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개표서 반대 52% 우세…친러·친서방 '갈림길'
친서방 대통령, 친러 세력 선거 개입 규탄 "외국 결탁한 범죄집단 소행"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동유럽 국가 몰도바에서 20일(현지시간) 치러진 유럽연합(EU) 가입 찬반 국민투표에서 여론조사를 뒤집고 반대표가 앞서고 있는 이변이 연출됐다.
친(親) 서방 성향의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외국 세력과 결탁한 범죄 집단이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가했다"며 친러시아 세력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날 국민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산두 대통령이 친러 진영의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 후보를 누르고 1위가 유력해졌으나 과반 득표에는 실패해 내달 결선 투표를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AP 통신에 따르면 몰도바의 EU 가입 여부를 두고 진행된 국민투표는 개표율이 약 95%를 넘긴 상황에서 반대 52%, 찬성 47%로 반대표가 앞서고 있다.
이는 대선 직전 여론조사에선 EU 가입 찬성 여론이 63%로 앞섰던 것에서 뒤집힌 결과다.
다만 몰도바 내에서 EU 가입 찬성 여론이 높은 이민자 집단에서 이뤄진 투표의 개표는 아직 지연되고 있다고 AP는 덧붙였다.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 지지 여론을 확보하고 친서방 정책 노선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려 했던 산두 대통령은 여론조사와는 달라진 개표 결과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외국 세력과 결탁한 '범죄 집단'들이 각종 선전과 가짜 뉴스를 통해 민주주의를 공격했다면서 친러 세력의 선거 개입 의혹을 재차 제기했다.
산두 대통령은 개표가 약 90% 진행된 시점에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우리 국가의 이익에 적대적인 외국 세력과 함께 일하고 있는 범죄 집단들이 수백만 유로의 돈과 거짓 선전 등을 이용해 우리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가했다"면서 이들이 "우리 국가와 시민들이 불확실성과 불안정에 갇혀있도록 가장 불명예스러운 수단들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러한 범죄 집단들이 30만표를 돈으로 구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이는 전례 없는 규모의 사기"라면서 "이들의 목표는 민주적 절차를 해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산두 정부는 러시아가 몰도바의 친유럽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번 선거에 부정한 방법으로 개입하려 하고 있다고 규탄해왔다.
몰도바 경찰은 이달 초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범죄 집단이 몰도바 국민 13만여명에게 대선에서 친러시아 후보에 투표하고 국민투표에 반대표를 던지라며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지난주에는 몰도바 국민 수백명이 러시아에서 몰도바 내에서 폭동과 시민 불안을 야기하는 방법을 훈련받았다는 정황을 확인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러한 몰도바 선거 개입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이날 국민투표와 함께 진행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재임에 도전한 산두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 득표에는 실패해 다음 달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은 산두 대통령이 이날 대선에서 39%의 득표율로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과반 득표에는 실패해 득표율 28%로 2위에 오른 스토야노글로 후보와 다음 달 3일 결선 투표에서 맞붙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날 치러진 몰도바 대선과 EU 가입 국민투표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번 선거가 서방과 러시아의 정치 대결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옛 소련에 속했던 몰도바는 소련 해체 이후 친서방과 친러시아 정권이 번갈아 가며 들어서고 있다.
현재 집권한 산두 대통령은 친유럽파로, 그는 이번 대선으로 임기를 4년 연장하고 EU 찬성 여론을 재확인해 친유럽 정책을 이어가고자 하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날 치러진 두 선거가 소련 해체 이후 몰도바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선거"라면서 이번 선거를 통해 몰도바가 친서방과 친러 노선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짚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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