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을 확인했다며 1차로 1500명의 북한군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고 밝힌 것. 이는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지난 5월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 300만 발을 공급했다고 밝힌 지 5개월여 만이다. 물론 북한은 이를 ‘근거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에 장비뿐만 아니라 전장에 배치될 군인들을 보내고 있다는 위성 및 영상 증거가 충분하다며 “북한이 전쟁에 더 개입하면 모두에게 해로울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원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에 다른 국가의 사실상 참전"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미 백악관은 “북한군 파병 관련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에서 위험한 전개일 것"이라며 “상당히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외교부는 21일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했다.
북한의 대규모 병력 파병은 그 자체로도 엄중한 소식이지만, 이 사태가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은 실로 방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북한군은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또 북한군의 참전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북한판 ‘네이비 씰’… ‘후방 교란 작전’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특수부대를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러시아 지역으로 수송했다. 이미 1500명이 청진과 함흥, 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 4척 및 호위함 3척을 이용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동했으며 조만간 2차 수송 작전이 진행된다는 것이 국정원의 예상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이 최정예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 소위 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이 포함된 대규모 병력을 파병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최고 지도자를 호위하는 북한의 최정예 부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진무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BBC에 “북한의 특수작전부대는 한국으로 치면 ‘특전사’, 미국으로 치면 ‘네이비 실(Navy SEALs)’”이라고 말했다. 최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기 위해 투입되는 병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실제 북한군 구성은 지상군과 해군, 공군, 핵미사일 다루는 전략군 그리고 특수작전군” 이라며 “특수작전군의 작전 능력은 후방을 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는 북한 특수부대는 소위 못 먹어서 작고 비실비실한 그런 군인이 아니라 키 크고 체력 좋은, 늘 돼지고기 배불리 먹고 생존과 엄폐 등에 능수능란한 ‘일당백’”이라며 “소규모 부대, 즉 12~19명 정도의 분대 규모로 무장을 최소화해 생존하면서 후방을 교란하는 즉, 낙하산 타고 뛰어내리는 공수부대나 공기부양정 또는 잠수함을 타고 침투하는 매우 위협적인 부대”라고 강조했다. 이럴 경우 우크라이나 전선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질 것이라고 김 전 연구위원은 평가했다.
북한군이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파견됐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막대한 양의 무기와 탄약류를 공급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한 인민군 그리고 건설여단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우 전쟁 이전에도 북한 인민군 건설여단들이 러시아에서 건설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전쟁 발발 이후에 후방으로 이동해 전투공병이 아닌 일반 공병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만 “추가로 파견되는 인원이 정말로 특수부대 정예병력인지, 일반 공병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 이유로 “북한군 특수부대가 전투에 참여하면 분명 전사자 혹은 포로가 발생할 테고 북한군 참전 사실이 확인되면 우크라이나에 외국군이 들어갈 명분이 생긴다. 특히 인민군 참전이 확인되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대규모로 제공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는 푸틴 대통령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악몽’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장은 17일(현지시간) "북한 군인들이 11월 1일에 준비될 것”이라며 “선발대 2600명이 다음 달 쿠르스크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군인들은 러시아 군복과 러시아제 무기를 지급받았으며, 북한인과 용모가 유사한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지역 주민으로 위장한 가짜 신분증도 발급받았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참전 사실을 숨기려고 러시아군으로 위장했다고도 전했다.
북한군 개입 파장… 확전 vs 종전
전문가들은 북한군의 참전으로 러-우 양자간 전쟁이 진영간의 전쟁, 즉 국제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군사동맹을 맺은 북-러가 함께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면 물밑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출신의 이창형 대륙전략연구소장은 “지금까지는 군사장비와 물자를 주고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하도록 수위를 조절해 왔는데 북한군이 개입해서 우크라이나 후방을 교란하고 EU 지역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좌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현 상황을 관리하며 후방 지원을 해온 EU 입장에서도 조직화된 북한군 최정예 특수부대가 개입해 전쟁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환되는 상황이 온다면 직접 파병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북한군 개입에 대해 "현재까지의 나토의 공식 입장은 '확인 불가'이지만, 물론 이 입장은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입장’이란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의미한다. 크리스토프 르모안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 역시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만약 해당 정보가 확인되면 이는 극도로 우려스럽고 심각한 전개"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7일 북한이 약 1만명 파병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있다면서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북한이 무기와 인력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돕고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을 전쟁 당사자급으로 참여시켜 침략을 심각하게 확대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국 국방부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역시 “전쟁 참여 당사자가 더 많아진다면 국제사회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북한군 파병은 결국은 제3국의 개입이고, 이는 미국이나 EU 역시 전쟁에 직접 개입한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게끔 명분을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북한군 파병이 러시아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인민군 참전이 확인되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살상무기를 제공할 명분이 생긴다”면서 “그럴 경우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가 동시에 연계되는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도 직간접적으로 안보적 연루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 그는 다만 “이는 북한으로서도, 러시아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인 만큼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북한군 정예부대의 참전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세 역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선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김진무 전 연구위원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연합 모두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지만 마땅한 명분도 없고, 전선에 변화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 전쟁을 끝내려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하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불리해지는데, 이럴 때 북한군을 등장시켜 러시아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판도를 만들면 휴전 또는 종전 분위기가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북한에 군대를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전세를 러시아편에 유리하게 가져와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북한군이 그러한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와 언론 보도에 대해 ‘근거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관계자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에서 "러시아와의 이른바 군사 협력에 대해 우리 대표부는 주권 국가 간의 합법적이고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훼손하고 우리의 국가 이미지를 더럽히려는 근거 없는 뻔한 소문에 대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주유엔 북한 대표부의 이날 언급은 북한군의 파병과 관련한 북한 당국의 첫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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