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TERVIEW] 가수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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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INTERVIEW] 가수 장사익

이슈메이커 2025-12-09 09:37: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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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 재즈와 만나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새로운 길에서 다시 배운 음악, 늦게 핀 목소리가 더 짙다
가수 장사익.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누구의 틀에도 얽히지 않는 목소리로 기억되는 그는, 30년 가까운 음악 여정을 쉼 없이 이어오고 있다. 마흔이 넘어서야 첫 무대에 섰고, 사회생활과 장사, 국악 공부와 방황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았다. 늦게 데뷔한 만큼 더 깊은 울림을 지닌 그의 노래에는 인생의 사계가 녹아 있다. 봄의 설렘, 여름의 고단함, 가을의 익어감, 겨울의 고요함. 누구나 지나지만 누구나 노래하지는 못하는 그 결을 그는 호흡과 떨림으로 표현해낸다.


  최근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항해에 나섰다. 토론토 재즈 오케스트라와의 협업 공연이 전국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며 많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졌다. 전혀 다른 박자 구조와 호흡을 가진 연주자들과 한 무대를 채워가는 과정에서 그는 “엉뚱한 길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협업은 단순한 실험이나 호기심을 넘어, 삶의 새로운 계절을 열어준 결정적 여정이었다. 재즈 뮤지션들이 그의 노래를 재해석하고, 그는 그들의 질서 안에서 또 다른 자유를 발견했다. 관객들은 그 무대에서 ‘새로운 장사익’을 만났고, 그는 그 무대에서 다시 다음 계절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협업은 어떤 의미였나
"사람이 오래 한 길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길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겨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30년 가까이 해온 방식이 있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 협업을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와는 전혀 다른 호흡과 다른 박자를 가진 사람들이랑 한 무대를 만들어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름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이 생겨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한 발씩 다가가다 보면, 전혀 예상 못 했던 지점에서 하나가 돼요. 그 순간의 전율이 참 고맙고 소중했어요.“

연습 초반 가장 부담됐던 순간은
"박자였습니다. 나는 박자를 깨고 호흡대로 가는 사람이고, 그 친구들은 아주 정밀한 구조 안에서 자유를 찾는 사람들이었어요. 서로 방식이 다르다 보니 초반엔 엉켜버리기 일쑤였죠. 특히 '기차는 간다'는 간주가 예민한 곡이라 재즈로 바꾸면 한 박자만 엇나가도 전체가 무너져요. 그래서 처음 몇 번은 정말 온몸이 긴장 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부딪히고 또 부딪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틈이 메워지는 때가 와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아, 이제 된다' 하는 느낌. 그 순간이 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지만,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어요.“

 

ⓒ본인 제공
ⓒ본인 제공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하며 느낀 가장 큰 배움은
"재즈는 마음대로 하는 음악이라고들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큰 오해예요. 마음대로 들리게 하려면 그 뒤에 수많은 질서와 규칙이 있어야 하죠. 미국이 자유의 나라라 해도 그 자유를 지탱하는 법과 규칙이 있듯이, 재즈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보면서 ‘내가 알던 자유는 아주 작은 자유였구나’ 느꼈어요. 나도 자유롭게 노래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만든 틀 안에서만 움직였던 거죠. 그들의 질서를 이해하려고 내가 한 발 들어가 보니, 그 안에서 또 다른 자유가 보이더라고요. 그게 이번 협업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에요.“

이번 협업이 선생님의 음악적 시야를 넓힌 지점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요. 그런데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면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순간이 오죠. 외국 연주자들이 내 노래를 들으면서 저마다 다른 해석을 보여줄 때 참 놀랐어요. 내가 만든 노래인데 내가 생각 못 했던 표정이 나오더라고요. 음악은 들리는 사람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거구나, 그걸 다시 깨달았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노래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더 넓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장르를 넘나들며 노래해온 이유는
"나는 국악을 했지만 국악만 좋아했던 게 아니고, 가요도, 재즈도, 클래식도 다 좋았어요. 어느 하나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애초에 없었죠. 사람들이 ‘이건 국악이냐 가요냐’ 물으면 나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냥 내가 부르면 그게 내 노래가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장사익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할 때 너무 고마워요.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으려고 했던 게 오히려 나만의 길을 만든 거죠.“

박자를 깨고 호흡으로 부르는 방식은 어떻게 형성됐나
"김대환 선생님의 한마디 때문이었어요. 프리뮤직의 대가인데, 나보고 ‘속으로 새는 것도 버려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크게 박혔어요. 그전에도 내가 박자를 완전히 지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정한 틀은 남아 있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래, 완전히 버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동요든 가요든 박자를 다 깨기 시작했어요. 동양화에는 여백이라는 게 있죠. 겉으론 비어 있지만 사실 그 안엔 듣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요. 내 노래도 그런 여백을 갖고 싶었어요.“

 

ⓒ본인 제공
ⓒ본인 제공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라는 평가를 들을 때 어떤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내가 국악을 오래 했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섰던 시간이 많아서 그런 이미지가 생겼겠죠. 해외 공연에서도 ‘하얀 옷 입고 노래한 사람’으로 기억하더라고요. 한국적인 냄새는 국악을 한다고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삶의 방식에서 우러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사람들이 느껴주니 참 감사하죠.“

늦은 데뷔가 오히려 음악에 도움이 된 이유는
"나는 평범한 직장생활도 하고 장사도 하고, 참 많은 길을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사람에게 치이고, 상처받고, 희망을 찾았다 잃기도 하고… 그런 경험이 다 노래의 재료가 됐어요. 20대에 데뷔했다면 지금과 같은 노래는 절대 못 했을 거예요. 인생의 여름과 가을을 지나보고 나서야 겨울의 고요함이 뭔지 알게 되거든요. 그게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는 거죠.“

첫 공연에서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한가
"94년 홍대 공연이었어요. 친구들이 억지로 끌듯이 나를 무대에 세웠는데, 하루 만에 400명이 들어왔어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 이게 행복이구나’ 했어요. 그전엔 늘 마음이 찌그러져 있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이 나한테는 인생의 아주 큰 전환점이었어요.“

 

ⓒ본인 제공
ⓒ본인 제공

 

선생님 음악에 시(詩)가 중요한 이유는
"나는 좋은 시를 만나면 그게 내 마음과 딱 맞을 때가 있어요. 마치 내 감정을 대신 적어놓은 것처럼요. 그럴 때 그 시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죠. 시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언어예요. 시가 좋으면 노래는 이미 절반 이상 완성된 거예요. 그래서 늘 시를 먼저 보고, 그 시 속의 마음을 내 소리로 옮기려고 해요.“

일본에서 관객 한 명을 위해 공연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세상 떠나기 직전인 친구였어요.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내려와 내 앞에 앉더라고요. 내가 그 친구를 위해 한 시간 넘게 노래했어요.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뭉클해요. 며칠 뒤 그 친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죠. 가수라는 건 수천 명 앞에 서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렇게 단 한 사람 앞에서도 서야 하는 존재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에 있다고 느끼나
"가을 끝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같아요. 인생의 정리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됐죠. 그래서 노래도 더 담백해지고, 더 솔직해지고 있어요. 젊을 때처럼 화려한 소리는 안 나오지만, 대신 나이 든 목소리의 맛이 있죠. 그걸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들려주고 싶어요.“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앞으로의 음악적 계획은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은 끝까지 부르고 싶어요. 나이 들수록 더 자연스러워지고 싶어요. 꾸미지 않고, 내 목소리 그대로. 대중교통 타고 다니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면서 그 일상에서 노래를 얻고 싶어요. 그게 내 음악의 뿌리예요.“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요즘 정말 어렵죠. 정치도 경제도, 국제 정세도 불안하고.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버텨온 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죠. 내년엔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래도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계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 마지막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에요. 서로 조금 더 따뜻하게, 마음 열고 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계속 노래를 할 수 있는 힘은
"사람들이에요. 내 노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 그 표정이 있어요. 내가 노래를 하면 그 얼굴들이 조금씩 달라져요. 웃음이 나거나, 눈물이 고이거나, 숨이 길어지거나. 그 변화가 나한테는 기적 같은 순간이에요. 그래서 힘들어도 다시 무대에 서는 거예요. 내 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단 1mm라도 움직이면 그게 내가 노래하는 이유예요. 그게 앞으로도 나를 계속 움직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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