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승우(한미일연구소 상임대표. 언론사회학 박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언행 특징은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며 구체적 데이터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소통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속된 말로 입이 험한 정치인인 그가 한반도에 관심을 보이면서 주한미군과 관련해 한국을 비하하거나 북한 김정인 위원장을 추켜세우는 식의 발언을 거듭 내놓고 있다.
그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면에서 웃고 지나갈 수 있다지만 주한미군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한 메시지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는 분담금을 5배나 9배 올려야 한다는 식인데 구체적으로 그 근거를 밝히지는 않고 있다. 트럼프는 문재인 정부시절 분담금을 5배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관철이 안 되었는데 최근 9배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상대인 한국 정부는 과거나 현재에도 그의 발언에 공식적으로 따지거나 꾸짖는 일을 한 적이 없다. 그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도 트럼프의 주장만을 전달할 뿐 시시비비를 가린 적이 없다. 한국민은 그래서 트럼프가 왜 저러는가 하고 어리둥절할 뿐이다. 문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주한미군 주둔에 들어가는 분담금이 나가는데 정작 한국의 주권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이지를 모르고 있다. 한국 정치권도 이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한다. 지구촌이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볼지는 뻔하다.
용산과 여의도에는 방안통수, 우물 안 개구리 정치인들만 있나?
트럼프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할 터인데 국내 어느 정치인도 트럼프에게 맞장 뜨자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여의도와 용산을 보면 언제나 정쟁을 부추기는 문제제기와 비판, 응수가 교차하는 공방전이 그치질 않지만 국가의 존엄성과 막대한 혈세 지출과 직결되고, 국민의 대외적 체면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하다. 침묵의 카르텔을 맺은 듯 착각이 들 정도다. 우리는 방안통수, 우물안 개구리 정치인이라는 호칭이 적절한 인물들만 정치머슴을 자임하고 있는 것 같은 비통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트럼트가 분담금을 5 ~9 배 내야 한다는 주장은 왜 나오고 있을까? 미국에선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분담금의 경우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 결정으로 재협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 법이 그렇다 해도 한국은 어떤가? 최근 한미 두 정부가 액수와 적용기간 5년에 합의했는데 미국법에 의해 재협상을 하는 것이 국제법적 정신에 비춰 타당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를 강조하는데 한국에는 미국이 국제법을 어기는 것과 같은 짓을 하는데 그것을 방어할 법과 제도가 없는가? 이런 기본적인 것에 대해 한국 정부는 끽소리도 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당선이 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니 발언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가 무슨 근거로 분담금을 최고 9배까지 올린다고 큰소리를 치는가 하는 점이다. 그가 바보라서 그런가, 아니면 무언가 착각해서 그런가? 미국 정치권은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그가 당선되어 치고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래도 관행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로 미뤄 트럼프의 분감금 액수 조정 주장은 법률적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가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자신 있게 내놓는, 미국이 꼴리는 데로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한미군 주둔비 산출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미동맹의 핵심기반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발견된다. 이 조약 4조의 부속협정으로 주한미군지위협정, SOFA가 나왔고 분담금에 대한 협정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 SMA)이 새끼 쳐 나왔기 때문이다. SOFA를 1966년 만들 때는 주한미군 주둔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1991년 SOFA 5조를 근거로 SMA를 만든 것이다.
한국 정치권,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 발동 여부 국민에게 물어야
이상에서처럼 SOFA, SMA 모두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하위법으로 만들어졌다. 4조는 미국이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했다. 권리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원하는 데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의무의 반대말이다. 주한미군 주둔이 미국의 권리라면 한국은 그에 대한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이는 이 조약의 성격이 한미가 동등한 주권국가의 입장이라는 점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은 치외법권적 지위를 보장받고 주둔에 필요한 부지. 시설, 주둔비 일부를 한국으로부터 제공받는다. 미국이 갑이고 한국은 을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과거 핵무기, 사드를 한국에 배치할 때 미국은 한국에 통고하고 한국은 수용하는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어떤 경우 미국은 한국 정부에 아예 통고조차 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러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같은 불평등 조약이 21세기 지구상에 또 있는가? 당연히 없다.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이 필리핀, NATO 회원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만든 협정 등을 보면 한미군사 관계가 얼마나 상식과 동떨어진 것인가가 확연해진다. 필리핀의 경우 미군은 영구주둔은 안 되고 한시적 방문국 형식으로 잠정기간 주둔하게 되어 있고 그것도 필리핀 기지 안에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대량살상무기는 반입이 안 된다. 미군이 시설한 것은 후에 필리핀정부에 귀속되고 미군의 환경오염은 미군이 부담한다.
해외에서 동맹군에 대해 많은 제약을 가하고 경계하는 식의 신경을 쓰는가? 그것은 군대의 속성 때문이다. 군대라는 조직은 생명과 재산의 수호 역할도 하지만 쿠데타, 내란의 물리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국군대도 헌법에 위반하는 짓을 저지르는데 만약 외국군이 딴 맘을 먹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이는 외국군의 주둔을 받아드리는 국가의 정치가 경계하고 대비해야 할 당연한 의문이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미동맹에서처럼 외국군대가 절대 선이라고 보는 시각 자체가 지극히 비정상이라 하겠다.
트럼프가 기업가적 기질이 강한 정치인이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보장된 미국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면 한국 정치권은 이를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그것의 수용여부를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동시에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동맹의 원천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 조약 폐기를 규정한 6조를 발동할지 여부를 역시 국민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계속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웃음꺼리로 만드는 언행을 하지 못하도록 한미관계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여야,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한미 불평등 군사관계에 대해 침묵한 채 권력쟁탈을 주목적으로 우물안 싸움식의 추한 작태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류, K-팝이 세계를 감동시키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선진국 한국이 한미동맹에서 미국의 준군사식민지라는 오명을 언제까지 감수할 것이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국을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고 승 우
언론사회학박사
한미일연구소 상임대표
미디어오늘 논설실장(전)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 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폴리뉴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