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항전' 최후 모습 부각되며 영웅화 분위기
사우디 방송, 신와르 '테러리스트'로 보도했다 역풍 맞기도
이스라엘 "신와르 부인 명품 들어" 주장하며 여론 반전 꾀해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히야 신와르가 살아있을 때보다 사망한 이후인 지금 아랍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물론 아랍권에서도 그를 영웅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방송국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뒤늦게 신와르가 땅굴로 피신하는 모습이나 그의 부인이 수천만원짜리 명품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들고 있는 영상을 공개하며 아랍권 여론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신와르가 생전보다 사후에 더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센터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달에는 가자지구 주민 중 29%만이 신와르를 지지했다.
신와르가 이스라엘을 자극해 가자지구를 전쟁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었고 주민들의 일상을 파괴했다는 비난도 상당했다.
WSJ는 하지만 그의 최후의 순간이 알려지면서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서 신와르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신와르가 이스라엘이 주장하고 많은 사람이 추측해온 것처럼 터널에 숨어있거나 가자지구에서 도망치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끝까지 싸우다 사망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WSJ에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집을 잃은 가자 주민들이 신와르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1년 이상 목격해왔는데 그의 죽음이 담긴 영상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랍권에서도 영웅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오만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그랜드 무프티는 신와르를 '영웅적 지도자'로 칭하며 "뒤로 물러나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고 평가했다.
이집트의 이슬람 수니파 최고 종교기관인 알아즈하르대학도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칭송했고, 하마스의 라이벌인 파타당도 신와르를 '순교자'로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랍권의 소셜미디어(SNS)에도 신와르가 용감하게 순교했다는 반응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표를 역임한 나세르 알키드와는 "아랍권 사람들에게는 신와르가 가자주민을 버렸다는 이스라엘의 주장과 달리 도망가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이 신와르의 최후 모습을 담은 이런 영상을 공개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휴전 협상에 참여했던 한 아랍 고위 관료는 해당 영상이 팔레스타인 대중과 하마스의 지속적인 저항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이스라엘이 이를 공개한 데 놀랐다고 말했다.
2011년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두고 하마스와 협상에 참여했었던 게르손 바스킨도 "그들은 이런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서 신와르의 유산을 새로운 종류의 살라딘(12세기 십자군을 격파한 이슬람의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랍권의 이런 분위기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미국의 동맹이 미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들 국가의 국민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동정심을 다소간 보여오긴 했으나, 정부 차원에서는 하마스를 테러 집단으로 지정하거나 그 영향력을 경계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사우디에서는 한 방송사가 신와르 사망 후 그를 '테러리즘의 새로운 얼굴'이라고 묘사했다가 비난에 직면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 방송사의 보도가 알려진 이후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이집트에서는 시위대가 해당 방송사의 바그다드 사무실에 난입해 장비를 부수기도 했다.
사우디 미디어 규제당국은 이에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고, 이집트는 이 방송사의 면허를 정지하기로 했다.
FT는 사우디는 그간 하마스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성난 민심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즉각적인 조치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랍권의 신와르 영웅화를 차단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CNN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일 신와르가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을 기습하기 전 땅굴로 피신하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하며 그의 감춰진 이면을 드러내는데 열을 올렸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가 땅굴에서 음식물과 침구 등을 옮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과 가족의 생존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신와르의 부인이 들고 있는 가방이 고가의 프랑스 명품이라며 가자지구 주민들은 기본적인 생필품도 구하지 못하고 텐트에 사는데 신와르와 그의 부인은 돈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런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해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즉각 반박하며 신와르를 영웅화하기 위한 여론전을 계속했다.
하마스는 신와르가 가자지구의 다양한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사망했고 이스라엘군이 그를 모욕했다고 비난했다.
다만 이스라엘군이 신와르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스라엘 오노대학의 길 시에갈은 "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은 보통 지지자들과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있다"며 "그런데 팔레스타인을 위해 싸운다는 이 사람(신와르)은 오로지 혼자였고 사람들도 그를 내버려 뒀다"고 했다.
eshiny@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