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일주일 앞두고 찢고, 불붙이고, 없애고…선거벽보·현수막 훼손 잇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훼손하면 최대 2년 징역…징역형 선고 사례도
전문가들 "도 넘은 정치혐오서 기인…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피아식별식 응징 심리"
20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선거 벽보와 현수막이 훼손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선거 후보자의 벽보 얼굴 부위를 찢거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벽보를 아예 없애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한 단순한 반감을 넘어 정치혐오 정서에서 기인하고 있다면서,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피아(彼我)식별식 응징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서울 관악구 봉천동 도로 주변에 붙어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벽보가 세로로 약 50㎝ 찢어진 것을 발견됐다. 지난 20일에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벽보가 찢어졌고, 18일에는 서울 강북구에서 이 후보의 선거 현수막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훼손한 5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윤 후보의 벽보는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최근 제주시 삼도동에 걸려있던 대선후보 벽보 중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벽보만 사라져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일렬로 걸려있던 벽보 중 윤 후보 벽보만 사라져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누군가가 고의로 절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일엔 광주에서 윤 후보만 빠진 벽보가 발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 벽보·현수막을 정당한 사유 없이 훼손하거나 철거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로 선거 벽보를 훼손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특정 정당 후보자 선거 벽보 10장을 9번에 걸쳐 훼손한 60대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분명한 범죄인데도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이유는 도를 넘고 있는 정치혐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반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혐오의 정서까지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 말고 다른 후보자들은 소위 하나의 '적'으로 구분하게 돼 나의 적에 대해 상당한 응징과 불이익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선거벽보를 훼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민주적 규범성이 점점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며 "그 원인은 정치인들이 상대방에 대한 약점을 계속 부각시키면서 부추기고, 실체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엉뚱하게 덮어씌우는 모습을 지지자들이 보고 모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법에 적시할 정도로 선거 벽보를 훼손한 사례는 과거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번에 유독 주목을 끄는 것 같다"며 "벽보를 훼손하면 구속될 수도 있는데도 그만큼 정치인을 혐오스러워 하는 것이고, 그 표현을 공개적으로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행위로라도 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벽보를 훼손하는 심리적인 이유는 불안과 우월감이 결합했기 때문"이라며 "불안을 회피하는 방법 중 하나로 내 선택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외부 집단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 정당의 후보를 비방하거나 선거 벽보 또는 현수막을 찢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찢겨진 선거 벽보가 조롱의 의미까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롱 그 자체만 보면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다. 조롱을 하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게 된다. 다만 공격하는 측면에서는 통렬한 쾌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비뚤어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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