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현직 검사도 국회의 동행명령에 불응하고, 전직 대통령의 자녀들은 국감 출석 요구를 받지 않기 위해 잠적했다. 미국은 증인의 의회 청문회 출석을 위해 소환장 전달 과정에 연방 보안관을 개입시킨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8일 법무부 등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에 대한 동행명령을 발부했다. 김 차장검사는 동행명령장 수령을 거부했다. 김 차장검사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법정 허위진술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김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벌금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도 노 관장의 이혼소송 중 드러난 ‘노태우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같은 날 법사위에 출석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휴대전화를 꺼두는 등 고의로 국회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가 진행됐을 때도 최씨 본인은 물론, 다수의 증인들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자 청문위원들은 서울구치소 내 최씨의 수감동을 직접 방문해 약식으로 대화를 하는 선에서 최씨에 대한 청문을 진행했다.
국회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약식기소 되고,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만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따라서 현직 검사도 국회에 불출석한 후 동행명령에 불응하는 등 “국회에 나가서 망신을 당하느니,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동행명령 제도는 1988년부터 시작됐다. 국회의 증인·참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를 거부할 때, 상임위서 동행명령장 발부를 의결하면, 국회 사무처 직원이 동행명령장을 들고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동행을 요구한다.
하지만 동행명령장에는 체포의 효력이 없는 만큼 강제구인은 불가하다. 대법원도 “동행명령장에 기한 신체의 자유 침해는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청문회 소환, 연방 보안관 개입
불출석하면 본회의 의결로 고발
상임위 중심의 청문회는 제19대 국회서 시작됐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 개혁자문위원회가 “미국식 청문회를 참고해서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제안했던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7년 3월17일 발표한 ‘미국 의회 증인출석요구 및 불출석 제재 제도의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의회가 개최하는 청문회서 증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대체로 출석 요청에 협조적으로 응한다고 한다. 따라서 소환장을 발부하는 상황은 아주 이례적이다.
미 의회의 청문회 소환장 발부는 위원회별로 위원장과 소수당 간사의 협의를 거쳐 결정된다. 특이한 것은 집행 과정이다. 위원회 직원에 의해 집행되는 경우는 우리와 같지만, 연방법원에 집행관으로 주재하는 연방 보안관(U.S Marshals Service)이나 의회 경위가 집행하는 예도 있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의회 소환에 경찰관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환장이 체포영장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나 “소환장을 받고도 불출석하면, 의회 모독죄로 형사고발될 수도 있다”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의회 모독죄의 형량은 100달러 이상 1000달러 이하의 벌금, 1월 이상 1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규정상 처벌 수위는 한국이 더 높다.
하지만 미 의회의 의회 모독죄 고발은 위원회 조사 → 본회의 의결 → 연방검사에 고발 → 검사의 기소 요청 → 판사의 대배심 소집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본회의 의결을 거치기 때문에, 위원회 단위서 고발하는 한국과 무게가 다르다.
영화서도 권위 인정 장면
우리 국회는 호통·망신쇼
증인 대부분은 의회 모독죄 고발 전 출석 요구에 응한다고 한다. 1980년 이후 2014년까지 하원서 의회 모독죄 고발 결의안이 최종 가결된 사례는 8건에 불과하고, 불출석이 이유였던 사안은 4건이었다.
미 의회의 청문회 소환 과정서 특이한 제도는 하나 더 있다. 의회는 연방지방법원에 소환장의 효력을 확인하고 출석명령장을 발부하도록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민사소송을 통해 출석명령의 효력을 확인한 후에도 증인이 불출석하면, 이때는 법정모독죄로도 처벌될 수 있다.
1980년부터 2014년까지 미 상원서 소환장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사례는 총 5건이었다. 아울러 의회가 불출석 증인을 직접 구인해서 증언할 때까지 증인을 가둘 수 있는 제도도 있다. 미국서 이를 의회 고유의 권한으로 인정한다. 연방대법원도 이를 합헌으로 인정했다.
국회가 증인의 자발적인 출석을 독려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제도도 있다. 입법조사처가 2010년 3월14일 발표한 ‘미국 의회의 도요타 청문회 개최와 그 시사점’에 따르면, 미 의회는 증인을 배려하기 위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미 의회는 청문회를 시작하기 전에 위원회 소속 직원이 미리 증인을 방문해 증언을 녹취한다. 이로써 증인의 솔직한 대답을 얻을 수 있고, 제3자 모욕 등 부적절한 진술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증인이 수정헌법에 규정된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위원회 전체 2/3의 찬성을 얻으면, “증인이 형사소추되면 의회서 한 증언이나 그 증언으로부터 얻은 정보는 재판서 이용될 수 없다”는 법원의 명령을 얻는 ‘기소면제’ 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미 의회는 영화 등 대중 매체서도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의회의 청문회가 갈등을 해소할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복잡한 상황에 빠진 등장인물들을 더욱 압박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묘사가 더러 등장한다.
반대로 우리 국회의원들의 국감이나 청문회서의 태도는 주로 ▲증인·참고인에 호통치기 ▲망신 주기 ▲튀어 보이기 위한 쇼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지난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서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유명 걸그룹 소속 가수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의원도 목격됐다.
법원 개입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서도 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규혁씨를 증인으로 출석시켜놓고, 한밤중까지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등 증인에게 지나치게 무례했던 사례도 있었다. 국회 출석에 불응하는 증인들에 대한 엄정한 대처도 중요하지만, 의원들도 증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자신의 직무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서로의 숙제가 진하게 남는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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