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밀지 마세요" 한마디에 응답한 시민들... 지옥철이 변했다

[르포] "밀지 마세요" 한마디에 응답한 시민들... 지옥철이 변했다

머니S 2022-11-15 11:52:00 신고

3줄요약
"매일 타던 지하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순식간에 변했어요."

매일 똑같은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풍경은 이른바 '지옥철'(인파가 많은 지하철)로 불릴 정도로 혼잡하다. 곳곳에서 짜증과 불만이 터져 나오는 지옥철이 갑작스레 달라졌다. 최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안전을 향한 시민의 의지와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는 믿을 수 없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넘어지면서 압사 참사가 발생해 158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해당 참사의 공식 애도기간은 지난 5일 끝났지만 시민들은 변화한 모습을 보였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일상적인 장소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작은 움직임이 등장한 것이다. 이에 머니S가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인파가 몰리는 서울 지하철역을 찾았다.


"밀지 마세요" "잠깐 나갈게요"… 한마디 외침에 '시선 집중'


출근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는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질서를 지키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스크린도어 앞을 비롯해 에스컬레이터·계단 등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줄을 서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급히 뛰어가거나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사람이 없으니 언성을 높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소모씨(남·31)는 "(이태원 참사 이전에는) 압사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공포가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인파가 의식돼 지하철에 탄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하차할 생각이었으나 참사 직후부터 사람들이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거리를 두더라"라고 설명했다.

소씨 뒤에 서 있던 한모씨(여·29) 역시 "한 마디 외침에 모든 사람이 반응한다"며 "전에는 '밀지 마세요' '잠시만 내릴게요'라고 말해도 무관심했는데 요즘에는 '죄송합니다' '네'라고 답하며 배려해준다"고 전했다. 이어 "시선이 쏠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의 외침에 다수가 반응하니 감사한 마음"이라고 부연했다.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만난 최모씨(남·22)는 "참사 이전에는 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6시쯤 지하철을 타면 퇴근 시간이랑 겹쳐 망부석마냥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왔다"며 "지하철이 아니라 사람을 타고 가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참사 이후에는 사람들이 서로 조심하면서 탑승하니 답답하고 두려웠던 퇴근길에서 벗어났다"며 "영화나 유튜브를 보는 등 여유를 즐기고 있다"고 기뻐했다.


"다음 열차 이용해주세요"… 증가한 안전요원, 뜻밖의 장소까지


이때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다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큰 목소리를 내는 질서요원이다. 이들은 스크린도어 앞을 비롯해 인파가 몰리는 환승구역 등 다양한 위치에서 지휘봉을 번쩍 들고 "다음 열차 이용해주세요" "여기까지만 탑승할게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동해주세요" 등의 말을 반복하며 이동하는 시민들을 주시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도 질서요원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지하철 환승구역이 아닌 통로와 개찰구 앞이다. 1·3·5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 역시 마찬가지다. 3호선에서 5호선으로 이동하는 통로에는 형광 조끼를 입은 질서요원이 지휘봉을 든 채 서 있었다. 계속해서 계단을 주시하던 황모씨(남·24)는 "한 번에 많은 사람이 계단을 이용하면 위험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인파의 위험을 느낀 뒤 확실히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내가 하는 통제나 안내가 다수의 인원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파만 관리해도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며 "이는 일시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나 변화가 아닌 반드시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소중해"… 시민의식도 성장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대중교통 이용 후기가 다수 게재됐다.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A씨는 "사람들이 밀지 않는 게 바로 느껴졌다"며 "예전에는 휴대폰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밀고 탑승했으나 요즘에는 무작정 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누가 얘기한 것도 아닌데 우리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며 "지옥철에서 탈출해 해방된 기분"이라고 밝혔다.

자성의 태도를 가지는 누리꾼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관련 뉴스를 최대한 챙겨봤다는 B씨는 "결국 나를 지켜주는 것은 바로 나"라며 개인의 주의를 촉구했다. 그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내가 소중한 만큼 우리 모두 소중하다는 것"이라며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해서 무관심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겨우 내가 아니었을 뿐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온다"고 여운을 남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시민들의 달라진 행동과 인식은 혼잡한 지하철을 안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서울 시내에서도 일방통행이 제대로 이뤄지며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민 모두가 큰 충격을 받은 참사였지만 비싼 수업료를 내고 '안전'을 우선시하는 질서의식을 갖게 됐다. 작은 배려와 경청은 우리 사회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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