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얼이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에 반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나얼이라는 이름 두 글자 앞에 붙일 수 있는 말은 노래뿐이다.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오로지 음악만으로 종적을 남겨왔기 때문이다. 그 흔한 TV 출연도 없이 그의 노래는 그 자체의 힘으로 언제나 대중의 환영을 받았다. 그의 음악성 자체가 스타의 조건이었다.
그가 속했던 브라운 아이즈의 1집 타이틀곡 '벌써 일년'이 발매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것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강산이 두 번도 변할 시간이었지만, 나얼의 위치와 평가는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을 볼 기회도 많지 않았으니 외모 또한 20년 전 그곳에 머물러 있다. 변함없이 사랑받는 가수라는 건, 변함없이 좋은 노래를 들려줬다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세월에 퇴색되지 않는 목소리와 감성을 지닌 아티스트다.
나얼은 작사, 작곡, 엔지니어링, 레코딩까지 해내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브라운 아이드와 브라운 아이즈 소울의 노래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해 나얼은 아이유의 부탁으로 자신이 작곡한 '봄 안녕 봄'이라는 곡을 작곡료도 받지 않고 그에게 선물했다. 아이유는 나얼이 들려준 가이드 버전을 들으며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 방송에서 고백했다. 이유는 역시나 너무 잘 불러서다. 아이유도 노래 잘 부르기로 정평난 가수이지만, 나얼의 기준점을 따라잡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한번에 녹음한 가이드로 동료 아티스트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나얼이다.
이러한 일화나 그에 대한 찬사는 늘 자신이 아닌 남의 입을 통해 공개돼왔다.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다면 그는 그 분야의 최고가 됐을지도 모른다. 배우계의 신비주의 대표가 원빈이라면 가수계는 단연코 나얼이다. 그랬던 그가 오랜 적막을 스스로 깨고 나왔다. 나얼 'Ballad Pop City'라는 프로젝트를 선물처럼 공개하며 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업물은 2년 만이다. 나얼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대적인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건 우연한 기회에 별똥별을 보는 것처럼 벅찬 순간과의 맞닥뜨림이다.
나얼 'Ballad Pop City'는 나얼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아, 우리나라 말이 잘 어울리고 멜로디가 살아있는 발라드를 제작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나얼은 첫 번째 주제로 이별을 선정, 1990년대 발라드 스타일에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해당 프로젝트의 가창자는 성시경과 태연 그리고 나얼이다.
지난 27일 공개된 나얼 'Ballad Pop City'의 첫 곡 성시경의 '아픈 나를'은 90년대 EP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만큼 옛 감성을 추억하게 만든다. 90년대 노래들처럼 멜로디로 채운 전주만 18초다. 전주의 EP와 기타 스트링이 봄비처럼 잔잔하게 내리는 사이로 어느 순간 성시경의 달큼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이를 휘어감는다. 갓 내린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붓는 것처럼 고소한 풍미가 배가되는 순간이다.
성시경의 목소리는 나얼의 디렉팅에 의해 새로운 가창을 들려준다. 바이브레이션은 더 섬세하고, 음을 적시는 감성은 밀도가 더 높다. 그간 성시경이 자신의 곡에서 부드럽고 여유롭게 음을 뻗어왔다면, 이번 곡에서만큼은 동적이고 세밀하게 음을 뻗어낸다. 마치 브라운 아이즈 소울 다섯 번째 멤버처럼 나얼 특유의 감성과 단단하게 교착한다. 성시경의 완벽한 나얼화는 애절하면서도 담담한 이별 감성을 굳건하게 붙든다.
발라드 명장들이 특별한 프로젝트에서 서로의 감성을 나눈다는 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90년대를 살아보지 않은 Z세대의 마음도 너끈하게 적실 만큼의 아름다운 음율이다. 없던 추억도 추억하게 만드는 나얼 'Ballad Pop City'. 벌써부터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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