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인터뷰] 박정민 ② 어둠이 걷혔다

[K-인터뷰] 박정민 ② 어둠이 걷혔다

한류타임스 2023-07-26 11:04:50 신고

3줄요약

친한 기자들끼리 흔히 하는 얘기 중 하나가 “그 배우 어땠어?”다. 인터뷰를 많이 하는 영화 기자들은 어떤 배우가 인터뷰 때 말을 재밌게 하는지, 진심이 있는지, 아니면 가면을 쓰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 질문에 “사람 정말 좋다”며 꼭 인터뷰 해보길 추천하기도 하고, ‘재미 없다’고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기자들 사이에서 박정민은 인터뷰를 매우 잘하는 배우로 통했다. 기자의 질문을 깊게 생각해서 조리 있게 설명하는 능력이 그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다크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말도 잘하고 재밌고, 좋은데 어딘가 모르게 우울감도 같이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을 더 좋아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지난 24일 한류타임스와 만난 박정민의 얼굴에선 어딘가 어둠이 걷혀 있었다. 박정민을 맹목적으로 응원하는 침착맨 크루 ‘배도라지’ 덕분인지, 자신의 성과를 어느덧 내려놓게 된 여유와 관록 때문인지 몰라도, 그 얼굴에는 서서히 빛이 향하고 있었다. ‘동주’로 상업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약 8년, 그사이에 박정민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나이 들면서 변한 게 있어요. 저를 더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직업에 맞춰서 살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 직업이 나를 넘어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배우이기 때문에 이건 하지 말아야 해’, ‘배우라서 이건 안 좋아’라는 생각을 덜 하려고 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박정민은 그 어떤 스캔들이 없던 청결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기반은 누군가의 눈에 걸리지 않았던 운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런 행동을 철저히 관리해 온 삶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박정민은 속에 담아뒀던 많은 이야기를 꺼내놨다.

“계기는 없고,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 만나면서요. 제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는데, 이것 때문에 아까운 내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그렇더라고요. 더 재밌게 살 수도 있잖아요. 너무나 직업에 끼워서 살았어요. 그 버릇이 어디 안 가긴 하지만, 최대한 실수를 안 하려고 하죠. 그러다 보니까 연기할 때도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내려고 했어요. 소통도 더 잘 되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제 로직에서 어긋나면 어떻게든 이해하고 퍼즐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이게 제가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혼자 문제집 풀 듯 모범답안을 쓰려고 했는데, 그게 답이 아닐 때도 있어요. 그래서 준비는 하되 내 생각과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자고 살아가고 있죠”

일각에서는 박정민이 침착맨 방송에 너무 많이 출연하는 것에 걱정이 있었다. 이미지 소모가 크다는 것이다. 워낙 소탈한 스타일이다 보니, 2시간 넘게 대화를 이어가는 침착맨 방송에서 너무 많은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고 있는 중에도 배우로서 썩 좋지 않은 행보라는 걱정이 도사렸다. 

“그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게 침착맨이에요. 아마 제가 일을 못 하면 그 걱정이 커지겠죠. 일을 잘 하면 없어질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SNS도 안 해요. 걱정돼서요. 하고 싶은데 혹시 실수할까 봐 조심하는 거죠. 침착맨 방송 나가서 얘기하는 건, 저에게도 즐겁고 팬들도 좋아해요. 그래서 의미가 있어요. 서로 행복하게 해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행복한 게 이거고, 내가 행복한 것 때문에 직업에 큰 지장을 준다면 어쩌면 저는 이 직업도 포기할 수 있어요. 여전히 가장 행복한 일이 연기를 하는 거지만, 그래도 이 직업이 제 행복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침착맨과 박정민의 만남은 책 홍보에서 시작한다. 에세이 ‘요즘 사는 맛’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텐션이 낮고 삶에 미련이 없는 듯한 눈을 가졌으며, 게임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곧 절친이 된다.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주우재와 더불어 가장 많이 등장한 게스트일테다. 침착맨 크루 ‘배도라지’는 박정민을 ‘우리 원딜 박정민’을 줄여 우원박으로 부른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깊이 있게 응원한다. 이번 ‘밀수’ 언론시사회에도 크루들이 박정민을 응원하러 왔다.

“고맙죠. ‘동네 바보 동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영화배우였어’라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해요. 침착맨 나와서 제가 배우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면, 그건 제 문제일 거예요. 일을 잘하면 되죠. 뭐”

평생 연기만 할 것 같은 박정민의 입에서 직업을 포기한단 말은 사뭇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수백억원 규모의 작품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다소 얼토당토않은 말처럼도 들린다. 

“배우를 오랫동안 하는 게 꿈이죠. 하지만 배우는 자의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그땐 이 일을 못 하잖아요. 다른 직업을 하고 싶은 건 없고요. 혹시나 못하게 되면 찾아봐야죠”

의외긴 하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허심탄회한 사고에 이르게 됐는지. 박정민은 자신을 학대하며 살았다고 운을 뗐다. 

“30대 초반 많이 아팠어요. 마음도 아프고, 그렇게 심한 건 아니지만 마음고생을 했어요. 사실 저도 평소 ‘행복이 최고다’라는 말에 염세적으로 ‘잘 돼야 행복하지’라고 말했었는데, 이제는 저에게 가장 큰 이슈는 제가 편한 것이에요. 이 마음으로 일하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뭐 때문에 이렇게 저를 학대하고 살았나 싶어요. 정말 쫓기듯이 살았어요. 콤플렉스도 있었고, 일을 못 한다고도 생각했어요. 본성이 어디 안 가서 지금도 그런 점이 있는데, 노력하고 있죠. 사실 자책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까진 1등 못하면 자책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1등만 모인 학교라 안도감이 있었지만요. 이제는 조금 나아지려고요”

이제 겨우 30대 중후반인데 나이답지 않은 여유와 관록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러한 여유가 생긴 것도 학대라 할 만큼 강하게 자신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물일 수 있다. 피아니스트 수준의 피아노 실력을 키운 ‘그것만이 내 세상’도 그렇고, 래퍼를 맡은 ‘변산’ 때도 그렇고, 박정민은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 속임수를 부리지 않고 메소드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연기의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치고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온 듯하다. 이를 갈며 연기하던 시기를 지나 조금은 뒤로 빠져 자신을 챙기는 방향을 선택한 듯 보인다. 

“요즘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일단 롤이에요. 최고 티어가 전 시즌 브론즈3입니다. 이런 건 기사에 좋지 않을 테니까, 넘어가고요. 되게 냄새나는 말인데, 제가 영화를 준비하고 대하는 태도 자체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저를 행복으로 이끌어요.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괴롭히고 학대하는 걸 줄이다 보니까. 그런다고 나태해지지는 않아요. 현장이 워낙 전쟁 같아서요. 그럴 수 없어요. 또 하나는 저는 원래 사람을 안 만나요. 연락도 안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에게 에너지를 준다는 거에 놀라움을 느껴요. ‘배도라지’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중 하나죠. 선배님이나 형들, 감독님까지, 그 모든 분이 저를 끄집어내 줘요.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샘 컴퍼니, 풍월량 인스타그램

 

함상범 기자 kc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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