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미국에서 격노한 삼성 이 회장, 극단적인 선택 한 충격적인 이유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미국에서 격노한 삼성 이 회장, 극단적인 선택 한 충격적인 이유

케이데일리 2023-02-02 10:58:05 신고

3줄요약
삼성그룹

삼성그룹에 3대 총수인 이재용 회장의 실적이 나쁘지 않은 가운데 故 이건희 회장에 극단적이었던 경영 방식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신경영 선언했다

故 이건희 회장

故 이건희 회장은 1942년생으로 삼성전자 회장 겸 삼성그룹 총수였습니다.

故 이병철 회장

아버지인 삼성그룹의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이 삼성을 한국 대표 기업으로 키웠다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한국을 넘어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키운 최고경영자였습니다.

지난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사장단을 소집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한 말입니다.

당시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진단이었습니다.

故 이건희 회장

이때까지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처럼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첫 방문지였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스트바이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삼성 TV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때마침 이 회장은 사내 방송국이 제작한 비디오를 보고 격노하게 됩니다.

故 이건희 회장

이 화장은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모두 녹음하시오. 이게 그토록 강조했던 질 경영의 결과란 말이요? 당장 사장과 임원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시오"라고 지시했습니다.

1993년 6월 7일 마침내 이건희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 회장의 불호령에 삼성의 주요 CEO와 고위 임원들이 프랑크푸르트에 모였고 이 회장은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것을 보고 격노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며 선언했습니다.

이에 이 회장은 여러 선진국들을 둘러본 결과,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회장 자신부터 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한 삼성도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고, 마침내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라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꺼내 들었습니다.

글로벌을 향해 180도 변한 삼성, 화형식까지

삼성그룹

삼성의 초일류를 향한 출발은 불량 추방에서 시작됐습니다.

삼성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량으로 인해 질적인 면에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고, 선진시장에서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의 현주소에 대해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고, 3만 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라고 질타하며, 품질에 대한 임직원들의 기본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품질을 최우선으로 불량을 뿌리 뽑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이 잇달아 취해졌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라인스톱 제도'였습니다.

삼성그룹

라인스톱제란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혁신적인 제도였습니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이었지만, 효과는 컸습니다.

실제로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삼성그룹

라인스톱제와 함께 질 위주로 가기 위한 삼성의 뼈를 깎는 의지를 보여 준 사례가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입니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삼성그룹

이에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 적자 내고 고객으로부터 인심 잃고 악평을 받으면서 이런 사업을 왜 하는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라고 질타했습니다.

1995년 1월 이건희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 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습니다.

이 회장은 이렇게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고, 15만 대(150여 억 원어치)의 제품을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시켰습니다.

삼성 측은 "이러한 가시적 조치와 노력을 통해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이 삼성인들 가슴속에 자리를 잡아갔고, 현장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부실 요인을 찾아 고치는 풍토가 그룹 전체에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을 모티브 한 진양철 회장, 자동차 광

재벌집 막내아들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자동차 시장이 포화 상태였습니다.

당시 자동차를 만들던 그룹은 크게 현대, 기아, 대우, 쌍용 4 기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삼성까지 들어온다고 하자 기업들 입장에선 반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건희가 선택한 것은 정관계 로비였습니다.

삼성 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부산 민심을 이용해 정부를 압박했고 부산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도 같았던 김영삼 대통령은 결국 이건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삼성그룹

공장 조성에 평당 8~10만 원 정도를 사용한 현대 자동차와는 달리 삼성은 부산의 뻘밭을 공단으로 조성해야 했기 때문에 평당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사용하며 막대한 투자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닛산과 기술 협약을 맺은 삼성은 'SM5'를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삼성자동차

SM5는 'Samsung Motors'의 약자이며 5는 중형차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당시 SM5는 기술력이 우수했고 잔고장도 잘 나 지지 않아 평판이 매우 좋았습니다. 

동아일보

이건희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평소 타고 다니던 벤츠 대신 SM5를 타고 갔을 정도로 SM5에 큰 애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하필 IMF가 터졌고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었기 때문에 자동차 판매는 당연히 저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삼성은 자동차 한 대씩 팔 때마다 150만 원의 손실이 저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삼성자동차 출범 3년 만에 무려 4조 원이라는 부채가 쌓이게 됩니다.

정부 또한 수익이 나지 않는 계열사들을 정리하라며 압박을 가했고 결국 이건희 회장은 삼성 자동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사재를 모두 털어 부채를 탕감하고 매각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르노가 삼성 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면서 현재의 '르노 삼성자동차'로 바뀌게 됐습니다.

현재는 현대와 기아 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을 거의 독점했다고 봐도 무관합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

이건희 회장은 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무선전화기 시장 점유율은 1년 뒤 시장 점유율 19%를 달성하며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후 현재 삼성은 글로벌 1위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IT 전자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됐습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지속된 건강 악화 (급성 심근경색)로 인해 2014년부터 6년간의 투병 끝에 2020년 향년 78세로 별세했습니다.

이 회장의 사망 직전 보유 재산은 약 23조 7,100억 원이었으며 세계 부자 순위 66위에 올랐던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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