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을 대거 기용하면서 일각에서 '검찰 편중'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인선이 사회 통합 과제를 해결하고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이로써 윤 정부 들어 정부부처 차관급·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인사 중 검찰 출신은 15명이 됐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등은 이미 검사보단 정치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정치 신인이다.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여당이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나섰으나, 윤 대통령과 엇박자를 타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더 이상 행정부처 중요 직위, 차관급 이상 자리에 검사 출신을 기용할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같은날 오전 용산 청사에 출근하면서 권 원내대표의 말처럼 검사 출신을 더 이상 기용하지 않겠다고 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법률가들이 가야 할 그런 자리들, 과거 정권에서도 전례에 따라 법률가들이 갈만한 자리에 대해서만 배치했고, 필요하면 또 해야죠"라고 답했다.
'검찰 편중'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치주의 대통령'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서 '법치주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법치주의는 사람 대신 법과 원칙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민주주의'와 더불어 여러 번 언급해왔다.
그는 지난해 정계 도전을 위해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하며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는 검찰 개혁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6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는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며 "그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비평가들은 '법치'가 반드시 좋은 '정치'를 담보하진 않는다고 지적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BBC에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으로서 검찰 엘리트주의, 쉽게 말하면 '검찰이 최고'라는 생각에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법치의 영역보다 더 원대하다"며 "정치를 법대로 움직이는 데 집중한다면, 정치의 풍부한 상상력을 저해함으로써 사회 통합이나 약자 지원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미 국회도 법률가 출신이 약 20%를 차지하고 있어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며 "행정부나 국회는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데, 특정 직종 사람들이 몰려 있다면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정권 실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수사로 '강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중 국정감사장에서 검찰 윗선의 외압을 폭로해 좌천되기도 했다. 이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면서 수사팀장으로 복귀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윤 대통령은 과거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정치권 눈치 안 보고, 공정한 기준으로 사회 구석구석 만연한 특권과 반칙을 바로 바로잡으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뿌리 뽑고 기성 정치권을 개혁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외부 인사를 수혈하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치 입문 1년 만에 대통령이 된 만큼 인재풀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함께 일을 해본 사람들 중에서 똑똑한 사람은 검찰 출신이었을 것"이라며 "'능력만 보고 뽑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한계
검찰 출신 인사에 대한 불신은 검찰 조직에 대한 낮은 신뢰와도 연관돼 있다. 봐주기 수사, 전관예우, 선택적 수사 등 다양한 원인이 손꼽힌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형사사법기관(법원, 검찰, 경찰) 중 신뢰도와 공정성 모두 6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검찰 조직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신 교수는 "검찰은 상명하복 조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며 "정부의 가장 바람직한 의사결정 과정은 대등한 관계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검찰 출신이 많다면)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대통령이 자신이 소속됐었던 분야의 사람들을 대거 기용하는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8일 윤 대통령은 검찰 편중 인사 지적에 대해 "과거에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들이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인권·노동 변호사로 민변 소속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정치적 다양성' 고려해야
지역과 세대, 성별 등을 아우르는 '사회 통합'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당선 확정 후 "지역, 진영, 계층 이런 것을 따질 것 없이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에 계시든지 똑같은 이 나라 국민이고 모두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며 "국민 통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국정 운영에 보다 폭넓은 다양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박 평론가는 "법관, 교수, 노동자, 여성 등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인재풀이 있다"며 "각 부문을 균형있게 골고루 반영해 국정 운영 철학을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8년 BBC가 '글로벌서베이: 분열된 세상'을 통해 세계 27개국 1만9428명(16~64세)을 대상으로 각국 사람들이 사회적 다양성을 얼마나 잘 포용하는지 조사한 결과, 한국은 헝가리 다음으로 낮은 26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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