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특파원협회 기자회견…美핵우산 의지에 "의지 말고 전쟁불가 국가방침 정해야"
中·北 핵무기 위협 질문에 "日 괴롭혀서 얻을 이익 없어…왜 공격 두려워하나"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우리 자신을 구하면서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 인류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결의를 새롭게 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이하 니혼히단쿄)의 창설 멤버 다나카 데루미(田中熙巳·92) 대표위원이 22일 도쿄에서 열린 주일본 외국특파원협회 주최 기자회견에서 니혼히단쿄 출범 당시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니혼히단쿄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에 피폭된 사람들의 일본 전국 조직으로, 원폭 투하 11년 뒤인 1956년 결성됐다.
당시는 1954년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 승무원들이 태평양의 비키니섬에서 벌어진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 여파로 피폭된 것을 계기로 일본 내 핵무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던 시기였다.
이를 계기로 1955년 8월 히로시마시에서 처음으로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열렸고 그 이듬해인 1956년 나가사키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 뜻을 모은 피폭자들이 결성한 게 니혼히단쿄다.
당시 대학생이던 다나카 대표위원은 여름방학을 맞아 본가에 돌아와 있다가 이 대회에 참가한 걸 시작으로 68년여간 니혼히단쿄에 힘을 보태왔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전까지 11년간 피폭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유로 "미국 점령기 7년간은 피폭 상황을 발설하는 게 금지돼있었고 그 뒤 3년여간 일본 정부는 재건을 우선시하면서 피폭자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2차 대회 선언문에도 이런 분위기가 역력히 드러난다. 선언문에는 "이제껏 잠자코 고개를 숙인 채 뿔뿔이 살아온 우리가 더는 잠자코 있을 수 없어 손을 잡고 일어서려고 모인 대회"라고 적혀있다.
그는 자신의 피폭 경험도 전했다.
원폭 투하 때 중학 1년생이던 그는 집 2층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폭발음에 창문 밖을 내다보고서 새하얀 빛에 공기가 휩싸여있음을 느끼고 1층으로 피신해 엎드려있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울부짖는 소리에 의식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유리창문 2개에 깔린 바람에 보이지 않아 어머니는 큰 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유리가 깨지지 않은 것은 지금도 기적이라고 생각된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가족이 경제적으로 의지하던 친척 5명이 숨졌고 집은 반파돼있었다.
원래 그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5살 때 일본군이던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숨지면서 그의 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이 있던 나가사키로 이사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참여한 니혼히단쿄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폭자들 지원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면서 핵무기 근절 운동을 197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으로 펼쳐왔다.
유엔에 가서 핵무기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증언하고 피폭 참상을 전하는 사진전을 여는 등 꾸준한 반핵 운동을 벌였다.
특히 유엔 핵무기 금지조약(TPNW)이 2017년 유엔에서 채택되고 2021년 발효되는 데 니혼히단쿄의 활동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
TPNW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핵무기 개발, 생산, 비축, 사용, 사용 위협 등의 활동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약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핵무기 보유국과 일본과 한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등 핵우산을 제공받는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핵무기 근절 운동을 68년여간 벌여오면서 니혼히단쿄는 이미 몇차례 노벨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지만 번번이 발표 명단에서 빠졌다.
그는 이에 대해 "노르웨이도 나토(NATO) 회원국이니까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나카 대표위원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주장해온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관련해 "핵무기는 안 된다"며 일본 정부가 TPNW를 비준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하는 데 대해 "일본이 왜 승전국인 미국에 의지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지할 게 아니라 전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국가의 방침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이나 북한 등의 핵무기 위협에 관한 질문을 받고도 "북한이 매우 위험한 나라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나라가 일본을 괴롭혀서 어떤 이익이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공격해올 것을 왜 두려워하는지, 저로서는 정부 방침을 의문시한다"고 말했다.
다나카 대표위원은 니혼히단쿄가 회원들의 고령화 문제를 맞고 있는 데 대해 "유전 등을 통해 피해를 본 2세들이 중심이 돼 우리들이 해온 운동을 계승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evan@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