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 중단…'팔 주권국 인정' 요구
이란-걸프국 첫 외무장관 회의…이란 외무, 12년만에 이집트 방문도
중동 내 反이스라엘 여론 높아…"美 영향력 '한계' 때문"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중동내 친이란 무장세력들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확전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과 다른 중동국가들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제외, 중동 재편 진행 중'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이란과 중동 국가들이 접촉면을 확대하는 분위기를 조명했다.
특히 NYT는 전통적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에도 "온기가 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 맏형인 사우디는 역내 패권을 두고 대립해온 라이벌 국가다. 하지만 가자 전쟁 이후 사우디가 "전통적인 '최대의 적' 이란과의 관계에 온기를 지피고 있다"는 게 NYT의 관측이다.
반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는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을 중단한 데 이어 수교의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권국 인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NYT는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오랜 기간 지지해왔지만, 최근 외교정책에서 우선순위에 두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자지구 전쟁 이후 변화가 생겼다고 짚었다.
나아가 사우디는 다른 걸프 국가들과 함께 이란이 참석하는 다자회의를 열었다.
지난 4일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과 이란의 외무장관들이 카타르 도하에 모여 중동 안보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NYT는 GCC가 이란과 이같은 형식의 회의를 연 것은 당시가 처음이라고 짚었다.
그 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9일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예방하기도 했다.
역시 이란의 '앙숙'으로 꼽혔던 이집트와의 관계에서도 일부 변화가 엿보인다.
아락치 장관이 지난 16일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예방하고 바드르 압델라티 외무장관과 회담한 것이다. 이란 외무장관의 이집트 방문은 12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NYT는 짚었다.
이 밖에 그간 비교적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던 UAE도 '두 국가 해법'을 강조하며 이스라엘 압박으로 태도를 선회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전쟁을 장기화하며 중동 정세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향한 국내 여론이 크게 악화했다는 점 역시 이들 중동국의 외교 기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 평균 연령이 29세(2022년 기준)인 사우디에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가자지구의 끔찍한 참상을 본 뒤 한 때 긍정적으로 생각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에 대한 입장을 바꾼 사람이 많으며, 빈살만 왕세자는 이런 여론을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각에서는 중동 국가들의 태도 변화 원인을 미국에서 찾는다.
세계 최강국이자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이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전제하에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려 했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의 '한계'를 절감했다는 것이다.
사우디 왕정과 가까운 사업가인 알리 시하비는 "우리는 이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NYT에 말했다.
hr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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