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압력으로 여야 지도부 사이 합의됐던 임시예산안이 무산되고, 공화당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예산안도 미국 하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가 21일(현지시간)부터 ‘셧다운’(업무 일시 중지)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하원은 19일 회의를 열어 임시예산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으나 찬성 174표, 반대 235표, 기권 1표로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공화당 의원 38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민주당 의원 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 하원은 ‘신속처리 절차’를 통해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를 위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은커녕, 과반의 찬성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미국 하원은 공화당 의원이 218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부결된 임시예산안을 하원 본회의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하원 규칙위원회 통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원내총무는 임시예산안을 규칙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다시 협상테이블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이 규칙위원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긴 했지만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 의원들이 부결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주도한 새로운 임시예산안이 충분히 연방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지 못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 상원 민주당 대표인 척 슈머 의원은 존슨 의장이 주도한 임시예산안이 부결된 것이 “다행”이라며 당초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임시예산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원 민주당 대표인 하킴 제프리스 의원은 공화당이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의 요구에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머스크가 소유한 엑스(X, 옛 트위터)의 대안 플랫폼으로 여겨지는 블루스카이에 “머스크-존슨 정부 폐쇄 법안이 철저히 부결됐다”고 게시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당장 기존 임시예산안이 만료되는 21일 자정 전까지 연방정부를 운영할만한 예산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연방정부 일부 기능은 일시중지된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 사이에서 합의된 임시예산안은 트럼프 당선인이 셧다운 사태를 감수해서라도 부결해야 한다고 밝힌 데다 존슨 의장이 민주당 지도부와의 합의를 깨고 독자적인 임시예산안을 마련해 실패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 내 보수 강경파 의원 간 갈등 조짐까지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존슨 의장이 자신이 요구한 부채 한도 삭감이 포함된 임시예산안을 하원 본회의에 상정할 방침을 밝히자 “미국 국민을 위한 매우 훌륭한 합의”라고 칭찬하며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요구에도 공화당 38명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에 앞서 이같은 논의를 주도한 로이 의원에 대해 “야심만 가득하고 재능 없는 인물”이라며 다음 텍사스주 하원의원 예비경선에서 로이 의원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고 저격했다. 로이 의원은 하원 규칙위원회 소속 의원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정부는 이미 셧다운을 대비하는 모양새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정부 폐쇄에 대비하는 방법을 담은 초기 지침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백악관은 지정된 사전 통지 직원이 휴직을 당하고 정부 폐쇄가 끝나는 대로 소급 급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는 셧다운 사태에서도 계속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군들의 경우 급여를 받지 못할 것이며 필수 업무 수행이나 지원에 필요하지 않은 민간 직원들은 일시적으로 휴직 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의회는 차기 회계연도 정부 운영에 필요한 예산법안을 제때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협상시간을 벌기 위해 수개월짜리 임시 예산안을 편성해왔다. 기존 예산안이 오는 20일 종료를 앞두고 있어 여야 지도부는 이번에도 내년 3월 중순까지 정부 운영을 유지하도록 하는 임시 예산안을 마련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서 정부 조직 축소와 예산 삭감을 주도하게 된 머스크 CEO와 비벡 라마스와미 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가 임시 예산안에 반대하는 데 이어 트럼프 당선인도 이를 거부할 것을 지시하면서 공화당 지도부가 새로운 임시예산안을 만들었으나 하원 본회의 통과에 실패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