국내 생추어리 가운데 네 곳을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저자들은 새벽이생추어리,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화천 곰 보금자리,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를 탐방해 각 생추어리의 특징을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말 보호센터는 동물을 좋아하는 개인이 시작했고, 곰 보금자리는 수의학적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운영하고 있다. 새벽이생추어리는 한국 최초의 생추어리로 '축산업 완전 철폐'를 외치는 가장 급진적인 동물보호 단체다.

저자들은 생추어리 관계자들을 만나 어떻게 그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관계자들이 느끼는 고민과 한계는 무엇인지, 실제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등을 들어본다. 아울러 먹히지 않고 늙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동물권이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인지 질문한다.

[돌고래·연암서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돌고래·연암서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동물권을 논한, 또 다른 책 '동물해방'은 이 분야의 교과서적인 책이다. 거의 최초로 도축에 반대하며 동물권 논의에 불을 지핀 도서이기 때문이다. 1975년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동물 인권선언인 셈이다. 그는 실험실과 농장에서 동물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생생한 설명과 윤리적 논의를 아우르면서 동물이 처한 엄혹한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장식 축산과 동물 실험과 같은 윤리적 문제를 다룬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를 금하는 범세계적 운동을 촉발키도 했다. 최근 출간된 '우리 시대의 동물해방'(연암서가)은 '동물해방'의 전면 개정판이다. 피터 싱어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변화를 포착해 책 내용을 전반적으로 손봤다.

소 축사 소 축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싱어의 책을 읽고 자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개정판의 서문을 직접 썼다. 하라리는 서문에서 "가축화된 종((種)은 집단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했으나 개별적으로는 전례 없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 소, 돼지, 닭은 종의 관점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세상에는 4만 마리의 사자와 10억 마리의 농장 돼지가 있고, 50만 마리의 코끼리와 15억 마리의 농장 소가 있으며, 5천만 마리의 펭귄과 200억 마리의 농장 닭이 살아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간이 기르는 가축의 무게는 7억t에 달하지만, 대형 야생동물은 1억t이 채 안 된다. 가축은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종이 됐다. 진화적으로만 본다면 대단한 성공이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그들은 불행하다. 채 6개월도 살지 못하고 도축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동물권을 옹호하며 가장 비참하고 짧은 생을 영위하는 가축들도 그들 나름의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동물은 우리만큼 지적이지 않을지 몰라도 고통, 두려움, 외로움, 사랑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도 고통을 받을 수 있고 그들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 동물의 자리 = 352쪽.

▲ 우리 시대의 동물해방 = 김성한 옮김. 45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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