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게임에 대한 대중적 시선은 중독성, 폭력성, 사회성 결여 등 줄곧 부정적인 키워드에 집중돼 있었다. 나라를 막론하고 부모세대 대다수는 자녀와 게임의 접촉을 철저하게 막았다. 그러나 최근 게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 스포츠, 음악감상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취미로 여겨지고 있다. 덕분에 'e스포츠'라는 새로운 장르까지 탄생했다. 동시에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소위 '공룡 게임사'로 불리는 글로벌 기업까지 등장했다.
K-게임 개척자 김정주 넥슨 창업주…LOL 만든 LA 한인타운 PC방 단골 친구들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국내 1위 게임회사는 '넥슨코리아'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8471억원에 달했다. 넥슨코리아는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크레이지 아케이드 ▲FC 온라인 등 다수의 인기 게임을 보유하고 있다. 넥슨코리아를 일군 인물은 'K-게임'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故) 김정주 회장이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 김 회장은 서울 광성고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사, 카이스트 전산학과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그의 부친인 판사 출신 변호사 김교창 씨와 모친 이연자 씨도 모두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들이다. 고 김 회장은 대학 시절부터 게임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본인이 직접 게임을 즐기면서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거의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비전을 현실화시키고자 직접 게임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1994년 카이스트 박사 과정을 함께 이수했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이사와 함께 넥슨코리아를 창업한 후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선보였다. 바람의 나라는 국내 게이머들 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후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 전 국민이 즐기는 유명 게임들을 연이어 출시했다.
출시한 게임들의 높은 인기 덕에 넥슨코리아는 국내 게임업계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주역'으로 인정받은 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경영 기간 내내 우울증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고 김 회장은 2022년 54세의 나이에 미국 하와이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세상을 떠났다.
넥슨코리아는 타 게임회사에 비해 지배구조가 다소 복잡한 편이다. 2002년 고 김 회장이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일본법인인 넥슨재팬을 설립한 것이 시발점이다. 처음엔 넥슨재팬은 일본 지사 역할을 하고 넥슨 한국법인이 모회사 지위를 가지는 형태였다. 2005년 넥슨 한국법인이 NXC와 넥슨으로 분할되고 넥슨재팬이 넥슨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넥슨재팬이 한국 넥슨의 모회사가 되는 구조로 반전됐다. 기존 넥슨이 가지고 있던 넥슨재팬 지분은 NXC가 소유해 최종적으로 'NXC➞넥슨재팬➞넥슨'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2009년에는 아예 넥슨재팬의 이름을 넥슨으로 변경하고 기존 넥슨은 지금의 넥슨코리아로 변경됐다. 2011년에 넥슨은 도쿄 증시에 상장됐다. 올해 3월 기준 NXC는 넥슨 지분 29.48%를 소유하고 있다. 넥슨 2대주주는 NXC의 해외 투자법인인 NXMH B.V.(19.11%)인데 NXMH B.V.가 NXC의 100% 자회사이기 때문에 사실상 NXC가 지분 48.59%를 소유한 것과 다름없는 구조다.
같은 기간 NXC 최대주주는 김 회장의 배우자 유정현(31.9%) 씨다. ▲기획재정부(29.3%) ▲김정민(16.4%) ▲김정윤(16.4%) 등도 NXC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김정민과 김정윤은 고 김 회장과 배우자 유 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기획재정부가 보유한 NXC의 지분은 2022년 고 김 회장 사망 당시 유족이 상속세로 정부에 물납하면서 물량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최고 매출을 올린 게임 회사는 현재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제작한 라이엇게임즈다. 라이엇게임즈는 ▲LOL ▲발로란트 ▲TFT 등의 게임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출 대부분은 LOL에서 발생한다. 라이엇게임즈의 지난해 매출은 15억달러(약 2조2000억원)에 달했다. 지금은 중국 자본의 소유지만 라이엇게임즈의 시작은 미국 기업이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룸메이트로 만난 마크 메릴과 브랜든 백이 2006년 공동창업한 게 시초다.
마크 메릴과 브랜든 백은 각각 1980년, 1982년생으로 대학 시절 두 사람은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 내 PC방을 매일 갈 정도로 엄청난 게임광이었다. 대학 졸업 후 마크 메릴은 미국의 상업은행 US뱅크에서, 브랜든 백은 경영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각각 근무했다. 둘은 직장생활 와중에도 로스엔젤레스 시내에 아예 방을 얻어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당시 그들이 즐기던 게임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도타'였다.
이후 두 사람은 도타와 같은 AOS 게임 개발에 큰 관심을 보였다. 'AOS'는 플레이어가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해 정해진 공간에서 레벨과 스킬을 올리고 아이템을 갖춰 상대방 진영을 파괴하는 게임 장르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직접 AOS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게임 제작에 대한 경험이 전무 했지만 도타 개발진 중 하나인 스티브 픽 등을 영입해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LOL의 초기 모델이 탄생했다.
2008년 중국 거대 IT기업인 텐센트는 라이엇게임즈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라이엇 게임즈에 처음으로 투자를 단행했다. 이후 2015년 나머지 지분을 전부 인수하면서 라이엇게임즈는 텐센트의 완전 자회사가 됐다. 마크 메릴과 브랜든 백은 게임 제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회사에 관한 모든 경영을 내려놓고 다시 개발진으로 복귀했다. 여담으로 LOL 캐릭터 중 하나인 애쉬는 마크 메릴의 아내 애슐리의 이름과 외모를 본떠 만들어진 캐릭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LOL은 지난 몇 년 간 한국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국내 최고의 인기 PC게임으로 등극했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페이커(이상혁) 선수는 '온라인 메시'라는 별명과 함께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LOL은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법인인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를 통해 국내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는 자회사인 LCK코리아를 통해 국내 e스포츠 리그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일본 1위 게임사가 된 최고 화투 제조 회사, '오일 머니' 업고 세계 시장 공략
지난해 일본에서 최고 매출을 올린 게임 회사는 '슈퍼마리오' 게임으로 잘 알려진 닌텐도다. 닌텐도의 지난해 매출은 120억달러(원화 약 17조5000억원)에 달했다. 닌텐도를 설립한 장본인은 '야마우시 후사지로(山内房治郎)'다. 그는 1859년 일본 교토 출생으로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일본의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며 교토의 한 빈집을 매입한 뒤 그곳에서 부업으로 화투를 판매했다. 당시 화투 가게의 이름은 '닌텐도 곳파이'로 닌텐도는 '운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화투가 급격히 대중화되면서 그의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그는 화투에 새겨진 그림의 수준을 대폭 올리는 동시에 석회가루를 사용해 화투의 내리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하는 등 남다른 아이디어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당시 닌텐도는 화투뿐만 아니라 트럼프카드 제조·판매업도 함께했다. 이런 닌텐도가 게임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야마우시 후사지로의 손주인 야마우시 히로시 회장의 역할이 컸다.
야마우시 히로시 회장은 디즈니와 협약을 통해 캐릭터 트럼프 카드를 출시하는 등 캐릭터 사업에 전념했다. 이후 주요 고객 타겟을 성인에서 아이들로 바꾸며 1963년 사명을 지금의 닌텐도로 바꾼 뒤 게임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Wii 시리즈 등을 연이어 출시하며 당시 일본의 최고 게임회사였던 소니를 제치고 일본 내 1위 게임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6월 기준 닌텐도 주식회사의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7.53%)다. 닌텐도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창업주부터 3세까지 오너 경영 체제로 운영됐다. 그러나 2002년 전문 경영인인 이와타 사토로 CEO 선임을 계기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탈바꿈 했다. 2013년에는 창업주 3세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사망하면서 그가 보유했던 약 10% 가량의 지분은 네 명의 자녀들에게 상속됐다. 그 과정에서 상속세 납부를 위한 지분 매각이 진행됐고 결국 지금의 지배구조가 갖춰지게 됐다.
사우디국부펀드가 닌텐도 주식을 대량 매입한 이유는 다소 특이하다. 일본 현지에 따르면 평소 게임 애호가로 알려진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해당 주식을 매수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닌텐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게임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빈살만 왕세자는 중국 E스포츠 업체인 VSPO, 스웨덴 게임개발사 임브레이서그룹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2년 넥슨과의 사전 협의 없이 갑작스레 1조원 가량의 주식을 매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의 '블리자드' 스웨덴 게임 천재의 '마인크래프트' 공통점은 '빌 게이츠'
지난해 미국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게임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게이밍(이하 MS게이밍)'이다. MS게이밍의 지난해 매출은 154억달러(원화 약 22조5000억원)였다. MS게이밍은 2022 마이크로소프트가 설립한 기업으로 등장과 동시에 단숨에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회사로 급부상했다. MS게이밍은 설립 초기부터 미국 대형 게임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콜오 오브 듀티 등을 제작한 미국 내 공룡 게임사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196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로버트 코틱에 의해 설립됐다. 로버트 코틱은 고등학교 때 임대 사업을 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사업 수완이 뛰어났다. 그는 미시간 대학교 재학 당시 룸메이트이던 하워드 마크스와 함께 아크트로닉스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해 '코모도어 64'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당시 애플을 이끌던 스티브 잡스는 로버트 코틱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의 멘토를 자처했다. 로버트 코틱은 스티브 잡스에게 영감을 받아 대학을 중퇴했지만 애플에는 입사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업을 영위했다.
그는 아크트로닉스를 경영하는 와중에도 여가시간 대부분을 비디오 게임에 할애할 정도로 남다른 게임 사랑을 과시했다. 1991년 그는 당시 파산 직전이던 게임회사 미디어제닉을 인수한 뒤 사명을 액티비전으로 바꾸며 회사를 완전히 재구조화했다. 이후 2006년 프랑스 미디어 대기업 비벤디의 자회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까지 인수하며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탄생시켰다. 로버드 코틱은 스타크래프트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 하스스톤 등 히트작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다만 그는 기업 경영에 있어 지나치게 이해득실만 따지는 모습으로 주변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수 차례의 구조조정과 일부 게임을 통합하는 등 철저하게 계산적인 모습만 보여 내부 직원들과 게임 유저들의 원성을 받았다. 일례로 당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인 '콜 오브 듀티: 워존'을 다른 시리즈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와 갑작스럽게 통합해 기존 유저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로버트 코틱은 2022년 은퇴를 선언한 후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에 회사를 넘겼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인 스웨덴의 '마인크래프트'를 제작한 모장스튜디오 역시 MS게이밍의 자회사다. 마인크래프트는 지난 2021년 유튜브 게임 영상 중 최초로 조회수 1조회를 돌파해 유튜브에서 직접 헌정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마인크래프트는 1979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마르쿠스 페르손에 의해 탄생됐다. 그의 아버지는 소문난 게임광으로 마르쿠스 페르손이 태어나자마자 글자보다 게임을 먼저 알려주는 등 동네에서 '괴짜 아버지'로 불렸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흥하기라도 한 듯 마르쿠스 페르손은 8살 때 게임을 제작하는 등 유년 시절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마르쿠스 페르손은 학창시절 아주 내성적인 아이였다. 중학교 당시 친구가 거의 없었고 여가 시간 대부분을 집에서 게임과 프로그래밍으로 보냈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 후 바로 웹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개발에 전념했다. 그는 회사 동료였던 롤프 젠슨과 함께 비디오 게임 웜 온라인 개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마르쿠스 페르손은 2009년 마인크래프트 클래식 버전을 만들어 출시했는데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2010년 모장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마르쿠스 페르손은 게임 개발과 달리 기업 경영에는 소질이 없었다. 마르쿠스 페르손은 직원들이 수개월을 투자해 제작한 게임 판매액을 전액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악덕 사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마르쿠스 페르손은 마인크래프트의 성공으로 자신에게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고 끝내 우울증까지 겪게 되자 2014년 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겼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필 스펜서 CEO다. 1968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태어난 필 스펜서는 워싱턴 대학교를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턴으로 경력을 시장했다. 그는 입사 후 지금까지 마이크로스트에서만 근무한 '정통 MS맨'이다. 필 스펜서는 온라인 제품 총괄 관리자, MS 게임 자회사인 Xbox 총괄 관리자 등을 거쳐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 CEO직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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