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설명하는, 한국에서 '머그샷'이 공개되지 않는 복잡한 사연

변호사가 설명하는, 한국에서 '머그샷'이 공개되지 않는 복잡한 사연

에스콰이어 2023-07-25 16:00:00 신고

3줄요약

머그샷(mugshot). 미국의 드라마나 해외 토픽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범죄 피의자의 입건 당시 얼굴이 나온 사진을 말한다. 최근 머그샷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때문이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포털에 ‘머그샷 공개’ 혹은 ‘범죄자 신상 공개’ 같은 단어를 검색해보면, 몇 년 단위로 이런 논쟁이 반복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은 왜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인가? 범인을 체포해서 이동하는 수사관의 얼굴은 버젓이 나오는데, 왜 범인은 마스크를 쓰고 수건을 뒤집어쓰고 있는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는 내용일 것이다.
논란이 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 4월 초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공론화됐다. 범인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던 가운데, 한 유튜버가 범인의 신상 정보를 자신의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공개의 근거는 ‘정의 구현’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 분담’이었다. 사람들은 해당 유튜버의 행동에 열광했고, 범인의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 법에 분노했다. 하지만 우리 법에도 범인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이에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이나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등의 정보가 공개된 바 있다. 그런데 왜 마찬가지로 극악무도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는 범인의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없었을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있다. 피의자와 피고인의 차이다. 피의자는 경찰이나 검사 등의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 의심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는 자를 말한다. 수사기관은 해당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면 공소제기라는 것을 하는데, 이는 쉽게 말하면 법원에 해당 범죄자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공소제기 이후 피의자는 피고인으로 신분이 바뀐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 법에는 ‘피의자’의 신상 정보를 특정한 조건하에 공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으나, ‘피고인’의 정보를 공개하는 규정은 없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범인은 이미 재판을 받고 있어 피의자가 아닌 피고인 신분이었다. 현행법상 신상 공개가 어려운 이유다.
이 사건만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의 강력 범죄일 경우, 피의자에서 피고인으로 빠르게 신분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명백한 범죄이기에 수사 기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피의자로서 수사받는 기간은 길지 않은 데 비해,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는 기간은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피의자로 있는 기간보다 피고인 신분이 된 기간이 월등히 긴 것이다. 이 때문에 초반 타이밍을 놓치면 범인의 신상 공개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머그샷 공개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해외의 경우 머그샷 공개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머그샷을 비롯한 범죄인의 신상 공개가 자유로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케바케’다. 당연히 나라마다 다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자유롭게’ ‘당연하게’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범죄인의 권리도 넓게 인정되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범죄인의 신상을 공개했을 때 얻는 공익, 보도의 자유와 범죄자의 인격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중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는지를 판단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비슷한 수준의 범죄라도 어떤 나라에서는 범죄인의 신상 공개가 당연시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공개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이다.
해외 뉴스에서 쉽게 범인의 머그샷과 신상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건, 해당 사건이 그만큼 그 나라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해외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해외라고 해서 자유롭게 범죄인의 신상이 공개되는 건 아니다.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두고 해외와 또 한 가지 비교되는 점은 ‘신분증 사진 공개’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나라 법에도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규정이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네 가지 요건을 갖추었을 때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어야 하고,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피의자의 재범 방지·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고,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공공에 이익이 된다면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법조문 자체에 신상 공개 방식에 대한 구체적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가능하다고 규정은 하고 있으나, 공개 방법이나 신상 공개가 되는 범죄자의 선정 방식에 대한 명확한 내용은 없다.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는 원칙 규정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둘러싸고 피의자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도 결국 공무원이다 보니 보수적인 접근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머그샷이 아닌 신분증 사진이 공개되는 데에는 이런 비화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의자에 한정된 신상 공개 규정이다. 피의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는 자’이고, 피고인은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여 ‘재판에 넘긴 자’이다. 아직 의심 단계에 있는 자의 신상 정보는 공개할 수 있지만, 범죄가 확실하다고 판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 한국처럼 무죄율이 극히 낮은 나라에서 이런 상황은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여기에는 또 하나의 큰 오류가 있다. 만약 피의자 단계에서 머그샷이나 신상이 공개되었다가 이후 그 자가 피고인이 되면 이미 공개된 신상 정보는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직 여기까지 논의의 단계가 오지도 않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임은 분명하다.
피고인의 머그샷도 공익상 필요성이 높은 경우에는 공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말이다. 다만 접근 방향은 신중해야 한다. 일단 공소가 제기되면 피의자는 피고인으로 전환되고 법정에 서게 된다. 형사 법정에서 피고인은 수사기관인 검사와 동등한 관계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상황에서 수사기관의 일방적 결정으로 상대 재판 당사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게 될 수 있다. 신상 공개 방법과 관련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제정해 공개 절차와 요건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신상 공개 방법은 공익뿐만 아니라 문제가 될 수 있는 피의자 기본권에서도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당정은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범죄자 범위를 종전 살인·강도·강간·강제추행 등에서 테러, 마약, 아동 대상 성범죄, 묻지 마 폭력 등까지 확대하는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또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얼굴을 촬영해 공개할 수 있는 규정도 특별법에 넣겠다고 했다. 비슷한 관련 법안은 잇따라 발의되었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늘 그렇듯, 국회의원은 관련 법령을 발의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정말 충분한 고민을 해서 법령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몇 년째 반복된 논쟁이었던 만큼,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 기회에 발전적인 법률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공익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대로 된 절차가 생길 수 있도록 말이다.

고윤기는 변호사다. 유튜브 채널 ‘법률꿀팁’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EDITOR 김현유 WRITER 고윤기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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