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불참으로 의결정족수 미달 사유로 무산되면서, 표결에 참여한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향후 탄핵안 재발의 가능성과 당내 갈등의 심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 세 의원의 결정과 발언은 국민의힘 내부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가치 충돌을 드러내고 있다.
‘소신’의 상징된 안철수
국민의힘 4선 의원인 안철수 의원은 탄핵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유일한 중진 의원으로, 당론을 넘어선 결단을 보여줬다.
안 의원은 지난 9일 공개된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 기관이기 때문에 자기 소신에 따라서 투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했기 때문에 더 이상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이기에 의원총회에서 ‘남아서 투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공동 담화를 통해 밝힌 ‘질서 있는 퇴진’에 대해선 “모호하다”며 “대통령 임기를 언제까지 할지, 대통령이 어떤 방법으로 물러날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안 의원은 “다시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안을 내고 여당에서도 제대로 된,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는다면 저는 차선책이지만 탄핵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오는 14일 탄핵안 재표결에서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번 결정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안 의원이 독자적인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예지, 소신있는 정치...소수자 대변에서 표결 참여까지
비례대표 재선 의원이자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은 당내에서 꾸준히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계엄사태와 관련해 당론을 거스르고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져 또 한 번 강한 소신을 보여줬다. 김 의원도 BBC 코리아 인터뷰에서 “시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저는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회 앞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며 모였다. 이들은 본회의 상황을 대형 스크린으로 지켜보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불참으로 표결 성립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크게 반발했으며 “투표하라‘는 외침이 본회의장 안까지 전달될 정도로 격렬했다.
본회의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본회의장을 떠나자 야당 의원들은 “역사는 기억할 것”이라며 강력히 항의했고, “나가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퇴장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일부 민주당 보좌진들은 “부역자”라고 비판하며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본회의장 주변 로텐더홀에서는 “투표하라”, “부끄럽지 않냐” 등의 구호가 반복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인파가 많았고, 밖에서 탄핵하라고 외치는 시민분들이 많이 와 계셨다. 방송 기자도 많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며 “국회의원으로서 책무를 생각하고, 제가 대리해야 하는 시민들을 대신해서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탄핵안 표결 직전에는 물리적 장벽 때문에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을 회고하며, 장애인 권리와 배리어프리(Barrier Free·사회적 약자 접근성 보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국회로 왔을 때 모든 문은 잠기고 어마어마한 인파에 막혀 저로서는 도저히 담장조차 진입이 불가능했다”며 “늘 배리어프리의 중요성을 외쳤던 제가 물리적 ‘배리어’를 느끼는 암담하고 절박한 순간이었다. 몸은 장벽으로 본회의장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비상계엄 해제 결의에 대한 마음은 이미 찬성 버튼을 백만 번은 더 눌렀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장애인의 문화와 예술 향유권 증진,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성 확대 등에 주력하며 당내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왔다. 이번 표결 역시 이러한 일관된 행보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당론과 소신 사이의 줄탔던 김상욱
초선 의원인 김상욱 의원은 이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는 단순히 당론에 따른 결정만은 아니었다. 김 의원은 표결 직후 “윤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론에 따라 탄핵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복잡한 입장을 내비쳤다.
본회의장으로 돌아와 표결에 참여한 김 의원의 모습은 야당 의원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지역구를 중심으로 한 비판과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 내 소장파로 분류되며, 대통령 임기 단축과 개헌 등 당내 민감한 의제를 제기해왔다.
그는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의 사죄와 하야를 촉구한다”며 오는 14일 예정된 탄핵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질 뜻을 보였다.
김 의원은 “대통령은 즉각 집무를 정지하고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보수의 가치는 공정, 합리, 자율과 자유의 가치를 믿고 지향하며, 헌법질서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결 불참 당론을 어긴 것에 대해 당내 비판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국회의원은 개별 헌법 기관”이라며 “소신과 양심이 먼저”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의원은 “저의 소신과 양심은 이번 반헌법적·반민주적 비상계엄에 여당 의원으로서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그 직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부 균열 일어나는 국민의힘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의 결정은 국민의힘 내부의 균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당 지도부는 이탈표 방지를 위해 의총과 불참 전략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 개개인의 소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특히 안 의원의 발언은 당내 지도부와의 갈등을 예고하며,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상욱 의원의 행보는 영남권 초선 의원으로서 당내 입지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 의원이 오는 14일 탄핵 재표결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밝히면서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예지 의원의 선택은 장애인 권익 증진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기반한 행동으로, 당내 보수적 기조와 충돌하는 소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국민의힘 내부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를 재발의할 계획을 밝히며, 국민적 여론과 야당의 압박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세 의원의 행보는 당내 논의의 핵심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안 의원의 독자적인 입지와 김예지 의원의 소수자 대변 역할은 당의 미래 방향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상욱 의원은 표결 참여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그의 입장은 당내 다른 소장파 의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단합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개별 의원들의 소신과 민심의 요구가 맞물린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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