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서 김종일 경감…문서고에서 독립대대 사령원부 발견
"독립유공자 선정 도움됐을 때 기뻐…조직적 연구 이어지길"
(정읍=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사무 형편에 의하여 사직을 면함. 정읍 독립대대.'
빛바랜 종이 위에 한문으로 빼곡히 쓰인 100여명의 이름. 그 한자 옆에 한 글자 한 글자씩 김종일 경감(52)이 옮겨 적인 한글이 적혀 있었다.
김 경감은 현재 전북 정읍경찰서 경무과에서 근무 중이다.
경찰의 날을 열흘 앞둔 지난 11일 만난 김 경감이 보여준 정읍경찰서 독립대대 명단은 3년 전 정읍경찰서 100년사를 펴낼 때 모아둔 작업물이다.
김 경감은 "전북경찰청 지하 문서고에 갔다가 한국전쟁 당시 정읍경찰서 독립대대 사령원부(개인 인사를 적은 문서)를 발견했다"며 "하지만 참여 명단이 전산화가 되어있지 않았다. 선배 경찰관을 위해 무언가 보태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게 정읍경찰서 100년사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독립대대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김 경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석 달 뒤인 9월 31일부터 3년간 정읍경찰서에서 독립대대가 운영됐을 거라고 추정된다.
쌀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정읍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치안 인력이 부족했고, 당시 김두운 12대 정읍경찰서장이 무자비한 양민 학살을 예방하기 위해 정읍경찰서 경비과장의 직할 부대 성격으로 200여명의 3개 중대를 편성했다고 보고 있다.
김 경감이 문서고에서 발견했던 사령원부는 당시 독립대대원으로 임명됐던 129명에 대한 명단이었다.
사령원부에는 사무 형편에 의해 면직했다는 간략한 면직 사유와 함께 129명의 이름과 직책 등이 적혀있었다.
김 경감은 "개인의 인사기록이 적힌 사령원부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국가에서 경찰 신분을 인정했다는 말과 다름없다"며 "다른 도 경찰청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중한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록들은 경찰관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최근 정읍서 독립대대 명단에 올라 있던 고 장기환 순경의 아들이 경찰서를 찾아와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기 위한 기록을 요청했다.
김 경감은 적극 나섰고 그가 들춰봤던 김두운 서장의 자서전과 1999∼2002년 국가유공자 신청 당시의 구술 기록 등을 증거기록으로 제시했다.
김 경감은 "다행히 고 장기환 순경을 비롯해 독립대대에서 활동했던 세 분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고, 호국원에 안치된 분들도 있다"며 "가족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참 보람찼다"고 옅게 미소 지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경찰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었던 건 김 경감의 고향이 정읍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정읍을 배경으로 한 김호운 소설가의 '황토'를 읽고는 서울로 가 김 소설가를 만나기도 할 만큼 고향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많다.
애정이 큰 만큼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경찰과 정읍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 관련 내용들이 조금 더 연구되기를 바란다.
특히 올해 한국경찰사연구원을 이끌던 이윤정 원장이 퇴임하면서 관련 활동이 중단된 게 아쉽다.
연구원들끼리 1년에 2∼3차례 만나 학술대회를 열면서 같이 경찰 역사를 발굴해왔던 만큼 다시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김 경감은 "경찰 역사에는 훌륭한 기록들이 많지만 고문 기술자 이근안처럼 과오도 크다"며 "경찰관들 모두가 각자의 업무에 바쁘겠지만, 조직이 더 깊고 풍부하게 발전하기 위해 공과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w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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