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파는 평범한 줄무늬 양말이 전 세계적으로 애호가를 거느린 관광 기념품이 되었다. 일상용품인 양말은 어떻게 여행자들을 사로잡았을까?
나는 지금 일본 도쿄에서 '사냥' 중이다. 내가 찾는 것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라멘도, 네온 불빛이 번쩍이는 거리도 아니다. 계절마다 새롭게 출시되는 편의점 양말이다.
편의점 양말이 일본에서 가장 '핫한' 기념품으로 떠올랐다. 일상 필수품이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여행자는 물론 틱톡 크리에이터들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가격은 약 3700원(390엔).
이 양말은 이제 일본에 가면 꼭 사야 할 품목 1위로 꼽히는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에서 다양한 챌린지를 만들어내고 의류 라인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덕분에 나 역시 일본에서 귀국할 때면 여행 가방에 양말을 가득 채워 돌아갈 예정이다.
패션 허브가 된 편의점
편의점은 일본에서 '콘비니'라 불린다. 이 콘비니가 패션의 허브가 된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국가에서 편의점은 보통 간식을 사 먹는 공간이지만, 일본에서는 한곳에서 모든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 공간으로 진화했다.
그 시작은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늘어나고, 저녁 식사를 위한 간편식 수요가 함께 증가한 1970년대였다. 이후 편의점은 콘서트 티켓 구매, 공과금 납부, 심지어 깨끗한 화장실과 무료 와이파이 이용 같은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며 라이프스타일 허브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져갔다.
사실 2021년 편의점 브랜드 훼미리마트가 양말·가방·속옷 등으로 구성된 '컨비니언스 웨어' 라인을 출시했을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 가지 품목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흰색 테니스 양말에 훼미리마트 매장 로고를 본뜬 파란색과 녹색 줄무늬가 그려진 '라인 삭스'다. 이 양말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훼미리마트는 도쿄 시바우라 블루프론트 빌딩 안에 의류 및 라이프스타일 매장 '파미마!(Famima!)'를 열기도 했다.
편의점 양말 시장에 뛰어든 것은 훼미리마트만이 아니었다. 경쟁사 로손도 2021년 브랜드 무지와 손잡고 줄무늬 양말 2종을 출시했다. 로손의 간판 이미지를 살린 분홍색·파란색 조합의 양말과, 매장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네이비색과 흰색 조합의 양말이었다. 세븐일레븐 역시 올해 오사카 엑스포 기간에 업사이클링된 달걀껍질 막으로 만든 '오보베일' 소재의 주황색·녹색·빨간색 줄무늬 양말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일본에서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캐주얼이 의류 시장의 주류를 이룬다. 편의점 양말을 신는 것은 슈프림 티셔츠나 베이프 후디를 입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를 갖는다. 다만 편의점 양말은 훨씬 더 충동구매하기 쉬운 가격대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팬데믹 시대의 상징, 세계로 퍼지다
라인 삭스의 인기는 일본이 국가 간 이동을 제한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시작됐다. 당시 이 양말에 주목한 이들은 일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었다. J-패션 디자이너이자 '비나 오브 더 밸리' 창립자인 미칸 만다린도 평소 자신이 추구하던 귀여운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음에도 이 트렌드에 동참했다.
그는 "누구나 착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던 것 같다"며 "세상이 닫혀 있던 상황에서 작은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라인 삭스는 현지 블로거들이 인터넷에 소개하면서 단숨에 '일본에서 사야 할 것' 목록 상위에 올랐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브이로거 커플 메건과 벤(일명 '히토비토')도 이 양말의 인기를 화제로 삼았다. 이들은 훼미리마트 양말 구매를 일본 거주 외국인 대다수의 '통과의례'로 묘사하며, 훼미리마트에서 구입한 아이템만으로 전체 착장을 완성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파란색 이케아 쇼핑백을 핸드백처럼 들고 다니는 것처럼, 편의점 양말도 나름의 상징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종류도 다양해 상품 구색이 많은 편의점에서는 여러 디자인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10월 일본의 국경이 재개방되자 방문객 수는 빠르게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일본의 편의점은 오래전부터 여행자들이 소소한 기념품을 사는 장소였다. 편의점 양말은 젓가락이나 면, 유카타, 무지 제품처럼 저렴하면서도 일상적인 디자인이라는 일본 기념품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편의점 양말은 돈키호테나 빅카메라 같은 쇼핑 명소로 여행자들이 몰리는 일본에서 또 하나의 인기 기념품이 되었다. 특히 양말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현대 일본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엔클로즈 아프리카 사파리의 창립자인 레지널드 하키지마나 역시 일본 여행 중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여러 켤레의 양말을 구입했다.
그는 "훼미리마트와 로손에서 파는 양말은 일본 특유의 문화적 요소를 떠올리게 한다"며 "일본의 따뜻함과 세심함, 창의성이 응축된 기념품"이라고 말했다. "이 양말은 일본에서 생산된 상품일 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용품입니다. 작고 가볍고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일본을 방문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해주죠."
한정판, 시즌 상품, 콜라보레이션
인기가 높아지자 라인 삭스가 다양한 버전으로 잇따라 출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계절 한정 간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훼미리마트가 한정판 상품을 얼마나 짧은 주기로 교체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같은 논리가 양말에도 적용됐다.
현재 훼미리마트는 계절마다 색상과 길이를 달리한 양말을 선보이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 '심슨 가족', '후지 록 페스티벌' 등 대중문화 아이템과 협업한 한정판도 출시한다. 일본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역시 특정 지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라인 삭스 출시에 참여했다.
훼미리마트 홍보 담당자 이오리 가오리는 "라인 삭스 협업은 주로 '글로벌 브랜드' 또는 '지역 사회' 가운데 하나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며 "이러한 파트너십은 큰 주목을 받으며 편의점 패션에 새로운 이용자를 유입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밝혔다.
편의점 양말은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실용적인 아이템이다. 여분의 양말을 챙기지 못했을 때나 한정판 협업 제품이 출시됐을 때 주로 구매된다. 그럼에도 훼미리마트 양말의 누적 판매량은 3천만 켤레를 넘어섰고, 전 세계적으로 애호가를 확보했다. 영국에서 자라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깊은 애정을 지닌 유나 다케우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편의점 양말을 통해 영국에서 접했던 일본 문화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그는 "편의점 양말은 실용성과 우아함이라는 일본 디자인의 본질을 하나의 상품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계절마다 한 묶음씩 구입해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편의점 의류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을 확장해 나가면서, 앞으로도 편의점 양말은 여행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자들이 찾는 것은 자신이 방문한 장소의 삶의 감각과 여행 중의 작은 순간을 간직할 수 있는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박한 양말 한 켤레야말로 이 욕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기념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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