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 떠나는 '로우 도깅' 여행

스마트폰 없이 떠나는 '로우 도깅' 여행

BBC News 코리아 2024-10-19 10:43:17 신고

3줄요약
한 여성이 가방을 메고 여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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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와 모니터 화면,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차단한 채 장시간 비행을 견디는 여행법이 최근 화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여행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 행동은 정신력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나 책, 음악, 모니터 화면을 이용하지 않고 오직 정면만 응시하며 비행 시간을 견디는 것. 심지어 먹거나 마시거나 잠을 자는 것도 자제하는 “로우 도깅” 장거리 비행에 올여름 이목이 쏠렸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수인 엘링 홀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7시간의 비행 동안 “휴대전화도, 잠도, 물도, 음식도 먹지 않았다”며 이를 보여주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로우 도깅 영상을 게시한 유명인사는 그만이 아니었다. 호주 출신의 음악 프로듀서 토렌 풋과 배우 겸 뮤지션인 자레드 레토도 각각 15시간과 17시간의 로우 도깅 경험을 온라인으로 공유했다.

로우 도깅(다소 외설적인 의미의 은어로도 사용된다)이 어리석거나 심지어 허무주의적인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유행 속에서 우리가 디지털 기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외부 자극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몇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이제는 사람들이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시도해보는 ‘챌린지’가 정도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현재에 집중하고 마음챙김을 하는 것은 건강과 웰빙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불안과 우울증, 혈압을 낮추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은 신체적, 정신적 웰빙에 해가 될 수 있다. 수면 습관부터 근골격계 건강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바로 전자기기 전원을 끄고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아야 하는 이유다.

세간의 화제가 되는 ‘챌린지’가 그러하듯, 로우 도깅에도 우려는 따른다. 의료 전문가들은 장거리 비행 중 물을 마시거나 움직이거나 심지어 화장실 사용까지 피하는 극단적인 행위는 목숨을 위태롭게 할 만큼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여행의 본질을 생각했을 때 외부 자극을 차단한다는 것은 직관과 상충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상에서도 여행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디지털 디톡스’가 있는지 궁금했다.

여행객이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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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은 새로운 장소를 탐색할 때 휴대전화를 사용하곤 한다

여행의 주목적 중 하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행을 가서도, 집에서 하던 대로 전자기기와 모니터 화면에 얽매이는 것일까? 여행 내내 휴대전화를 꺼두면 뭔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앱과 휴대전화 알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환경에 더 깊이 연결되고 사람들이 과거부터 여행을 하던 방식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로우 도깅 여행을 시도해봤다. 휴대전화도, 소셜 미디어도, 아무런 방해 요소도 없이 낯선 환경에 몰입하며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하는 여행이다.

내가 찾아간 스페인 마요르카의 도시 팔마는 일반적으로 마음챙김을 할 만한 여행지는 아닌 듯했다. 이곳은 많은 관광객들이 선탠과 파티, 칵테일 한 모금을 즐기는 햇살 가득한 여행지로 유명하다. 이 상황은 현지 주민들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에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과 셀카를 찍는 사람들로 점점 혼잡해지자, 요즘 지역 주민들은 도시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휴대전화를 끄고, 이 현지 주민들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이 추천하는 여행에 귀 기울이고, 도시의 혼이 담긴 장소를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의 자연에 매료됐다.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버스나 택시 대신 공항에서 숙소까지 걸어 가기로 마음먹었을 정도였다. 숙소로 가는 길도 기억하기 쉬웠다. 해변에 도착해 좌회전해서 해안선을 따라 도로가 나올 때까지 걸어가면 됐다. 나는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는 대신, 해변에 부딪히는 먼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현지인들이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의 변형인 마요르카어로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러한 현지의 소리와 꿀빛의 석조 건물, 드라마틱한 고딕 및 바로크 양식의 건물, 해변을 가득 메운 많은 외국인 관광객 등은 팔마에 대한 나의 첫인상으로 각인됐다.

스페인 팔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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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페인에서 오버투어리즘이 심각하다는 곳 중 하나인 팔마에서 도시의 혼을 보다 더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사실 나는 휴대전화에 있는 ‘구글 지도 앱’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를 쓰지 않으니,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한 카페 외부에 앉아 있던 여성들에게 노트에 적은 주소를 보여주며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손짓까지 더해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바다에서 잠시 수영을 한 후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로 찾아간 팔마의 역사 중심지에서는 마요르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스물세 살의 튀르키예인 에르텐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추천하는 여행지를 물었는데, 옆에 있던 마요르카인들까지 가세해 저마다의 추천을 내놓았다. 그중 한 여성이 나를 부르더니, 창밖 거리에 늘어선 팝업 마켓을 가리켰다.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이런 시장은 관광객용”이라며 “진짜 시장을 보고 싶다면 산타 카탈리나로 가라”고 말했다. “그곳이 훨씬 더 좋아요.”

에르텐은 페이스트리 애호가였다. 그는 내게 엔사이마다(전통적으로 돼지의 비계로 속을 채우고 커피와 함께 먹는 코일 모양의 마요르카 전통 페이스트리)를 먹지 않고는 팔마를 방문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비건인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이 디저트에도 각 베이커리만의 개성이 담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차에서 내린 나는 한 가족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포네 드 라 소카’를 발견했다.오랫동안 잊혀졌던 마요르카 페이스트리와 빵을 지난 14년동안 부활시킨 곳이라고 했다. 이 곳에서는 다시 찾아낸 여러 종류의 마요르카 밀가루(베스티트, 제익사 등)로 ‘카니알론’(크림이 들어간 페이스트리), 로비올(양고기나 과일로 속을 채운 회전빵), 엔사이마다를 만들고 있었다.

동글게 말아진 스페인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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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르카 엔사이마다 및 기타 현지 페이스트리 전문점인 ‘포넷 드 라 소카’

이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달콤한 엔사이마다는 인근 마을 소예르에서 자란 과일로 속을 채운다. 가게에 있던 다른 주민들은 내게 소예르를 꼭 가보라고 했다. 손주들을 위해 엔사이마다를 가방 가득 채운 한 할머니는 소예르가 농업 유산, 특히 귀한 감귤류로 특히 유명하다고 했다. 그리고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여성은 마치 내 여행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거기까지 가려면 나무 기차를 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의 다음 일정은 그렇게 정해졌고, 다음 날 오후 난 빈티지 기차를 탔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낡은 나무 객실에 가득한 소예르 행 기차는 흡사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했다. 자갈이 깔린 팔마 시내를 기차가 벗어나자, 독일인과 영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술집의 풍경은 사라졌다. 대신 울창한 계곡과 험준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기차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라 데 트라문타나 산맥’을 천천히 오를 때 마요르카 “척추”의 진면목을 보면서, 나를 도심 밖으로 밀어준 현지인들에게 감사했다.

그날 아침에도 나는 팔마의 멋진 ‘라세우 대성당’에 매료되어 한 시간 넘게 머물렀다. 그런데 다시 소예르 인근 광장에 있는 고딕 양식의 ‘산트 바르토메우 교회’에 흠뻑 빠져 들었다. 나는 광장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우연히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마요르카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마을 외곽의 오렌지에서 풍겨오는 자욱한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아일랜드인이라는 말을 듣자, 뭔가를 떠올리려는 듯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잠시 후 그는 “스타트렉!”이라고 외쳤다. 알고 보니 아일랜드 출신 배우 콤 미니(또는 마일스 오브라이언)가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해변가를 달리는 1912년에 만들어진 빈티지 기차
Alamy
팔마와 소예르 사이를 달리는 1912년에 만들어진 빈티지 기차

팔마로 돌아온 나는 지역의 이야기를 찾아 계속 돌아다녔다. 도시의 유서 깊은 어촌 마을인 ‘엘 존케트’의 만에는 풍차가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보트 투어 이용객을 모집하던 한 여성은 곡물을 갈고 물을 퍼 올리는 데 사용되었던 이 풍차가 마요르카의 과거를 보여주는 랜드마크라며, 그 역사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는 3000여 개가 풍차가 보존되어 있었다. 그는 “풍차는 우리 역사의 상징”이라고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많은 마요르카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관광객들이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팔마의 구시가지를 거닐 때 셔츠를 입으라’는 것 외에 가장 많은 대답 중 하나는 ‘현지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4년 전 어머니와 함께 비건 레스토랑을 열었다는 안드레아 산티오아나는 “팔마 구시가지의 모든 장소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며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대해 물어보고 왜 그 지역을 선택했는지 물어볼 때 기분이 참 좋다”고 말했다. “마요르카의 석재는 놀랍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각 거리의 풍부한 역사는 매혹적입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휴대전화로 관광 명소 목록을 체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팔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우연히 비건 맛집을 찾아내겠다는 생각은 오직 허기가 밀려오기 전까지만 매력적이다. 배가 고파지면, 일반적인 스페인식 파타타스 브라바스(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감자 요리)로도 만족하게 된다. 물로 이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았다. 우연히 발견한 비건 식당 ‘카’엔엘라’에서 레몬 크림을 얹은 고단백 저지방 밀 요리를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야자수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여행객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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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대전화를 꺼둔 덕에 지역 주민들과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팔마와 소예르 여행을 통해 점점 더 산만해지는 세상에서 현재에 충실하는 것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여행할 때 온라인에 있는 추천 정보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현지인의 추천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여행의 핵심인 즉흥성과 연결의 즐거움을 재발견하게 됐다. 물론 스마트폰은 편리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따라 길을 걷거나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거나 새로운 동네를 헤매다가 길을 잃는 것과 같은 소박한 즐거움을 방해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가방속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고 싶은 충동을 이겨냈다. 노트를 꺼내어, 현지 주민들과 나눈 대화가 나를 이끌고 간 곳들을 기록했다. 이 추억은 훗날 내가 온라인에서 검색하고 마우스를 내려가며 얻는 그 어떤 정보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정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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