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와 힙합의 차이
“사람들은 어쩌면 힙합이 아니라 〈쇼미〉를 좋아하는 것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기시감이 떠올랐다. 리액션 위주의 편집, 스트리트 댄스 배틀의 구조를 비튼 갈등 유도, 인기 투표를 통해 완성되는 서사까지, 모든 게 엠넷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서바이벌 방송의 필승 공식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재만 다를 뿐 두 방송 모두 엠넷식 연출에 따른 대중 친화형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라는 것. 실제로 스트리트 댄스 배틀 ‘더 초이스 이즈 유어스’의 주최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실제 스트리트 댄스 이벤트는 본질적으로 달라요”라고 말한다. 같은 논리로 보면 〈쇼미〉를 즐기면서도 힙합에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쇼미〉가 힙합 신과 관계가 없다거나, 방송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쇼미〉로 대중이 힙합을 만나는 새로운 접점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방송을 통해 힙합이라는 장르가 더 널리 알려지고, 인지도 높은 스타가 생겨나면서 신 전반에 활기가 더해진 것도 맞다.
하지만 〈쇼미〉는 어디까지나 대중이 재밌고 쉽게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힙합 문화의 요소를 차용한 부분도 많고, 힙합 아티스트들이 다수 출연하지만, 방송은 어디까지나 방송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쇼미 우승’ 아티스트가 꼭 그해 가장 좋은 폼을 보여줬다거나, 그해의 한국 힙합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장르 팬은 거의 없다. 스포츠 경기처럼 방송 순위가 곧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쇼미〉에서 생존은 화려한 스킬이나 대중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주제, 개인의 인지도, 편집 방향성 등에 영향을 받는데 그중에는 힙합의 일부인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힙합 신이 돌아가는 따끈따끈한 소식을 얻고 싶다면 ‘합플레이야’ ‘하우스오브매터스’ 같은 SNS 계정을 팔로잉해두는 것도 좋다. 이렇게 보고 듣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방송에는 담기지 않은 맥락과 재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당신도 〈쇼미〉 시청자가 아닌 한국 힙합의 팬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염따부터 호미들까지, 뛰어난 작품이나 공연 활동을 통해 〈쇼미〉가 출연 여부나 방송 내 활약과 무관하게 높은 평가를 받고 영향력을 키워나간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힙합 전문 미디어 ‘합플레이야’ 김용준 대표는 “〈쇼미〉가 방영되지 않았던 기간, 오히려 어느 때보다 다양성 있는 음악들이 쏟아졌고, 공연이나 소통도 활발하게 이어졌어요”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3년이 마치 힙합의 암흑기처럼 보였겠지만, 〈쇼미〉 바깥에서 힙합 신은 여전히 뜨겁게 움직여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쇼미〉 바깥의 힙합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먼저 한 차례 검증을 거친 ‘한국대중음악상’이나 ‘한국 힙합 어워즈’의 후보·수상작을 훑어보자. 음원 차트와 〈쇼미〉로만 한국 힙합을 접한 사람이라면 ‘이런 아티스트가 있었어?’ ‘이런 노래가 있었어?’ 하고 틀었다가 뛰어난 완성도에 놀라게 될 것이다. ‘힙플페’ ‘대힙페’ 등 장르 페스티벌이나 ‘랩하우스’ 같은 공연을 찾아가 여러 아티스트의 무대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방법이다. 지속적으로 힙합 신이 돌아가는 따끈따끈한 소식을 얻고 싶다면 ‘합플레이야’ ‘하우스오브매터스’ 같은 SNS 계정을 팔로잉해두는 것도 좋다. 이렇게 보고 듣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방송에는 담기지 않은 맥락과 재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당신도 〈쇼미〉 시청자가 아닌 한국 힙합의 팬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새 시즌은 성공할 것 같냐고? 3년 만의 부활인 만큼 제작진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칼을 갈아온 참가자도 많을 테니 좋은 볼거리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생각만큼 흥행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한국 힙합의 운명과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쇼미〉가 곧 한국 힙합은 아니니까.
이번 시즌 기대되는 래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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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E THE ZILLA 지난 시즌 참가자의 재등장은 흔한 일이고, 그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 하지만 올해의 제네 더 질라는 분명히 한 꺼풀을 벗겨내고 왔다. 그는 〈쇼미〉가 없던 사이 2장의 정규 앨범, 1장의 EP를 내며 쉼 없이 창작에 열중했고, 특히 〈94-24〉는 개인적으로 ‘2024년의 과소평가된 명반’으로 꼽는다. 음반 완성도와 쇼미 성적이 별개라는 건 알지만, 쓰라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어나서 달려가겠다는 앨범의 이야기는 방송에서도 새로운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이번 시즌 기대되는 래퍼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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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V 〈쇼미〉는 경연 특성상 다양한 스타일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계속해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무기가 많아야 한다. 그리고 마브는 탄탄한 랩부터 세련된 멜로디 메이킹까지 품은 칼이 많다. 실제로 앨범을 통해 트랩 싱잉 랩부터 아프로비츠까지 다채로운 스타일을 선보여왔고, 그 과정에서 이미 오왼과 박재범, pH-1 등과 협업하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기본 실력의 상향 평준화로 다양성과 개성을 더욱 많이 요구받게 될 이번 시즌, 마브의 화려한 칼춤을 기대해본다.
추천하는 역대 〈쇼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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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9 ‘FREAK’ 시즌 9 음원 미션곡 ‘Freak’ 발매 당시 스카이민혁은 ‘다 된 freak에 스민 뿌리기’라는 거센 조롱과 혹평을 받았다. 시즌 11에서는 심지어 1차 예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방송만 본 사람은 몰랐을 반전이 있다. 그는 이후 절치부심해 〈해방〉이라는 명반을 내놓으며 힙합 팬들에게 압도적 찬사를 받아냈다. ‘Freak’ 무대는 훗날 〈해방〉을 낳기 위한 서사의 조각이 된 셈이다. 이 이야기가 당신을 〈해방〉으로, 〈쇼미〉 바깥의 힙합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who’s the writer
최용환은 음악과 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한다. ‘한국대중음악상’과 '한국 힙합 어워즈' 선정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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