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 잠재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강달러 기세를 꺾기에 역부족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경계감이 커진 데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요인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11시18분 전 거래일 보다 4.30원(0.29%) 오른 1463.50원에 거래됐다. 장중 고가 기준 지난 2009년 3월16일(1488.0원) 이후 최고치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원 내린 1455.2원으로 출발했으나 방향을 틀어 1459.8원까지 오른 뒤 1460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2일부터 지난 24일까지 241거래일 평균 원달러 환율(주간 종가 기준)은 1363.09원이다.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돌파한 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394.97원 이후 26년 만이다.
올해 1월2일 1300.40원으로 출발한 환율은 트럼프 당선 직후(11월12일·1403.50원) 1400원대를 뚫었다. 지난 24일에는 1456.40원까지 치솟아 연고점을 찍었다. 비상계엄 이후 15거래일(4~24일) 평균 환율은 1435.10원에 이른다.
박상현 iM투자증권 전문위원은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주간 거래 시장에서 환율이 장 후반으로 갈수록 올랐다"며 "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을 추진하면서 정치적 리스크가 확대, 환율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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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급 쇼크에 외환당국 '총력전'… 내년 1분기 추경 편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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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당국은 시장 안정화 메시지를 내놓고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외환당국은 이달 말 만료되는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를 내년 말까지 연장했다. 한도는 종전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증액했다.
두 기관이 외환 스와프를 맺으면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을 사는 등 달러를 매수해야 할 때 시장 대신 한은을 통해 달러를 조달한다. 또한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환 헤지 비율을 최대 10% 상향하는 기간을 내년까지로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환 헤지 비율을 상향 조정하면 시장에는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협조를 요청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기업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은과 정책금융기관(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에 기업의 외화 결제 및 대출 만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정부는 ▲외환 수급 개선 ▲연장시간대 외환거래 활성화 ▲세계국채지수(WGBI) 관련 거래인프라 개선 등 외환시장 안정 및 외화유동성 확보 방안을 추진한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관건은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다. 탄핵 정국에서 불거진 저성장 우려와 내수 침체, 내년도 본예산의 한계 등을 감안할 때 추경은 내년 초 재정정책의 화두가 됐다. 지금까지 추경이 편성된 건 총 29번이다. 1분기에 추경이 확정된 건 1998년(3월25일), 2020년(3월17일), 2021년(3월25일), 2022년(2월21일) 등 4번이다. 외환위기와 팬데믹 수준의 위기가 닥쳤을 때 추경이 편성됐다.
한은도 고환율을 잠재울 방안으로 추경을 꼽는다. 한은은 지난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추경 등 주요 경제정책을 조속히 여야가 합의해서 추진 대외에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가급적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조하는 약 1조달러의 순대외금융자산은 긴급할 때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대외금융자산은 9778억달러다. 순대외금융자산은 거주자의 해외 투자 등 대외금융자산에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인 대외금융부채를 뺀 값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외환 쪽에서 더 할 수 있는 특별한 방안이 잘 안 보인다"며 "외환보유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추경 등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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