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힙합 발전을 이끌어 온 더콰이엇과 ZEEBRA가 만났다

한국과 일본의 힙합 발전을 이끌어 온 더콰이엇과 ZEEBRA가 만났다

에스콰이어 2023-05-30 18:00:00 신고

3줄요약

더콰이엇은 워낙 한국 힙합에서 영향력이 큰 아티스트지만, ZEEBRA는 일본에서 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에스콰이어〉 독자 중에 낯선 분도 있을 듯하다. ZEEBRA에 대해 더콰이엇이 한 단어로 설명해줄 수 있나?
더콰이엇 얼마 전, 힙합 칼럼니스트 김봉현 씨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문구로 말씀드리겠다. ‘아시아 최초의 랩 스타.’ 이만큼 정확하고 또 강렬한 표현이 없다.
실제 ZEEBRA는 1990년대부터 일본에 힙합 문화를 알리기 위해 큰 노력을 해온, 일본의 ‘힙합 대부’다. 스스로를 ‘래퍼’가 아닌 ‘힙합 액티비스트(Hiphop Activist)’라고 칭하던데, 이유가 있나?
ZEEBRA 당연히 음악 부문에서는 ‘래퍼’다. 그러나 ‘힙합 액티비스트’는 좀 더 넓은 의미다. 처음 힙합을 하게 됐을 때부터 힙합이라는 문화를 통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또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다. 그런 생각을 담아 랩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래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액티비스트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 사이 둘 다 소식이 뜸했다. 뭘 하면서 지냈나?
더콰이엇 바빴다.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한동안 대표로 있는 데이토나 엔터테인먼트와 엠비션 뮤직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다. 덕분에 제작 및 운영에 집중해야 했다. 그 와중에 약 10개월 전, 데이토나 레코즈라는 레코드 숍도 오픈했다. 새로운 사업이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더라. 요즘은 데이토나 레코즈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ZEEBRA 솔로 앨범을 마지막으로 발매한 게 2014년이다. 간간이 피처링 작업은 했지만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지는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레이블을 설립하고, 프로듀서로서 10대 래퍼들을 서포트하며 여러 가지 이벤트를 진행했다.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개인 미디어를 통해 인터넷 힙합 라디오 방송도 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다시 플레이어로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슬슬 음악 활동에도 집중하고 있다.
아무래도 딸 리마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싱한 걸그룹 ‘니쥬(NiZiu)’의 멤버이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한국에서 ‘친한파 연예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ZEEBRA 몰랐다.(웃음) 2001년, 아티스트로서 첫 해외 공연을 진행한 곳이 한국이었기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후에도 타이거 JK 그리고 윤미래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외국인 친구들이 꽤 있지만, 그중 한국인 친구가 가장 많다. 아무래도 가깝기도 하고, 서로 많이 닮았기 때문에 친근하다.
두 분 모두 ‘2023 대구 힙합 페스티벌’ 무대에 참여했다. 팬데믹 이후 이렇게 큰 축제는 사실상 처음이었는데, 오랜만에 현장에서 느낀 열기는 특별했을 것 같다.
더콰이엇 ‘대구 힙합 페스티벌’은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힙합 축제다. 나 역시 긴 시간 참여했었는데, 한동안은 이전 같지 않았다. 이번 축제에는 다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어 정말 반갑고 뿌듯했다.
ZEEBRA 일본도 지난해 말부터야 이런 이벤트를 다시 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팬데믹이 닥친 뒤, 막 대학생이 된 친구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가장 놀아야 하는 나이인데, 이런 축제나 파티 경험을 할 수 없으니 가여웠다. 이번에 대구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이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다. 일본도 한국도, 모두가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더콰이엇은 얼마 전 오랜만에 일본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더콰이엇 4년 만이었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타워 레코즈의 4층이 ‘K팝 전용 층’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한국 음악이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K팝이 부상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한국 힙합이 K팝의 성장만큼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지는 않다.
더콰이엇 한국에서 메인스트림인 장르가 아이돌 음악인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잦아들긴 했으나,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힙합이 ‘한국 사회’에서 사랑받는 장르 및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힙합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정말 크게 느꼈다. 힙합 장르에는 아이돌 음악이 갖는 보편성이 부족하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그렇기에 과거 나는 한국에서 힙합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결코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굉장한 주류 장르로 성장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봤는데, 정말 여러 가지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쇼미더머니〉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TV에 나온다고 그 장르가 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한국 사회와 한국인,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힙합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문화는 대중의 선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한국 힙합은 한국에서 살아남았다. 대중이 힙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ZEEBRA 빌보드 차트를 보면 힙합이 거의 점령하고 있다. 힙합은 전 세계적으로 메인 장르인 것이다. 런던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은 록이 아닌 힙합이었다고 한다. 힙합은 이제 시대의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많은 음악에 힙합 요소가 들어갈 것이라 본다. 개인적으로 듣기에 K팝에는 힙합 요소가 많다. K팝이 부상해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데에는 K팝에 담긴 힙합의 에센셜이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본 J팝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부럽다. 그러나 앞으로 5년, 10년이 흐르면 어떤 음악이든 힙합 요소를 담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힙합이나 일본 음악이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으면 좋겠다.
힙합이 탄생한 지 50년인데, 그 50년 동안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 장르가 됐다니 놀랍다. 미국에서 시작해 50년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힙합은 지역별 특색을 살려 발전해왔는데, 아시아에 들어온 힙합의 특성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나?
ZEEBRA 그 지역의 문화에 따라 힙합 문화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옛날부터 생각한 일본과 한국 힙합의 공통점이라면, 총기에 대한 가사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총을 쓸 수 있으니 당연히 총에 대한 얘기가 많다. 일본과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과 한국에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총에 대한 얘기는 없을지언정, 범죄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즉 언어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국가별 특징이 따로 있진 않다고 본다. 힙합은 그저 힙합이니까, 차이점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더콰이엇 비슷한 생각이다. 특성이 이것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 문화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로컬라이징이 필수 요소다. 물 건너온 문화지만, 각자의 땅에 자리를 잡으려면 자체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변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발견이 일어나고, 발전이 생긴다. 한국과 일본은 비교적 그 과정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빨리 겪었다고 본다. 일본에 들어온 힙합이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체적인 힙합 문화를 만들었을 것이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약간의 시차가 있었다. 요즘은 워낙 글로벌 시대이다 보니 아시아의 모든 국가에서 힙합 음악과 문화가 동시에 부흥하고 있다. 각각의 문화와 언어에 어울리는 것을 찾는 실험을 지속하다 보면 고유한 특성을 가진 힙합 문화가 등장할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비슷한 어순과 단어를 공유하는 언어다. 영어와는 완전히 다르다. 양국의 아티스트들도 여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 래퍼 에이위치는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어는 ‘나’나 ‘너’를 잘 말할 수 없는 문법이라 이 부분을 의식하며 가사를 전달하려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더콰이엇 한국 힙합 초창기부터 많이 거론된 이야기다. 프로토타입은 영어에 있는데, 한국어를 써서 가사와 라임을 살려야 했으니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거기에 도전한 래퍼들이 있고, 이를 팬들이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언어가 확장되는 과정을 힙합 신 전체가 겪어왔다. 기나긴 역사였다.(웃음) 결과적으로 보면 많은 부분을 극복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우리가 해냈다’고 끝낼 이야기는 아니다. 음악은 계속 변하고, 우리가 쓰고 있는 말조차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ZEEBRA 나 같은 경우, 처음에는 영어로 랩을 했다. 1992년도부터 일본어 랩을 시작했는데, 영어 단어를 쓰는 타이밍에 일본어를 넣다 보면 영어만으로 랩을 할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는 문법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문법대로 얘기했을 때만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문법을 바꿔도 의미는 전달된다. 영어와 일본어의 문법을 재미있게 바꾸는 방식으로 랩을 할 수 있으니, 언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콰이엇은 문학적인 명가사로도 유명하지만, 이와 대비되는 ‘병맛 가사’에도 상당한 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화초처럼 닥쳐’ 또는 ‘네가 가진 돈은 고작 티머니’ 같은 가사들. 아까 말한, 한국어를 힙합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던 기나긴 역사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인가?
더콰이엇 랩을 할 때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힙합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가사가 리스너의 기억에 남느냐는 것이다. 이른바 펀치라인이다. 랩이라는 게 그저 흘러가듯이 듣고 말 수도 있다. 심심한 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이사이 강렬한 구절이 존재할 때 그 랩은 생명력을 얻는다. 또 해당 곡과 래퍼의 커리어는 굉장히 큰 힘을 가진다. 이를 위해 내 나름의 방식으로 시도를 해온 것이다. 특히 돈을 자랑하는 가사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여러 도전을 해봤다. 남의 자랑이라는 건 유쾌하게 들리기가 어렵지 않나.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이 나의 돈자랑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사실 문제의 ‘병맛 가사’ 자체는 깊게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었다. 본능에 가까웠다.(웃음)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한국어 가사를 힙합에 적용하는 효과적인 솔루션 중 하나였지 않았나 싶다.
일본에도 이런 식의 ‘병맛 가사’가 있나?
ZEEBRA ‘병맛 가사’는 아닌 것 같지만, 언어유희를 활용한 가사는 당연히 존재한다. 아까 말했듯 문법을 바꾸거나 라임을 맞추기도 하고, 그 시대에 맞는 슬랭을 써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또 일본어는 줄임말 표현도 많기 때문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병맛 가사’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가사는 1998년에 공개한 곡 ‘I′m still No.1’에 실려 있다. ‘민나 데키덴(皆適電)’이라는 가사인데, 당시 친구들이 ‘민나 데키토니 뎅와시테(皆適当に電話して, 모두 아무 때나 연락해)’를 줄여 은어처럼 쓰던 표현을 랩에 담은 것이다. 아직까지도 트위터에 ‘대체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웃음) 개인적으로는 가사를 다 알아야 하나 싶다. 이 가사처럼 궁금증을 자아내는 게 더 재미있을 때도 있지 않나.
이번에 ZEEBRA가 ‘2023 대구 힙합페스티벌’에 온 것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 한일 래퍼들 사이 교류가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콰이엇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쩌면 서로가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려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힙합 문화가 먼저 들어온 건 일본이었다. 한국에는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들어왔지만 빠르게 발전했다. 각자의 속도로 성장해오던 한국 힙합과 일본 힙합이 딱 만나게 된 시점이 지금이 아닐까 싶다.
ZEEBRA 옛날에는 한국 래퍼들과 일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 거리감이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다음 세대는 훨씬 더 서로를 가깝게 느낄 것이다.
특히 ZEEBRA는 20년 전부터 주석 등 한국 래퍼들과 교류하고 협업해온 입장에서 감회가 새롭겠다.
ZEEBRA 정말 그렇다. 옛날에는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이제는 환경이 조성돼 젊은 래퍼들이 알아서 자기들끼리 잘 만나고 작업하더라. 최근 일본 래퍼 제이피더와비의 곡에 한국 래퍼 식케이가 피처링을 했는데, 그걸 지켜보며 굉장히 흐뭇했다.
다만 한일 관계에는 아직 여러 문제가 있다. 양국 아티스트들의 협업에 가끔 부정적 여론이 일기도 한다.
더콰이엇 물론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힙합은 예술이고 문화이기에, 그런 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아니, 자유로워야 한다. 힙합이라는 거대한 공통분모 아래서는 국경을 뛰어넘어 교류할 수 있다. 힙합 뮤지션으로서, 교류와 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볼거리 그리고 그 안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ZEEBRA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그러나 힙합이라는 문화를 무대 삼아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는 있지 않겠나. 물론 비판도 인정한다. 표현의 자유 역시 힙합 문화의 일종이니까. 그러나 정치나 역사가 아닌, 교류와 협업 자체에 대한 비판은 이해하기 어렵다. 힙합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아티스트들의 만남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래퍼 토지는 “이전 세대 래퍼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미국을 바라봤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과 문화를 믿는다”며 Z세대다운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앞으로 힙합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ZEEBRA 일본의 경우, 선배들이 모범을 보인 케이스가 많다. 다음 세대도 이를 따라가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본다.(웃음) 음악적으로 다음 세대는 확실히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일본 힙합, 한국 힙합, 미국 힙합을 한 번에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그런 선은 모호해지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가 강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더콰이엇 앞날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오래전부터 힙합을 해온 입장에서는 그들을 위한 좋은 전례를 남겨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 예를 들어, 더콰이엇과 ZEEBRA가 만나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고 자란 세대에게는 해외의 래퍼를 만나는 게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아닌가.(웃음) 나는 국가와 언어, 인종 등 여러 면에서 장벽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 모두가 어디서든 누구와도 음악과 문화를 통해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아마 다음 세대는 경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발상과 그에 따른 놀라운 결과물을 내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좋은 전례를 위해 두 분의 협업을 기대해봐도 되나?
ZEEBRA 물론이다. 나 역시 기다리고 있다.
더콰이엇 곧 보여드릴 예정이다. 기대하셔도 좋다.


EDITOR 김현유 PHOTOGRAPHER 배준선 LOCATION 라이즈호텔 HAIR&MAKEUP 권호숙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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